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조선화보' 게재내용 발굴
일본에 유학중인 조선인 학생들에게 학병을 권 유하기 위해 도쿄에 간 이광수와 최남선의 대담을 정리한 '도쿄대담'이 발굴되었다.
문예 계간지 '서정시학' 봄호는 1944년 1월 도쿄에서 '학도출진 특집호'로 출간 된 '조선화보' 권두에 게재된 '도쿄대담'을 소개했다.
'신태양' 사장으로 당시 일본 잡지계에 군림했던 마해송이사회를 맡은 도쿄대 담에서 이광수는 조선 유학생이 "좀더 뜻을 크게 품어 일본 전체나 대동아 전체를 짊어지고 일어서려는 기개"를 갖기를 기대했고 최남선은 일본 무사도와 신라 시대 화랑정신의 일치를 강조했다.
먼저 이광수는 1943년 11월 메이지대 강당에서 조선 유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특별지원병 궐기대회에 참석했다면서 당시 광경에 대해 "내선일체가 실현된 것 같은 장면이었다"고 비유했다.
이광수는 대담에서 "조선의 청소년은 지금까지 조선반도만을 위한 사소한 것에 '끙끙대는 상태'를 멈추고 일본 전체의 무거운 사명, 대동아 전체를 껴안는다는 커다란 기분이 돼 신질서 건설의 주역을 연출한다는 정도의 야심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남선은 궐기대회에서 자신이 조선인의 무를 숭상하는 상무정신을 강조 했다면서 "가마쿠라 시대(일본 최초의 무인정권시대)에 있어 무사도와 신라시대의 화랑 정신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어 어떤 학자는 '무사도의 연원은 신라의 화랑이 토대였다'라는 것을 생각할 정도"라고 말했다.
최남선은 학병 지원을 의미한 듯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든가 대동아의 성전에 참가한다든가의 의의는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한편에는 우리들의 잠자고 있는 혼을 깨운다는, 어떤 의미에서는 정신적 부흥을 위한 수행에 있어 하나의 계기"라고 덧붙였다.
이어 두 사람은 자신들의 문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최남선은 도쿄에 온 15세 때 바이런의 '해적'이라는 시에 감명을 받은 뒤 일본의 신체시라는 형식을 모방해 '경부철도가'(1908)를 지었으며 이광수는 조선인 중학생 신분으로 쓴 소설 '사랑인가'가 일본의 '중앙신문'에까지 실려 평판이 좋았다고 돌아봤다.
이광수는 특히 "국어(일본어)로 소설을 쓰고자 하는 것 자체가 무모하다"며 "대체로 조선인이 쓸 수 있는 것은 수필"이라고 말했다.
일본어로 된 '도쿄대담'을 우리말로 옮긴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 자료는 학병지원 차 도쿄에 간 두 사람의 목적을 알수 있을뿐 아니라 근대문학 개척자들의 회고록이라는 문학사적 증언으로서의 의의도 갖는다"며 "처녀작부터 일본어로 썼던 이광수의 이중어 글쓰기는 눈여겨 봐야 할 점"이라고 설명했다.
대담에서 이광수는 창씨개명한 이름 '가야마 미쓰오'로 표기되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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