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의 글들은 블로그 포스트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동안 썼던 글들을 취재파일로 옮기다보니 순서가 거꾸로(로꾸거) 돼있네요.
양해 바랍니다.
2007년 돼지해가 밝았습니다.
여러분들의 새해 첫날은 어땠는지요?
정치부 기자인 저는 정치인들, 주로 전직 대통령의 집을 찾는 것으로 올해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지난해 마지막날 밤부터 올해 첫날 새벽까지 올 한해를 설계하고 공상해보는 것도 거르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 정치부 취재를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7년 말이었습니다.
경황없던 98년을 제외하고 99년부터 2003년까지는 늘 새해 첫날에 정치인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 때는 여러가지로 지금과 달랐습니다.
유력 정치인들은 뒤질세라 집을 개방했고, 찾아오는 사람은 기자건,정치인들이건,민원인들이건 가리지 않았습니다.
2002년 첫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이인제 의원의 집 현관에 신발이 가득했던 게 생각납니다.
새해 첫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가를 보면 그 정치인의 세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간단한 떡국과 다과는 물론 때로는 화투판도 벌어지고는 했습니다.
정치인들의 덕담과 새해 각오를 들으며 한 해 정치판을 예상도 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선배들은 그런 모습들이 오래된 관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과 몇년이 지났지만 정치판은 참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새해 첫날이었지만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 중에 집을 연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제가 돈 곳은 그래서 전직 대통령들의 집이었습니다.
아, 한군데가 더 있네요. 이회창 전 총재의 아파트에도 갔습니다.
5년전에는 가회동 빌라였는데,지금은 동부이촌동의 아파트에 살고 있더군요.
정치 재개, 대선 출마 의지라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되며 이회창 전 총재의 속내가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마침 이회창 전 총재는 오전 11시 한나라당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유명한 운동선수들이 인사를 마치고 나오더군요.
탁구의 유남규, 현정화 선수(지금은 감독, 코치죠)
그리고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 선수도 볼 수 있었습니다.
탤런트 심은하씨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지상욱씨와도 인사를 나눴구요.
지 씨는 알려진 것처럼 이회창 전 총재를 지근거리에서 돕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저희 팀과 만난 이 전 총재는 여당의 전월세 5% 상한제등을 거론하며 과거에도 비슷한 제도들이 여럿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도 자체보다 운용이 문제라는 얘기였던 것 같습니다.
같이 있던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등과도 가벼운 얘기를 나눴구요.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에게 맡기고 저희팀은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 집으로 옮겼습니다.
고 건 전 총리가 오전 11시에 들르기로 했으니까 그 때 가면 두 사람의 얘기를 다 들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상도동 집앞 공원에 고 전 총리가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정치판의 재사로 유명한 윤여준 전 의원(이회창 전 총재의 최측근이기도 했구요,
지난 2000년 16대 총선 당시 지금은 고인이 된 김윤환 전 의원을 공천에서 탈락시키며 한나라당의 공천혁명을 주도했었습니다.)도 공원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공원에서 김 전 대통령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고 전 총리는 반가워 하다가 이내 기자앞에서 조심스러워지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더군요.그래도 자신이 올해의 4자성어로 내세운 雲行雨施(구름이 움직이니 비를 뿌린다)의 뜻을 자세히 설명해주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는 늘 새해첫날 오전 11시에 만나는 게 무언의 약속이라는 얘기도요.
그들과 같이 김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차남인 현철씨가 아버지보다 앞서 현관에서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저는 97년 검찰에 소환돼왔던 그를 봤었습니다.눈물을 떨구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 이후 이렇게 새해 첫날에 몇번 보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감기가 조심스러워 최근에는 아침의 배드민턴 운동을 거르고 있다고 했습니다.
대선의 해인 올해는 참 빨리 갈 것 같다고도 했고요,
지난해는 정말 더디 갔다며 답답한 표정도 짓더군요.
그러면서 대세대로 갈 것이라며 나름의 전망도 내놓았구요.
자신이 올해의 휘호로 써놓은 無信不立을 가리키며 논어에 나온 말이라면서 무엇보다 정치인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잘 쓰지 않는다고 전제했는데, 고 전 총리는 요즘에도 많이 쓴다고 대답해 저 혼자 속으로 웃기도 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리고 "아침 일찍 손학규가 왔다 갔고, 이명박 시장은 오늘은 손님이 많을 테니 자기는 내일 오겠다고 해서 점심때 떡국이나 같이 먹기로 했어요."라는 말도 했습니다.
은연 중에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하는 말 같았습니다.
점심때는 임채정 국회의장 공관에 가서 의장과 떡국을 같이 했습니다.
당적을 떠나 무소속 신분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몸담았던 여당의 답답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큰 듯 했습니다.
국회의장에게는 여야 가리지 않고 많은 의원들이 오고는 하지만 제가 있을 때는 장영달, 배기선, 박병석, 김부겸 의원등 주로 여당의원들만 보이더군요.
조선과 동아, 한국, 한겨레, 연합뉴스, KBS기자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어 저희가 간 곳은 전두환 전 대통령 집이었습니다.
얼마전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을 검찰이 추징했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사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잊힐만 하면 재산 또는 80년 서울의 봄 시절의 얘기로 대중의 관심안으로 들어오곤 합니다.
저는 2003년 전직대통령들을 인터뷰해서 '대통령,성공할 수 없나?'는 한시간짜리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가장 어렵게 인터뷰했던 사람이 전두환 전 대통령입니다.
정말 열심히 찾았는데도 도통 모르겠다며 전두환씨가 아마도 연희동 집 마당에 돈을 숨겨놓고 있는 것 같다던 당시 수사검사의 말이 생각나 그 질문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 때 전두환씨는 예의 호방함으로 "와서 파보쇼"했습니다.
이후 전씨의 재산문제가 기사화될때면 후배 법조기자들이 당시 인터뷰를 반복해서 사용하곤 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집에서는 정작 전씨와의 시간보다는 인사를 하러온 이석채 전 정통부장관,최동규 전 장관 등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셨던 분들과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눴습니다.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관심들이 크더군요.
그들도 시청자라고 생각해보면 정말 공정한 보도라는 것은 쉽지 않는 과제라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전씨는 우리를 오래 기다리게 했던 게 미안했던 지 별채가 아닌 본채로 불러들였습니다.
ㅁ자 모양으로 방석이 놓인 방이었는데요,
한복으로 성장한 전 전대통령은 육사시절 골키퍼를 맡게 된 게 유일하게 코치로부터 혼나지 않던 포지션이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구수하게 풀어나갔습니다.
나카소네 전 일본 총리의 초청으로 일본에 가서 난생 처음 온천욕을 하며 티를 안내려고 오래 버텼다는 얘기를 하다가는 일본과 가까이 지내야 중국이 우리를 업수이 여기지 않는다는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씨 집을 방문하고 나오는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전직 대통령이면서 군사반란과 내란의 주모자라는 그의 정체성만큼?할 생각이 있느냐고 질문을 던져 "어디든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대답을 이끌어내고는 "전두환 씨, 광주 가겠다."는 기사를 썼었습니다.
아직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가 광주를 방문해서 우리 현대사의 아픈 매듭을 풀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반영됐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 앞에는 청와대 직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오후 4시쯤 이병완 비서실장이 올 예정이라 미리 와있다고 하더군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이 아닌 이웃해 있는 김대중 도서관에서 손님을 맞았습니다.
저희가 들어갔을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 여사가 나란히 서서 손님들과 차례차례 악수를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있고 손님들이 쭉 도는, 청와대식의 인사였죠.
참 많은 사람이 왔더군요.
김 전 대통령은 첫 날 덕담과 함께 대북 햇볕정책의 유용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새해 벽두에 참 많은 정치인을 만났습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정동영 전 의장, 이명박 전 서울시장 등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았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민의 뜻이 가장 중요하고 그 것을 따르는 게 정치인의 도리다."고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대선예비주자들을 격려했습니다.
그 말을 받아들이는 차기 주자들의 속마음에는 어떤 생각이 자리잡고 있을까요?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대선 예비주자들의 만남은 여러분들도 그냥 넘기시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전직 대통령들은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하며 지지자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대선 예비주자들은 전직대통령들이 인정하는 주자라는 이미지를 갖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세상이 많이 변해도 이런 모습들은 변하지 않을 듯 합니다.
변한 것도 많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는 정치인들의 새해맞이, 올해는 참 바쁜 한 해가 될 듯 싶습니다.
바쁘지만 짜증나거나 힘들지 않는 그런 취재를 했으면 하는데, 너무 큰 바람일까요?
올해는 진짜 자주 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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