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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기자', 헬스를 도발하다

김영아

입력 : 2007.03.16 09:38|수정 : 2007.03.16 11:03


3주 넘게 붙들고 있던 <헬스열풍, 허와 실> 시리즈를 오늘로 끝냈다.

안팎에서 나름대로 반응이 뜨거운(?) 시리즈였다.

운동이 생각보다 감량효과가 별로 없다는 내용이 담긴 첫 번째 리포트가 나간 뒤 한 후배가 물었다:

"선배, 살 빼려면 어떻게 운동해야 해요?"

'걷기를 하면 살이 잘 빠지고' '단백질을 먹으면 근육이 잘 생긴다' 같은 많은 정보들이 사실은 많이 과장돼 있다는 내용이 담긴 두 번째 리포트가 끝난 뒤 한 선배가 말했다:

"리포트 보고 나니 운동 그만해야 할 것 같아."

마지막 기사를 위해 컴퓨터 그래픽을 맡기러 갔을 때 그래픽실 팀장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배신하고 가서 그럴 수가 있어?"

(이 말의 의미는 잠시 뒤에...)

갑자기 '준 전문가' 대접을 해 준 회사 '안'의 따뜻한 반응과 달리 회사 '밖'의 반응 가운데는 상당히 '까칠한' 것들도 있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기사 내용에 동조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 사이에 공방이 치열했다.

특히 운동관련 정보들 뒤에 숨은 자본의 논리를 언급한 두 번째 기사의 경우 댓글에 덧글까지 붙여가면서 시청자들 사이에 토론 열기가 제법 뜨거웠다.

당연히 '악플'도 있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무식한" 기자야 "운동 한 번이라도 해 보고 기사를 써라"

그런 악플 보고 즐겁고 유쾌해서 웃음이 났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특별히 상처받고 마음 상하지도 않았다.

우선은 애당초 악플에 상처받는 체질이 아닌 탓이다.

어느 사이트의 어느 글에서든 악플을 발견하면 그저 인터넷 시대의 과격한 표현방식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러니 한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고 의연할 수 있었던 더 큰 이유가 있다.

이런 '논쟁'을 예.상.했.기. 때문이다.

논쟁은 사실 이번 시리즈의 출발점이었다.

그리고 그 논쟁은 다름아닌 내 '내부'에서 시작됐다.

SBS 목동사옥 지하에는 아담한 규모의 피트니스센터가 있다.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온 뒤 첫 출근한 지난해 9월 첫 월요일부터 지하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휴가기간 동안 심심해서 책장을 정리하다가

몇 년 전에 샀던 운동 관련 책을 발견한 게 계기였다.

'몸짱'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에 '몸 만들기' 비법서로 꼽히며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됐던 책이다.

휴가 마지막날 소파에 누워서 그 책을 들척이다가 "나도 몸짱 한 번 돼 보자"고 결심했던 것이다.

다음날부터 두 명의 트레이너분들에게 프로그램을 짜 달라고 해서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일요일만 빼고 일주일에 6일을 퇴근하면 바로 내려가서 올림픽 준비하는 국가대표 선수처럼 운동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1시간 조금 넘게 한 뒤 유산소 운동을 1시간 정도 더 했다.

준비운동에 마무리 스트레칭까지 마치면 2시간 반이 훌쩍 넘곤 했다.

휴가기간에도 자전거 타고 회사 나와서 운동 하고 돌아갔다.

쉬는 토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엔 부서 회식처럼 도저히 운동할 시간을 낼 수 없는 날을 대비해 30kg짜리 조립아령 세트까지 샀다.

엑셀에 양식을 만들어서 매일 운동일지도 꼬박꼬박 썼다.

2kg과 3kg 아령으로 시작했는데, 몇 달 지나니 7kg, 9kg짜리도 거뜬해 졌다.

스미스머신에서 15kg짜리 봉 양쪽에 2.5kg짜리 원판을 끼우고 20회 벤치프레스를 3세트는 할 수 있게 됐다.

한 트레이너는 'VIP회원'이라고 불렀고, 다른 트레이너는 '에이스'라고 불렀다.

꼬박꼬박 나와서 열심히 운동한다는 칭찬이었다.

운동은 어디까지나 '과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보수집에도 열을 올렸다.

운동 관련 책을 3권 샀고, 각종 포털의 유명하다는 카페와 사이트, 동호회에 줄줄이 가입했다.

각종 검색사이트를 죄 뒤져서 고르고 고른 퀄리티 사이트들은 즐겨찾기에 '웨이트'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쌓아 나갔다.

그리고 게시판이건 칼럼이건 더 읽을 게 없을 정도까지 다 찾아 읽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헬스 관련 사이트에 올라온 부위별 운동 동영상 50여개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봤다.

운동영양학 책까지 사 읽으면서 체중대비 권장 단백질 양대로 닭가슴살과 보충제도 꼬박꼬박 먹었다.

그렇게 반년을 운동한 결과는-

근육이 좀 잡히면서 몸매가 조금 보기 좋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체지방량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더 이상한 건 거울에는 분명 '알통'이 보이는데 근육량은 수치상으로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었다.

딱 한 가지 분명한 건, 달릴 수 있는 속도와 시간이 훨씬 늘었다.

처음엔 10km/h로 30분 넘게 뛰면 숨이 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1시간 쯤은 숨차지 않게 뛸 수 있게 됐다.

처음엔 10km/h 이상 속도로는 뛸 엄두를 못 냈는데, 좀 지나니 인터벌 훈련 할 땐 13km/h로도 달릴 수 있게 됐다.

심폐기능 향상은 이렇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무릎이 아파졌다.

좋다는 방법은 다 찾아서 누구보다 과학적으로 운동하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체성분 분석기의 숫자가 계속 엉뚱한 소리를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야금야금 무게 늘려가고 속도 늘려가는 재미가 좋긴 한데, 가끔은 무릎까지 아파가면서 이걸 하는 게 옳은 일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쉬엄쉬엄 하려면 왠지 게으르고 나태해져서 효과도 못 볼 운동에 시간낭비만 하는 것 같았다.

한 달에 두 번 씩 날짜까지 정해놓고 꼬박꼬박 체성분을 측정해 가면서, 4주에서 6주 간격으로 트레이너에게 새 프로그램까지 받아 가면서, 이 방법 저 방법 좋다는 방법은 다 시도해 봤는데 다들 거기서 거긴게 참 이해가 안됐다.

도대체 뭘까?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는 안되는 몸짱의 '비결'이 대체 뭘까?

이 얘길 믿어야 할까, 아니면 저 얘길 믿어야 할까?

믿을만한 얘기가 과연 있긴 한걸까?

얼추 3주 넘는 기간동안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의학, 한의학, 운동영양학, 운동생리학, 생화학, 스포츠사회학 등 각 분야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전문가들 수십명을 만났다.

반년 넘게 혼자 이것저것 찾아읽으면서 궁금했던 것들,

실제 직접 운동하면서 거쳤던 시행착오들과 그로부터 비롯됐던 질문들을 원 없이 물어봤다.

수많은 책과 사이트에서 '전문가'의 입을 빌린 '비법'으로 통하던 주장들에 대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의혹이나 의문들도 죄다 물어봤다.

4회에 걸쳐서 방송된 시리즈물은 그 결과물이다.

4회동안 대략 12분 안에 담으려고 노력했던 얘기들을 한 마디로 결론을 다시 압축하면 아주 간단하다 : "기본으로 돌아가자."

예전에 블로그의 포스트로도 썼던 내용이다.

그 기본은 정말 기본적인 것들이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운동도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

-각자의 체력이나 건강수준, 목적에 따라 최적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운동은 모두 달라진다.

-감량이 목표라면 단백질로든 탄수화물로든 지방으로든 먹은 것보다 많은 칼로리를 태우면 된다.

12분 안에 담지 못했던 얘기들을 조금 더 소개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들려줬던 얘기들을 몇 개만 더 추려보면 이렇다:

-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운동에도 몇 주만에 뚝딱 몸짱을 만들어주는 '비법' 같은 건 없다.

-운동은 트레이드오프(trade-off)다. 운동의 성과는 투자의 결과고, 운동으로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몸짱으로 '체격'이 변하는 것과 체력이 좋아지고 건강이 좋아지는 건 꼭 일치하는 게 아니다.

-운동에도 '요요현상'이 있다. 안하면 근육도 풀리고 체지방도 다시 붙는다.

-한 달 두 달만에 변신한 몸짱 연예인들의 '몸'은

 '생업'이라는 절박한 동기아래 투자한 엄청난 돈과 하루 4-5시간 이상의 고된 훈련의 결과다.

-운동으로 1달에 10kg 뺐다는 사람은 1달 전까지 정상보다 최소 10kg 이상 더 나가던 심한 과체중 환자였다.

-운동해서 살 뺐다는 사람들의 빠진 체중은 운동으로 소비한 칼로리가 아니라 덜 먹은 밥의 양이다.

-걷기로 이미 지방이 굳어진 칼로리를 먼저 빼는 것이나 달리기로 언젠가는 지방으로 굳어질 단백질이나 탄수화물의 칼로리를 먼저 빼는 것이나  같은 칼로리를 소모했을 때 빠지는 최종적인 지방의 양은 결국 같다.

-외국 자본까지 가세한 화려한 체인형 시설에서 개인강습 받으며 내는 수강료의 반 이상은 트레이너가 아닌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과 그 브랜드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직업운동선수들의 평균수명은 일반인과 비교해서 비슷하거나 오히려 짧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운동이 아니라 치료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위에 열거한 내용들 가운데 내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견'이나 '주장'은 단 하나도 없다.

모두 내가 만났던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나왔던 얘기들이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노골적으로든 행간으로든 지난 4일 동안 연속으로 이런 얘기를 했더니 지난 반년간 지하 헬스클럽에서 거의 매일 만나던 옆팀 팀장님이 농담을 던지셨다:

"배신하고 가서 그럴 수가 있어?"

'배신'은 시리즈 제작때문에 지난 3주동안 운동하러 거의 못 갔던 걸 얘기하시는 것이고,

'그럴 수가 있어?'는 "그렇게 비관적(?)으로 운동의 뒷면을 캐도 되는 거야?"라는 얘기다.

마지막 리포트 기사 작성을 마치고 내가 드린 대답은 이랬다:

"내일부터 다시 운동하러 갈거에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도발'적인 시리즈를 제작한 건 운동의 '폐해'를 전파하고 운동하는 이들의 의욕을 꺾어서 '대한민국의 헬스 산업을 공멸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겪었던 시행착오와 전문가들의 검증을 거쳐서 확인된 '기본이 중요하다'는 진실을 바탕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효율적으로 더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무식한 기자'의 '운동 한 번 해 보지 않고' 쓴 기사에 분노하는 댓글들을 보면서 분하거나 화나거나 맘 상하지는 않지만 참 안타깝다.

많은 경우에, 우리 사회에서 '지식'은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동의어다.

그리고 또 많은 경우에

우리 사회에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내가 믿고 싶은 정보'의 동의어다.

사람은 잘 안 변한다.

누가 뭐래도 일단 믿고 싶은 걸 믿게 마련이다.

믿고 싶은 건 정말이지 믿.고. 싶.기. 때문이다.

실은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그렇다.

위에 죽 열거한 리스트의 맨 아래 문장은 사실 한 대학병원의 마취통증과 과장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운동하다 부상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나 취재하는 과정에서 뛰다가 무릎 아파진 경험을 얘기했더니 싫다는 걸 억지로 침대에 눕히시더니 '진찰'을 해주셨다.

그런데 '운동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다'는 대한민국 최고 권위자 가운데 한 분의 말씀을 듣고도 나는 "시리즈 털었으니 내일 부터는 다시 운동할 수 있겠군."하는 생각을 하면서 즐거워 한다.

방송에선 쉬엄쉬엄 적절히 운동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그렇게 해 놓고 정작 스스로는 슬금슬금 해서는 도대체 운동한 '맛'이 안나는 걸 어떡하겠느냐고 자기변명을 한다.

시큼거리는 무릎의 통증을 바벨의 늘어나는 무게와 러닝머신의 올라가는 속도와 기꺼이 맞바꾼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는 건데,

나같은 사람이 다 사라질리 없기 때문에라도,

방송에서든, 신문에서든, 잡지에서든, 인터넷의 블로그에서든 '헬스'를 향한 누군가의 '도발'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덧붙임

쓰다보니 중언부언 장황해지기만 한 느낌도 있고, 4편으로도 담지 못한 얘기를 다 풀어놓으려면 밤새 더 써도 끝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긴 것도 아니고 짧은 것도 아닌 이 글은 '무식한 기자'의 변명도 아니고 '준 전문가'의 반론도 아니다.

그저, '취재기자'의 '취재파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