영화 '우아한 세계' 주연 조폭가장 강인구 역
딱 10년 만이다.
송강호가 조직폭력배 역할을 맡은 건. 영화 '넘버3'와 '초록물고기'에서 조폭으로 등장했던 송강호가 '우아한 세계'(감독 한재림, 제작 루씨필름)에서 조폭의 중간 보스를 맡았다.
그는 그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화의 감초에서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아우라를 가진 대표 배우가 됐다.
송강호는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왜 많은 감독들이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로 첫손에 꼽는지 확인시켜준다.
조직폭력배이지만 그 직업이 주는 전형성을 탈피하고서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인물을 만들어냈다.
영화 속 강인구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특별하지 않기에 영화에서 보기 드물었던 것이다.
회사원 같은 조폭, 가족에게 소외되는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역할을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쓱쓱 버무려냈다.
'우아한 세계'는 '연애의 목적'에 이어 평범한 일상에서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을 끄집어내는 한재림 감독의 재능을 드러낸다.
그러나 무엇보다 확실한 임팩트는 직접 보면 실감할 수 있는 송강호의 연기력이다.
어느 작품이건 그의 연기력이 모자라진 않았지만 이 영화는 특별하다.
캐릭터는 송강호를 위해 만들어졌고, 송강호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배우가 한 캐릭터를 얼마나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전 개인적으로 조폭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넘버3' 이후 얼마나 많은 조폭영화가 생겼습니까. 이 영화는 '조폭'을 담고 있지만 조폭영화는 아니에요. 또 가장이 등장하지만 가족영화도 아닙니다. 장르 영화의 전형성과 보편성을 찾을 수 없죠."
조직 사회의 쓰라린 면모를 2시간 동안 담아내기 위해 다소 극적인 직업인 조직폭력배를 설정했다는 뜻이다.
인구는 고생했던 시절 은인이었던 두목에게 의리를 지키는 한편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애를 쓴다.
"조폭과 가장, 정말 진부하고 흔해 빠진 소재죠. 닳고 닳은 소재입니다. 그런데 한재림 감독이 이를 특별하게 버무려냈어요."
그는 그에게 쏟아지는 연기력에 대한 칭찬을 기발하고 뚝심 있는 한재림 감독의 공으로 돌린다.
'우아한 세계'에서는 살벌할 것 같은 조폭의 얼굴에 나른함이 엿보인다.
뜻하지 않은 상황이 되자 멋있게 돌파하는 게 아니라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집에서도 큰소리치지 못한다.
자신만의 애정 표현 방식에 가족은 '제발 우아하게 살자'며 외면한다.
힘든 일상을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그가 돈을 버는 목적인 가족은 곁에 없고 그는 혼자 라면을 끓여 먹어야 한다.
"어느 연기나 어렵지 않은 연기가 없지만"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차라리 '괴물'이나 '살인의 추억'같이 선 굵고 입체적인 인물은 연기하기가 편하다"고 털어놓았다.
"이 영화는 빈 공간이 많은 영화죠. 배우의 에너지로 그걸 메워나가야 해 힘들었습니다. 일상적인 걸 표현하는 게 더 어려워요. 장르적 표현력, 극적인 장치에 기댈 수 없으니까요. 인구의 특수한 직업을 의식하면 안되겠구나 싶어 그냥 회사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배우라 함은 조직 사회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배우란 어느 직업, 어느 상황이든 연기해내야 하지만 전혀 모를 것 같은 세계에 대해 뛰어난 표현력을 보여 새삼 우문처럼 "도대체 어떻게?"라고 물었다.
"배우 개인의 체험으로는 한계가 있죠. 본질을 캐치하는 것이 인물을 표현하는 첫 번째 발걸음 같습니다.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특성의 본질을 판단하는 게 근사치가 아닌가 생각해요. 행려병자 연기를 해야 한다고 해서 그들과 같이 생활한다고 뭘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는 자동차 추격신에 깔린 음악이 참 좋았다고 했다.
"인생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장면이죠. 음악이 그걸 잘 표현해줬구요. 인생이란 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길로 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인구 역시 나쁜 놈은 아닌데 나쁜 행동을 해야 합니다. 또한 어느 아버지든 마찬가지 잖아요. 내 삶은 비루할지라도 가장 소중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지길 바라는데 가족은 그 방법조차도 우아해지길 바랍니다. 꿈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인터뷰 내내 영화에 대한 자부심이 꽉 차 있음을 느꼈다.
그런데도 그는 흥행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과연 이런 유형의 영화를 관객이 좋아해줄까 하는 걱정도 엿보였다.
"한 감독과도 원하는 대로 작품은 나왔는데 대중과의 접점이 어떻게 이뤄질까 걱정했습니다. 일상적인 소재라 호기심도 없을 것 같고, 까다롭기도 한 것 같으니. '괴물'처럼 '초대박'을 바라는 게 아니라 요즘 힘든 한국 영화계에 숨통이나마 트고 싶은데…"
갑자기 분위기가 다운된 듯해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물었다.
영화배우 송강호
"'1년 후'라는 자막이 나온 후의 시퀀스가 좋았어요. 강인구가 가족을 떠나보낸 후 어떻게 피폐해졌고, 얼마나 황폐해졌는지 직접적인 대사는 하나도 나오지 않지만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처음 건설현장 일을 따내기 위해 도장 찍으라고 협박할 때는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이걸로 돈 벌어 애 유학도 보내고 멋진 집도 사자는. 그런데 두 번째 도장 찍는 장면에선 그저 일상이고 기계적인 모습이죠. 강인구가 한 마디로 어떻게 맛이 가고 있는지 보여주면서도 대놓고 말하지 않아서."
어느덧 그도 마흔 살.
영화 속 인구는 그보다 5~6살 많은 나이다.
그렇다 해도 40대 가장으로서 고민은 엇비슷할 것.
"가장으로서 고민, 당연히 '있죠'.(그는 '있죠'를 단숨에 힘주어 말했다) 큰애가 12살인데 그 애를 보면서 걱정도 되고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개인적으로 바쁘다 보니까 물리적으로 같이 있지 못합니다. 얼마 전 아들놈이 '모처럼 가족끼리 식사 한번 할까?'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데 한방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요즘 그는 너무 바쁘다.
'괴물'을 찍고 '우아한 세계'를 찍었으며, 한동안 밀양에 내려가 이창동 감독과 '밀양'을 작업했다.
다음달이면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촬영이 시작되며 이 때문에 한동안 중국에서 머물러야 한다.
그게 끝나면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틈틈이 쉬는 시간이 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쉬는 시간이 있긴 한데, 그게 참 그래요. 마음만 있을 뿐이죠. 일 안하면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기 싫어요. 나가려면 세수하고 옷 차려입고 그래야 하는데 만사가 귀찮은 거죠. 정말 이기적입니다. 제가 경상도 남자잖아요." 그러면서 그는 멋쩍은 듯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중견배우로서 소회와 책임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안성기, 박중훈, 한석규 선배도 계시지만 최민식 선배와 저 같은 배우들이 한국 영화계를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짐이 있습니다. 후배들한테 좋은 길을 보여줘야 하죠. 그런데 배우라는 일이 하루 이틀에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숱한 좌절과 숱한 고난을 견디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배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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