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정치

정운찬 전 총장은 불쏘시개?

심석태

입력 : 2007.03.06 19:19

왜 정치권은 정 전 총장을 주목하는가


한나라당은 세 명의 주요 대선주자들이 연일 상호간에 치열한 공방을 벌이며 사실상 경선 레이스를 시작한 상태지만 범여권으로 불리다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탈당으로 구여권으로 불리는 진영의 경선 레이스는 도통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당 지지도가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제대로 국민들의 관심을 받는 주자조차 없으니 어지간해서는 기사 거리가 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30명에 이르는 국회의원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는데 막상 탈당한 이후에는 열린우리당 자체나 탈당한 의원들이나 언론의 관심권에서 많이 멀어져 버렸습니다. 아직은 뚜렷한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요.

한명숙 총리가 내일 총리직을 떠나 열린우리당으로 돌아오면 곧바로 대선주자로 나설 것으로 알려지면서 뭔가 흥행이 되지 않겠냐는 기대도 있지만 실제로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워낙 구여권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들 아시겠습니다만, 지금 표면에 드러나 있는 주자들을 보면 정동영,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그리고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이 있습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 경선이나 대선 출마 선언을 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오래 전부터 '캠프'라고 불리는 선거 준비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든 언론이 이들을 공식적인 대선 주자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해보면 이들의 지지율은 모두 다 합쳐도 10%에도 까마득합니다. 정동영 전 의장이 3-4%를 오르내리고 있고 다른 두 후보는 1% 남짓에 불과하니까요. 때문에 뭔가 이런 상황을 타개할 비책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좀 거칠게 말하면 흥행이 되는 카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흥행을 염두에 두고 거론되는 몇몇 인물들이 있습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박원순 변호사, 문국현 사장이 그들입니다. 그런데 박원순 변호사와 문국현 사장은 모두 분명하게 정치와는 선을 그었습니다. 절대로 정치부 기자로서 자기들에 대해 관심 가질 일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하더군요.

현재 비슷한 태도를 보이는 인물들이 정 전 총장과 강 전 장관입니다. 정 전 총장은 "여권이 나를 불쏘시개로 쓰려 한다"고 했고 강 전 장관은 "내가 치어걸"이냐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고 있지만 딱히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 전 장관과는 달리 점차 정 전 총장의 발언은 조금씩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난달 23일 충남 공주에서 열린 강연회에 직접 갔었습니다. 강연 내용도 우리 경제가 나아갈 길에 대한 것이었고 일문일답에서는 지도자에 대한 몇 가지 조건 같은 것도 얘기를 했습니다. 사회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사회에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도 했고 대선 국면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시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라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기존의 발언들에 비해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말이었습니다.

여기에 어제 포항에서 있었던 강연에서는 '너무 재촉하지 말라'면서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보입니다. 결국 경우에 따라서는 대선 정국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입니다. 

한나라당은 처음 정 전 총장이 지난해 말 재경공주 향우회에서 충청도가 나라의 중심을 잡아왔다는 등의 발언을 했을 때 지역주의를 부추긴다며 비판을 했었고 최근에는 정 전 총장의 정체성은 오히려 한나라당과 맞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 전 총장의 행보가 조금씩 적극성을 보이면서 '그래 봐야 들러리밖에 안 될 것'이라며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현재의 여론조사에서야 별 의미있는 수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언제나 충청권의 표심이 대선 결과를 판가름했던 것을 고려해 본다면 충분히 파괴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열린우리당과 통합신당모임 등 구여권에서는 잔뜩 몸이 달아 있습니다. 고건 전 총리라는 카드를 잃어버린 구여권 진영에서 뭔가 대선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동력의 등장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너도 나도 정 전 총장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고건 전 총리의 경우처럼 정 전 총장이 자칫 제대로 등장도 해보기 전에 상처를 입는 상황이 올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구여권 내에서도 기류는 여러 갈래입니다. 일부에서는 정 전 총장을 사실상 반 한나라당 진영의 후보로 옹립해야 한다는 적극적이고 반대로 정동영 전 의장 같은 인물을 띄우기 위해, 즉 전반적인 구여권의 분위기 고양을 위해 정 전 총장이 필요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정 인물을 띄우기 위한 재료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정 전 총장이 구여권이 통합해서 구성할 신당에서 국민경선에 참여해 다른 후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결론은 정 전 총장의 결심입니다. 정 전 총장과 가장 자주 만나거나 통화하는 것으로 알려진 민주당의 김종인 의원도 "결국 결정은 정 전 총장이 내려야 할 일"이라고 말합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주변 사람들이 대신 결정해 줄 수도 없는 일이고 누가 나서서 끌어준다고 하고 그렇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다는 건 성립하기 힘든 일이니까요.

이런 정 전 총장의 결정은 그렇게 이른 시일 안에 나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정 전 총장이 결심을 하더라도 뛰어들 무대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 경험이 없는 정 전 총장이 직접 갈래 갈래 찢어져 있는 구여권의 통합 논의에 뛰어들어 가닥을 잡아간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자칫 세력들 사이의 힘겨루기에 말려들어 엉뚱한 상처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 전 총장이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면 최대한 시간을 갖고 정치권의 변화를 관망하면서 가장 적절한 진입 시점을 찾을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시점에서는 정 전 총장이 직접 정치권의 변화에 뭔가를 기여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 전 총장을 한나라당에 맞설 대안으로 보는 사람들은 지금은 정 전 총장이 스스로의 비전과 정책 등에 대한 정리를 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종인 의원도 그렇더군요.

지금 들리는 얘기들을 종합해보면 정 전 총장은 앞으로도 계속 강연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개학을 하긴 했지만 일주일에 강의는 두 차례 뿐입니다. 그것도 1학년 세미나 강의 하나와 경제학 연습이니까 수업의 특성상 그렇게 강의 준비에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정 전 총장에게는 자신의 말대로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숙고할 시간이 많은 셈입니다.

이 때문에 한 동안은 정 전 총장이 최근 보여준 강연 정치를 계속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정치와 관련한 언급도 수위를 높여가지 않을까 전망이 됩니다. 그러다보면 한나라당의 비판도 함께 상승할 것이고 그런 와중에 정 전 총장의 현실 정치 능력도 어느 정도 검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