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군이 숨진채 발견된 건 14일 밤입니다.
언론에는 15일 저녁부터 대대적으로 보도되기 시작했고요.
이렇게 크게 다뤄지는 죽음 소식에는 으레 영결식과 가족들의 애끊는 슬픔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16일 아침 인천으로 가서 취재를 지원하라는 얘길 들었고, 이동하는 중에 박 군의 영결식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촬영이 가능하다면 따로 한 꼭지를 제작해야 했습니다.
게임기를 사러 혼자 집을 나섰던 박 군.
사흘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는데 부모 마음이 어떨까요.
미혼 남자가 영결식을 지켜보며 부모 마음을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부모의 깊고 깊은 슬픔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표현하는 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가령 관이 영구차에 실리는 것을 유족들이 막는다거나, 떠나는 영구차를 붙잡으려고 애쓴다거나 하는 표현들입니다.
누군가의 심정을 추측해서 기사를 쓰는 건 분명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부모의 일반적인 심정"을 전달해 유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범죄인지를 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계속 영결식을 지켜보면서 또 화장하는 모습을 따라가면서 부모의 눈이 되려고 했습니다.
아이는 게임기를 사려고 나갔다가 유괴를 당했으니까, 게임기를 잔뜩 사와서 공부를 저버릴지라도 제발 게임하는 모습이라도 봤으면 하는 게 분명 부모 마음일 것입니다.
또 부검 결과 질식사했다는 피의자의 주장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익사한 것으로 결론이 나왔으니까, 차가운 물 속에서 숨져간 아이를 생각만 하면 부모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갈 것입니다.
영결식 기사는 이렇게 '~일 것입니다.'라는 표현이 가능한 영역입니다.
부모보다 먼저 가는 것.
그게 그렇게 큰 불효라고 하는 것을 어제 영결식을 지켜보면서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 깊은 슬픔과 불행을 영상취재기자와 함께 지켜보는 것은 참 힘이 들고, 어떤 기자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합니다만, 그러면서도 유족들의 작은 손짓 하나와 절규하는 목소리 하나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또 숙명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영구차에 누가 태웠냐고.. 내가 태우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고.. 소리지르는 유족과.
우리 새끼 한번만 더 만져보자.. 고 흐느끼면서 영정 사진을 쓰다듬는 유족의 손짓과.
화장장에서 울먹이며 네가 갈 곳이 아니라고.. 네가 갈 곳은 정말 아니라고 흐느끼는 유족의 목소리를 담는 것은,
유족들에게 다시 한번 상처가 되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유괴라는 죄에 대해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또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남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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