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정치

대선주자들, 한미 FTA를 말하다

심석태

입력 : 2007.03.16 09:37

범여권 주자들 대체로 '반대' 입장 표명...민노당은 대표가 단식 농성중


한미 자유무역협정, 즉 한미 FTA를 놓고 정치권이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한동안 한미 FTA는 농민단체를 포함한 재야와 민주노동당의 이슈에 불과했습니다. 대규모 폭력 시위로 논란을 빚기도 했고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집단 단식 농성도 있었습니다만 전체 정치권의 반응은 뜨뜨미지근 했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8차 협상이 마무리된 지금 이른바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대선주자들이나 정치 지도자들이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입장을 밝힌 쪽은 민생정치준비모임을 이끌고 있는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입니다.

■ 민생모임은 그동안 FTA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여러 차례 토론을 벌이는 등 '공부'를 해왔는데 고심 끝에 지난 화요일 (14일) 성명서를 내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했습니다.

1. 일체의 협상을 중단하고 국민적 토론후에 차기 정부로 넘길 것

2. 한덕수 총리지명자가 한미 FTA를 지휘한 것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져야 한다.

3. 정치권과 국회의 적극적인 대응을 위해 한미 FTA 졸속협상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연석회의 제안

4. 정부가 협상을 중단시키지 않고 현재와 같이 일방적 졸속 협상을 계속하면 국민과 함께 협상 중단 투쟁에 나설 것.

민생모임이 주장하는 한미 FTA의 문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미 FTA를 통해 투자자정부 제소 조항이 도입되면 주권이 침해되고 뼈있는 쇠고기 수입으로 국민의 건강과 민생 경제가 위협방고 교육, 영화 등 미래 성장동력이 침해당하고 제2의 외환위기를 방어할 수 없게 되고 미국의 무역구제법으로 여전히 수출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FTA반대 범국민운동본부 (범국본)의 주장과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는 가장 분명하고 강력한 반대 입장을 밝힌 셈입니다.

■ 다음으로 정동영 전 의장 진영에서 14일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마이너스 FTA를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현재 한·미 FTA 협상이 불평등하게 진행되고 있다. 기간을 정하고 미국의 입장대로 협상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교조적 자주노선·쇄국노선이 21세기에 부적합한 것처럼, 개방지상주의·성장지상주의도 부적합하다. '대외적 개방, 대내적 복지·민생'이 우리의 생존전략이어야 한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개방이 아니라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개방전략이어야 한다. 그 원칙과 가치는 국민의 이익이다.

따라서 참여정부 임기 내에 한·미 FTA 협상을 끝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한다. 현재까지 협상내용을 중간 계산하면 마이너스 FTA였다. 플러스 FTA로 바꿔야 한다. 플러스 FTA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이 고려하고, 판단하고, 토론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시간에 쫓겨 많은 것을 잃는 것보다, 신중하게 고려해서 손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

한·미 FTA 협상은 철저하게 국민이익의 관점에서 개성상인의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깐깐하게 국민에게 어떤 이익이 돌아갈지 계산하고, 개방으로 인해 고통 받을 계층들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3월까지 한·미 FTA 협상을 마무리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 여기에 지난달 전당대회와 함께 열린우리당 의장에서 물러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오늘 FTA 관련 입장을 밝힙니다.

김 전 의장은 그동안 공식 활동을 자제하고 휴식을 취해오다 오늘부터 처음으로 대선 주자로서의 행보에 나서는데 기자 간담회에 이은 첫 일정으로 한미 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의 단식농성장을 찾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김 전 의장의 한미 FTA에 대한 입장은 정동영 전 의장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FTA라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지금과 같은 졸속 협상으로 협정을 체결하는 것에 반대하며 국민적인 반대가 큰 만큼 차기 정부로 이양해야 한다는 겁니다.

■ 범여권의 영입 대상으로 꼽히고 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경제학자로서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지만 무조건적인 개방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정 전 총장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의 경우를 예로 들며 국가별, 경제적 상황을 무시하고 자유무역, 교역 자유화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을 했습니다.

정 전 총장도 지금과 같은 협상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결국 잠재적인 대선 주자 그룹까지 포함해서 보면 한명숙 전 총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한미 FTA를 지금과 같이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현재의 협상 결과가 협정으로 마무리되더라도 국회를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 자, 그러면 한나라당 주자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어제 열렸던 전진코리아 출범식에서 자유무역협정의 중요성을 언급했습니다. FTA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의지를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 전 지사는 특히 "언필칭 경제발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과연 제대로 국민 앞에 FTA 해야 한다고 똑똑히 말한 적이 있느냐"며 이명박 전 시장을 겨냥해 입장을 밝힐 것을 압박하고 나섰습니다. 농촌 표 뺏긴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체로 한나라당 주자들은 한미 FTA에 대해 찬성 입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 그러나 당이나 정치 세력들의 입장을 보면 입장은 더욱 복잡합니다. 입장을 분명히 한 곳을 보면 민주노동당 반대, 민생정치모임 반대이고요, 열린우리당 탈당 의원들의 모임인 통합신당모임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얻는 것은 추상적이고 적다. 잃는 것은 구체적이고 많다. 한미 FTA에 올인해야 하는 절박한 사정에 대한 답변이 없다"며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한다면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는 겁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내부적으로 입장이 엇갈려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농촌 출신들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의원들이 벌써 반대 입장을 밝힌 상태입니다.

한미 FTA는 너무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선이야 기껏해야 앞으로 5년 동안 우리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죠. 하지만 한미 FTA는 앞으로 사실상 항구적인 한미간 경제 관계를 정하는 일이고 나아가 우리 경제의 기본 틀을 바꾸는 문제입니다.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 대선 주자들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자신들이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어떻게 다뤄 나갈 것인지를 밝히지 않고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직 입장을 공개하지 않은 주자들도 조속히 입장을 밝힐 것을 기대합니다.

민노당의 문성현 대표가 벌써 여러날 째 청와대 앞에서 노천 단식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제도권 정당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길바닥에 앉아 단식 농성을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셈입니다. 대선 경쟁도 바쁘겠지만 국회에서 이 문제가 제대로 다뤄져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