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이창희씨 여러차례 혼절…추도식장 눈물바다
"아들아..장호야..말을 해봐라" "아들아 아들아..장호야 장호야.."
가슴 북받치는 설움으로 아들을 한없이 부르지만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고(故) 윤장호(27.다산부대) 하사는 말이 없었다.
1일 밤 쿠웨이트 무바라크공항 내 미군 공군기지인 제 5원정 항공지원단내 한쪽 편에서는 지난 27일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앞에서 발생한 폭탄테러로 숨진 윤 하사의 희생을 기리는 추도식이 열렸다.
추도식은 유해를 인수하러 이날 자이툰부대 교대병력을 위한 전세기 편으로 쿠웨이트에 도착한 부모 등 7명의 유족과 류홍규(공군 준장) 합참 인사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유해인수단, 윤 하사가 근무했던 다산부대 장병, 송근호 주쿠웨이트 대사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숨진 아들을 직접 맞이하려고 10시간의 비행 끝에 7천6백여km를 달려온 노부부는 아들의 싸늘한 주검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현지 한인목사인 쿠웨이트 한인연합교회 김영중 목사 주관 아래 기독교 식으로 진행된 추도식에서 윤 하사의 부친 윤희철씨와 어머니 이창희씨, 형 장혁씨, 누나 서연씨 등 유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때로는 땅을 치고 통곡했지만 영정 속 윤 하사는 말이 없었다.
윤 하사의 유해는 앞서 28일 밤 아프간 바그람 기지에서 미군 수송기(C-17)편으로 무바라크 공항내 미 공군기지인 제 5원정 항공지원단 내에 마련된 전구영헌수집소(TMCT)로 운구됐다.
어머니 이창희(59)씨는 "장호야, 엄마가 너와 길게 사랑을 나누지 못한게 정말 미안하다"며 "이제 봉우리가 활짝 피는 꽃이 돼야 하는데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떨어졌다"며 울먹였다.
이씨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너를 사랑하는 모습을 엄마는 보고 있다"며 "너의 영혼 천국에서 편히 쉬어라"라며 스스로 마음을 달랬다.
이씨는 또 "장호야 정말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용서해줘.."라며 얼굴을 감쌌다. 이씨는 아들의 유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혼절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아버지 윤희철(65)씨도 "장호는 입대 후 처음에는 자이툰부대에 지원했다가 떨어져 다시 다산부대를 지원, 파병 길에 나섰다"며 "아들은 정말 용감하고 훌륭한 대한민국 최고의 군인"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대한민국과 세계 평화를 위해 네가 이같이 희생됐지만 많은 국민이 너를 애도해 주고 있다" 며 "편히 잠들기 바란다"고 울부짖었다.
추도식 후 조홍석(소령) 다이만부대 지원과장은 윤 하사의 손 때와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색소폰, MP3, 디지털카메라, 옷가지 등 59개의 유품이 든 상자를 유족에게 전달했다.
아버지 윤씨는 아들이 유난히 즐겨 부르던 색소폰을 떠올린 듯 "색소폰은 어디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색소폰이 든 검정색 케이스에는 화이트 펜으로 '장호꺼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추도식 도중 윤 하사의 부모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울음을 참지 못하고 영정을 움켜잡은 채 울었고 이를 지켜보던 장병들도 소리없이 흐느껴 추도식장이 눈물바다가 됐다.
이어 윤 하사의 유해를 담은 냉동 컨테이너가 태극기에 덮여 8명의 다산부대 운구병들에 의해 아시아나 전세기에 실렸다. 윤 하사의 유해는 2일 오전 7시30분 서울공항에 도착한 뒤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져 장례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앞서 유가족들은 쿠웨이트로 향하는 기내에서 기내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아들을 빨리 보고싶다"며 윤 하사를 만나러 가는 초조함을 달랬다.
어머니 이씨는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이 비행기에 파병되는 군인들이 같이 타고 있다면서요. 제가 오면서 장호같은 아이들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했다"며 "장호가 마지막이 되어달라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모든 정부기관에서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합참은 혹시 있을지 모를 유가족들의 건강 상 돌발상황에 대비해 출발 전 서울공항에서 혈압 등을 검사했으며 군의관 1명을 동행시켰다.
(쿠웨이트<무바라크공항>=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