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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C시대, 새 방송 모델?

김영아

입력 : 2007.03.27 22:23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한 포스트를 블로그에 올렸더니 한 독자분께서 관련된 최신 논문 하나를 댓글을 통해 소개해 주셨다. 제목은 "The Long Tail and Lofty Head of Video Content--The Possibilities of "Convergent Broadcastiong"--". 올 1월호 일본 노무라연구소 학술지에 실린 아주 따끈따끈한 글이다. 읽어보니 방송사에서 일하는 사람은 물론,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과 함께 나눠볼만하다 싶어서 요약해 본다.


17페이지짜리, 아주 짧지는 않은 글인데 학술논문이라는 게 늘 그렇듯이 요점만 추리면 아주 간단하다. "롱테일 시대일수록 꼬리보다 머리를 주목하자."는, 말하자면 '롱테일 다시보기'다. 일단 제목에 담긴 세가지 개념부터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1. 롱테일(long tail)


먼저 '롱테일'은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몇 년 전부터 인터넷을 중심으로 떠오른 '인터넷 시대의 독특한 수요-공급곡선'을 일컫는 말이다. 전통적인 수요-공급 곡선에서는 몇 몇 인기상품이 수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래프의 오른쪽으로 이동할 수록 수요가 급격히 감소했다. 뿐만 아니라 이 수요-공급 곡선에 등장하는 품목 수 자체가 아주 적었다. 예를 들면, 넘버1 히트상품부터 넘버2나 넘버3 까지가 판매량의 7-80%를 차지하고, 이후 급격히 줄어든 수요가 넘버7 쯤이 지나면 거의 0에 가까워 지는 거다. 결국 1, 2개나마 팔리는 한계는 넘버 10 정도다.


그런데 온라인 음원 사이트나 온라인 서점 같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등장한 새로운 상점들의 판매현황을 분석해 보니 그래프 모양이 아주 달라졌더라는 얘기다. 가장 인기 있는 몇몇 히트상품이 판매량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넘버7 쯤에서 거의 0에 '가까워진' 수요가, 넘버10 쯤 되면 끝나버리던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넘버 100, 넘버 1,000, 넘버 10,000으로 넘어가도 0이 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더라는 것. 꼬리가 X축에 닿을락 말락 하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롱테일'이다.


'롱테일'이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한 크리스 앤더슨은 두 그래프의 모양이 달라진 이유를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점의 저장공간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오프라인 상점은 상품을 쌓아두고 진열할 공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인기 상품 위주로 비치해 둘 수 밖에 없다. 100권을 보관할 수 있는 서점이면 베스트셀러 1위를 수십권 가져다 놓고, 베스트셀러 10까지 오른 책들로 서가의 80% 이상을 채우고 나머지 이런저런 책들은 남은 공간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그저 구색만 좀 맞춰 두는 거다.


반면 온라인 상점들은 이런 공간의 제약에서 훨씬 자유롭다. 그 결과 오프라인 서점은 1년에 1권 팔릴까 말까 한 인기 없는 책들은 과감하게 '버리'지만, 온라인 서점에서는, 어차피 링크 하나 추가하면 끝이기 때문에 이런 책들도 다 진열해 둔다. 그랬더니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서 이 책들을 사더라는 거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팔리는 책들이 생각보다 많더라는 거다. 그 결과, 어차피 '링크  하나만 추가하면 끝'인 온라인 서점은 책을 쌓아두고 진열하기 위해 비싼 임대료 내고 건물을 세 내야 하는 오프라인 서점과는 전혀 다른 비즈니스 전략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1달에 100권 팔리는 책을 3권 진열하는 것이나 1달에 1권 팔리는 책을 300권 진열하는 것이나 똑같이 한달 매출 300권을 올릴 수 있는 거다. 즉, 오프라인 시장에서는 푸대접받고 무시당했던 'niche'상품들이 온라인 시장에서는 말 그대로 '블루오션'이 될 수 있더라는 얘기다.


2. 로프티 헤드(lofty head)


'롱테일'론은 웹2.0 개념과 어우러지면서 최근 세계적으로 말 그대로 돌풍을 일으켜 왔다. 머리만 쳐다보던 아날로그 마인드에서 벗어나 이제는 '꼬리'를 들여다 봐야 한다는 주장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말 그대로 '롱테일'을 만들었다. 그런데 논문의 저자는 인터넷 시대의 동영상 컨텐츠에 관해 얘기하면서 거꾸로 "이럴 때일수록 머리를 봐야 한다"는 뜬금없는(?) 주장을 편다.'로프티(lofty)'는 산처럼 높게 우뚝 솟았다는 뜻이니까 '긴 꼬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로프티 헤드는 '삐죽 솟은 머리' 쯤 되겠다.


똑같은 긴 꼬리 그래프에서 크리스 앤더슨이 주목한 것은 "긴 꼬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다. 이에 비해 논문의 저자인 무라카미는 "높은 머리는 왜 높을까?"에 주목한다. 다시 말하면, "높은 머리를 형성하는 몇 몇 인기 동영상들은 뭐가 달라서 꼬리 대신 머리가 됐을까?"라는 관점에서 그래프를 들여다 본다.


저자는 온라인 동영상 시장에서 머리와 꼬리가 갖는 차별화된 특성으로 다섯가지를 꼽는데, 그중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머리의 경쟁력은 reliability(신뢰도)와 centricity(중심성?)이다. centricity는 사회학의 'center and periphery'개념으로부터 저자가 이끌어낸 개념인데, 중심부와 주변부를 나눌 때 중심부에 속한다는 얘기다. 즉, 인터넷 시대 웹을 통해 공개되는 수많은 동영상들은 다양성과 신선한 접근법 등을 내세워 다양한 취향과 니즈를 반영하며 긴 꼬리를 형성하지만, 이들 동영상 가운데 가장 많은 조회수와 인기를 기록하는 것은 역시 1. 믿을만 하고, 2. 독특한 취향과 관점을 가진 소수 보다는 '중심'에 속하는 다수의 취향과 관심에 부합하는 것들 이라는 얘기다.


3. 융합(?)방송(Convergent Broadcasting)


'긴 꼬리'와 '삐죽 솟은 머리'의 비교를 통해 저자가 결론적으로 주장하는 바는 동영상이 나날이 늘어나고 중요해지는 인터넷시대를 맞아 새로운 동영상 공급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융합방송'이라고 이름 붙이는데, 이 때 융합은 컨텐츠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기존의 '방송'에 준하는 규제를 받고 동영상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는 인터넷과 같은 '오픈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기존의 'IPTV'나 인터넷방송과 비슷해 보이지만, IPTV가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네트워크를 이용하기 때문에 셋톱박스가 필요하고 기존 컨텐츠의 재전송이 중심이 되는데 비해 융합방송은 인터넷 같은 열린 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따로 장비를 추가로 설치할 필요가 없고 방송이나 영화 등으로 이미 소개된 컨텐츠 대신 완전히 독립적인 새 컨텐츠를 직접 제작해서 제공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 기존의 인터넷 방송은 아무나 제약없이 만들 수 있지만, 저자가 제안하는 융합방송은 기존의 방송사만큼 엄격한 기준에 의한 심사를 통해 '허가'받은 이들만 세울 수 있다는 게 다르다. 이와 함께 융합방송이 기존의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들과 다른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은 동영상들을 다 모아놓고 원하는 걸 마음대로 찾아볼 수 있게 하는 게 아니라 기존의 TV처럼 정해진 편성표에 따라 '방송' 한다는 점이다.


너무 간략하게 정리하다보니 부족한 감이 많지만, 시간을 내서 17페이지나 되는 글을 다 읽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길 바라면서 개인적인 '독후감'을 좀 적자면 이렇다.


일단 참 재미있게 읽었다. 개인적으로 '비딱하게' 보는 미덕을 아주 높이 평가한다. ^^ 다들 꼬리, 꼬리, 꼬리 타령 할 때 '머리' 얘기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재미있게 봤다. 하지만, 세부적으로는 공감 가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읽는 내내, 읽고 나서는 더더욱 '근본적'인 의문이 남았다: "'융합방송국'이라는 거, 이거, 꼭 해야 하는 거야?"


저자가 제시하는 모델이 인터넷을 통해 공급되는 동영상의 신뢰성과 '중심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공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동영상이라는 게 새 서비스모델까지 만들어 가면서 꼭 인터넷을 통해 공급해야 하는 것인지 자체에 대해 의문이다. 저자는 도입부에서 인터넷에서 동영상의 중요성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고, 인터넷을 통해 공급되는 동영상들이 앞으로 교육, 의료, 평등, 계층갈등 해소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거라는 전제를 아주 '당연한 사실'로 제시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현재 인터넷에서 동영상의 인기가 높다고 해서, 최근 몇 년 동안 인터넷에서 동영상의 인기가 급격히 높아졌다고 해서, 이런 추세가 영원히 계속 될 거라고 말하는 건 성급하다는 생각이다. 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동영상 컨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플랫폼이 늘었다는 사실과, 반드시 그 플랫폼에 동영상 컨텐츠를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다. 즉, 융합방송론이 전형적인 'technology-push'적 접근이 아닌가 하는 얘기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저자 스스로 본문 안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저자가 제시하는 융합방송 모델이 지나치게 공급 측면에만 집착하고 수요 측면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 또한 한계로 보인다. 다시 말해, "융합방송'이라는 게 생기면 나는 과연 그걸 보고 싶을까?" 생각했을 때 "별로...."라는 대답이 나오더라는 얘기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신뢰도'와 '중심성(?)'에 집착한 나머지 인터넷이라는 새 플랫폼이 가진 최대 매력이자 장점인 개인의 '선택권'이 무시된 것이다.


"정부의 허가를 얻은 믿을만한 업체가 직접 제작한 컨텐츠를 정해진 편성표에 따라 인터넷을 통해 방송한다." 윗 문장에서 '인터넷을 통해'라는 구절만 빼면 '융합방송'이라는 것과 기존의 '방송' 사이의 차별성은 거의 제로가 된다. 또 그 '인터넷을 통해'를 '케이블 망을 통해'로 바꾸면 '융합방송'은 케이블 방송과 같아지고, '위성을 통해'로 바꾸면 '위성방송'이 된다. 인터넷이라는 새 플랫폼이 갖고 있는 여러 장점 가운데 가장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컨텐츠를 직접 고르고 뒤져서 맘에 드는 걸 맘에 드는 시간에 볼 수 있다는 '핵심'이 빠지니 그저 채널 하나 늘어나는 결과가 되고 마는 거다. 개인적으로, 지금 있는 지상파와 케이블, 위성 채널만으로도 다 보기 힘들고 머리 아프다. 더 나아가 지금도 케이블 채널만 봐도 재탕 삼탕에 수준 이하의 프로그램이 상당수인데 새 서비스를 만든다 한들 그걸 채울 양질의 컨텐츠를 공급할 수 있을 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하나, '동영상은 많아도 '신뢰도'와 '중심성'을 두루 갖춘 컨텐츠는 아직은 많지 않다'는 지적 하나는 '방송사'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일단, 당장은 한숨 돌리게 하는 얘기다. ^^ 그 신뢰도와 '중심성'을 어떻게 더 극대화할 지는 많은 분들과 함께 계속 고민할 부분이지만.


※ 참고

원문을 읽어보실 분들은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s://www.nri.co.jp/english/opinion/papers/2007/pdf/np2007113.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