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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물방울 하나가...

송인호

입력 : 2007.03.07 14:43|수정 : 2007.03.07 15:40

유료도로 통행료 대납 실험 취재후기


"유료도에서 만약 앞차가 당신의 통행료를 내준다면?"

  기사에는 속칭 야마(머리)가 있다.  주제를 잡고 그에 맞게 사례를 찾아 논거를 제시한다.  물론 취재중간에 야마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내 경험상 그런 일은 흔치 않다.   '유료도로에서 앞차가 통행료를 내주면 뒷차가 어떻게 반응할까?'  '뒷차도 앞차의 행위를 따라할까?'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 통행료 대납 실험은 야마를 잡을 수 없었다.  일종의 심리실험결과를 놓고 기사를 써야하는 상황이라 고민은 더했다.   참고로 기사 아디디어는 서강대 영문과 장영희 교수가 지난 연말에 쓴 칼럼에서 얻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다리가 많은데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직장을 둔 사람이 차를 타고 다리를 건널 때 1달러가량의 통행료를 내야 한다. 가끔씩,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 같은 명절날, 어떤 때는 무슨 특별한 날이 아닌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톨게이트에서 어떤 기분 좋은 운전자가 2달러를 내면서 “내 뒷사람 것까지요” 하고 가면 징수원이 뒤차 운전자에게 “앞차가 내고 갔어요”라고 말한다. 뒤차 운전자는 자신이 준비했던 1달러를 내면서 “그럼 이건 내 뒷사람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때로는 하루 종일 “내 뒷사람 겁니다”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시작한 선의가 릴레이식으로 다음 사람에게 전달되고, 똑같이 1달러를 내면서도 꼭 내야 하는 통행세가 아니라 내가 주는 선의의 표시가 되고, 그래서 "내 뒷사람 겁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마다 얼굴에 밝은 미소를 짓는다는 말이었다.

- 2006년 12월29일 동아광장 장영희 칼럼 발췌 (https://www.donga.com/fbin/output?n=200612290069)  



  "낯선 사람의 호의를 경계하는 것은 한국인의 특성?"


  실험장소는 남산 1,3호 터널과 외곽순환도로 김포IC 이렇게 3곳으로 정했고 네차례에 걸쳐 60명의 운전자를 대상으로 반응을 살폈다.   카메라 설치가 고민꺼리였다.  운전자가 카메라를 의식하면 안되기때문에 최대한 카메라가 노출 되지 않도록 징수부스 안쪽에 설치했다.  첫번째 실험결과는 기대와는 달랐다.  아니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는게 맞는 말이다.  남산1호터널에서 15명을 상대로 실시한 실험에서 단 1명의 운전자도 뒷차를 위해 통행료를 내주지 않았다. 내주기는 커녕 버럭 화를 내거나 예상치못한 상황에 당황해하면서 앞차가 통행료를 내준 이유를 물어보는 운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2차 실험방법을 바꿨다. 이번에는 앞차가 통행료를 내준 이유를 징수원이 운전자에게 설명해줬다. 결과는 1차와는 달랐다. 앞차의 호의를 이해한 운전자들은 징수원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표하거나 아니면 무덤덤하게 그냥 지나갔다.  그래도 뒷차를 위해 혹시나 통행료를 내줄까하는 기대는 남아있었는데 이번에도 예상이 빗나갔다.  외곽순환도로와 남산 3호터널에서 실시된 3차 실험. 이번에는 징수원이 대납 이유를 설명해주고 당신도 뒷차를 위해 통행료를 내줄 수 있는지 의향을 물어보기로했다. 반강압적(?) 권유에 운전자들은 뒷차를 위해 통행료를 내준사람이 3명. 그나마 중년 남성이 선뜻 뒷차요금까지 내주겠다고해 60명 가운데 4명이 통행료를 내준셈이 됐다.   


  실험결과를 들고 심리학 교수 자문을 얻기로했다. 이번 실험결과를 어떻게 기사로 쓸지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심리학과 교수의 자문은 굉장히 달랐다. 그런 실험을 왜 했느냐는 질책성 질문에서부터 심리학자들이 해야할 실험을 언론이 해줘서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반응까지.  고려대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는 한국 사람의 경우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맥락정보(hidden message)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호의를 받으면 호의 자체보다는 의도가 뭐냐를  궁금해한다는 것이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도 비슷한 해석을 내놨다. 낯선 제3자의 호의를 받으면 그 내면에 숨겨진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인간의 방어기제일 수 있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성향이 특히 강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행동특성과 심리연구를 오래해온 전 중앙대 최상진 교수도 '습관이나 관례가 없는 상태에서, 앞차가 모르는 뒷차 요금을 내주는 행위는 상식적으로는 설명이 안되기때문에 운전자들이 당혹스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분석을 했다.   문득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트러스트(trust)'가 떠올랐다. 한국 사회는 가족이나 친척 등 피붙이를 제외하고는 남을 신뢰하지 못하는 'low trust society'에 속한다는 것이 후쿠야마의 주장이다. 이번 실험결과만을 놓고 볼때 후쿠야마의 주장과 두 심리학자의 자문은 일치했다.  


  "작은 선의 하나가 사회 전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힘"


 이번 실험은 기사를 떠나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생각해볼 꺼리를 던져줬다.   내가 평소에 남을 위해 작은 선의라도 베푼 적이 있는가?  또 남의 호의를 받았을때 나도 그런 호의를 베풀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런 생각을 해볼 겨를도 없이 뭔가에 떠밀려 내 행복만을 위해 살아온 것은 아닌가?   통행료 대납 실험은 분명 엉뚱했다.  방송 뉴스에 이런 기사를 낸다는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맨 앞차가 뒷차를 위해 내준 몇천원의 작은 '마음'하나가  계속 뒷차에게 전달돼 100대, 1000대의 통행자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기대를 저버리기에는 아직 우리사회가 살맛나고 따뜻하지 않은가?  이번 실험을 통해 '세상은 바라보는 눈에따라 달라지고, 세상이 중요한게 아니라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Practice random kindness and senseless acts of beauty'

                          "때론 인생에서 엉뚱한 친철과 정신나간 선행을 실천하라"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