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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빈둥 놀던 사람들?

신승이

입력 : 2007.03.01 00:55

산업화 세대 vs 민주화 세대


"70~80년대 산업시대를 비난하는 사람은 빈둥빈둥 놀던 사람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지난 27일 자신의 정책을 자문해 주는 교수 모임의 세미나에 참석해서 한 말이다.

"(그 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금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산업시대를 비난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도 했다.

'산업시대'는 70, 80년대 개발을 주도한 산업화 세대를, 결국 건설사 CEO출신으로 토목개발의 주역이었던 이명박 전 시장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전 시장의 이런 발언은 최근 자신에게 쏟아지는 비판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짙다.

경제를 잘 이끌어 갈 것 같다는 이미지가 여론지지율 독주의 기반이 된 반면, '개발시대 논리', '개발 독재 마인드' 등 동전의 양면 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이 전 시장이 공격을 받는 한 요인이 됐다.

서울시장 시절 청계천 사업에 이어 대표 공약으로 내 놓은 한반도 대운하 구상도 이런 공격의 빌미가 돼 왔다.

그러나 자신의 공(功)을 강조하고 산업화 세대를 옹호하려고 한 이 발언이 정치권에 작지 않은 파문을 낳고 있다. 누구보다 당시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하던 민주화 세대의 분노가 만만치 않다.

당장 열린우리당은 황제식 폄하 발언이라고 비난했다. 빈둥빈둥 놀았던 사람들이 인권을 요구하며 독재에 대항해 목숨 건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도 일하는 서민, 노동자를 모욕하는 말이라고 맹비난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캠프의 대변인인 한선교 의원은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모두 그 시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말로 이 전 시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자칫 민주화 세대의 역할을 폄하하는 뜻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비판은 그 강도가 매우 세다. 손 전 지사 측은 "그 시대 민주화를 위해 희생해 온 분들에 대한 모독이며, 지도자로서 철학의 빈곤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전 시장의 발언이 있은 같은 날 아침 한 특강에서 손 전 지사는 연 이틀 이 전 시장의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개발시대 식 사고를 맹비난했다.

"도대체 한반도 대운하 구상이 지금의 국가 운용 정책과 맞는 것인가?" "70, 80년대식 개발 독재 논리는 더 이상 시대정신에 맞지 않다", "한나라당이 집권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왜곡된 지지율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등등.

한발 더 나아가 최근 논란이 된 이 전 시장의 도덕성 문제에 대한 철저한 검증의 필요성도 직설적인 화법으로 강조했다.

당 안팎에서 파문이 커지자 이 전 시장은 몇 시간 뒤 또 다른 특강에서 급히 발언의 수위를 낮췄다.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모두 우리에게 소중한 세대"라고 말이다.

그러나 결국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편 가르고 양측을 대결 구도로 만든 자신의 발언을 뒤늦게 수습하는 셈이 됐다.

이 전 시장은 겉으로 담담해 하고 있지만 이번 발언이 실수인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측근들은 전한다.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전 시장의 말실수를 줄이기 위해 사전 준비를 더 철저히 하자는 내부 논의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이번 일을 가볍게 보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 전 시장의 라이벌인 박 전 대표의 측근 의원들은 이 전 시장이 말실수로 돌리고 있지만 평소 민주화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담겨 있는 발언이었다면서 이 전 시장의 가치관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이런 '중요한' 발언이 언론에 '크게' 다뤄지지 않는 것도 불만인 듯하다.  이 전 시장에게 첨예한 각을 세우기 시작한 손학규 전 지사의 공세도 멈출 기미가 없다.

결국 '산업화 세대 vs 민주화 세대' 논란은, 한나라당과 대선주자들 간의 또 다른 정체성 공방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