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여권 주자들 사이에도 3불 정책 관련해 의견 엇갈려
한미 자유무역협정, 즉 한미 FTA가 정당들 사이는 물론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요, 이번에는 교육 정책이 대선 관련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21일 서울대학교가 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3불 정책에 대해 '대학의 자율성과 발전을 해치는 암초 같은 존재'라고 규정하고 나선 게 발단이었습니다. 여기에 22일에는 사립대 총장 협의회에서도 3불 정책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3불 정책이란, 아시다시피 대학별 본고사와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는 교육 정책입니다. 3불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소개나 평가는 교육 문제를 전문적으로 취재하는 사회1부 담당 기자들에게 맡겨야 할 일이고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이번에 3불 정책을 놓고 논란이 인 뒤 가장 먼저 자신의 생각을 밝힌 사람은 아직 정치 참여 의사를 분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었습니다. 마침 지난 22일 오후에 서울대 안에서 강연이 있었는데 3불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정 전 총장의 생각은 기본적으로 정부가 고등 교육에서 손을 떼야만 대학 교육이 발전한다는 얘기입니다. 구체적으로는 3불 가운데서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는 허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학이 어떤 학생을 뽑아서 어떻게 가르칠지는 더 이상 정부가 간섭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이죠. 다만 기여입학제 문제는 국공립대학 보다는 사립학교에 관한 문제로 입장 표명을 유보했습니다. 정리하자면 3불 가운데서 '2불 폐지' 주장입니다.
사실 정 전 총장의 이런 입장은 서울대 총장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에도 밝힌 적이 있는 것이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은 좀 사정이 달라 보입니다. 정 전 총장을 영입해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나섰던 열린우리당 쪽에서 '3불 정책은 변경할 수 없는 당론'이라며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열린우리당 정책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인 정봉주 의원이 "3불 정책 폐지론은 용납할 수 없다"며 맹공했습니다. 성명서에서까지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사람도 모교의 강연에서 삼불정책을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을 하고 이는 "공교육을 정상화하고 교육을 바로세우기 위한 대학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인 삼불정책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포기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전에 정봉주 의원이 정운찬 전 총장 영입론을 제기하길래 "열린우리당의 교육 정책과 다른 소신을 갖고 있는데 상관없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정 의원의 대답은 "누구든 정책을 맡게 되면 3불 정책을 수용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부분은 걱정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 의원이 성명서에서까지 정 전 총장을 거론한 걸 보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역시 범여권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입학 전형을 강제적인 틀 속에 가둬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본고사든 수능시험이든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하는 방향으로 대입 전형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겁니다. 고교 등급제도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정리하자면 '2불 보완' 입니다.
여기에 현재 여론조사 1, 2위를 달리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입장은 3불 정책에 비판적입니다.
이 전 시장은 본고사는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하고 기여 입학제도 제도적 보완을 거쳐 점진적으로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고교 등급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대학입시의 전면 자율화가 기본 입장으로 교육부를 폐지하는 수준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고사는 당연히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기여입학제에 대해서는 사회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나 투명성이 담보된다면 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정운찬, 손학규 두 사람을 제외한 기존의 범여권 주자들은 대체로 3불 정책에 우호적입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서도 차이는 있습니다.
먼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3불 정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시기가 아니며 다만 수월성 교육을 어떻게 보강할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가장 강경한 3불 정책 옹호론입니다.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3불 정책의 기조는 유지하되 기여입학제의 경우 재원의 상당액을 장학금으로 쓰고 재정운용 투명성이 보장된다는 전제 하에 국민의 공감을 거쳐서 도입을 검토해볼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기여입학제 부분은 박근혜 전 대표와 비슷해 보입니다.
반면 정동영 전 의장은 당장 3불 정책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당장 3불 정책을 폐지하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극단화시키고 부모의 직업이 자식에게 대물림 되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정 전 의장은 3불 정책을 지키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보다 교육 체제 전반을 통째로 바꾸자는 쪽에 더 관심이 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학제를 현재의 6-3-3-4제에서 5-3-3-5제로 바꿔서 대학에 1년짜리 교양대학이라는 과정을 두자는 겁니다. 일단 교양대학에 들어간 뒤 세부 전공을 둔 본격적인 대학 과정으로 들어가게 하면 현재의 교육 문제들을 많이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른바 범여권과 한나라당 주자들 사이에 정책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범여권 주자들 사이에도 정책 차이가 있는 것이 크게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의 차이가 매우 핵심적인 사안일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한미 FTA 문제는 물론이고 교육 정책도 우리 사회에서는 부동산, 대북 정책 등과 함께 핵심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독특한 자기만의 정책 공약을 들고 나오는 것과는 달리 이런 큰 정책 분야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면 서로 통합이나 협력을 논의하는 것에도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이런 정책의 차이를 두고 정파가 갈리고 정당이 나뉜 적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지금도 이런 정책적 차이에 대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경향이 올바른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현실적인 시각이기는 하겠지요.
철학의 차이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정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에 대한 아무런 정리 없이 막연하게 "다 같이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세력이니까"라는 식으로 통합을 얘기하는 것은 좀 심하게 말하면 국민에 대한 사기극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나라당에 반대한다는 것이 그 자체로 어떤 가치나 정책 방향이나 철학 등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측면에서 손학규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은 궁극적으로 한국 정치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인 정책 노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탈당 정치인'이라는 낙인이 무서워 당을 함께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죠. 물론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하기에 앞서 자신과 한나라당과의 정책적 차이에 대한 고심 끝에 그런 결단이 나왔으면 더 좋았겠지요.
한미 FTA 문제도 그렇고 교육 문제도 그렇고, 이렇게 주자들 사이의 정책적 차이들이 좀 더 분명하게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그런 부분을 주시하고 싶고요, 혹시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도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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