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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 주책없는 아줌마 되다

김수현

입력 : 2007.02.16 14:59|수정 : 2007.02.16 19:08


안녕하세요?  설이 내일 모렙니다. 설 잘 쇠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노르웨이의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의 공연 얘깁니다. 이미 공연은 끝났지만, 이렇게 훌륭한 아티스트가 국내에서는 많이 안 알려져 있는 게 아쉬워서 썼습니다. 저도 이제부터 안스네스에 대해 좀 더 공부해 볼까 합니다. 블로그(https://ublog.sbs.co.kr/shkim0423)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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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책없는 아줌마입니다.

며칠 전 공연에서 정말 멋진 남자를 만나 완전히 '꽂혀' 버렸고,

지금도 틈만 나면 그를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만난 그 남자는 노르웨이의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입니다.

 

진눈깨비 같은, 질척거리는 비가 내렸던 화요일,

너무나 피곤하고 힘들어서(요즘 발견한 건데, 날씨가 흐리니 어깨와 등이 쑤시는 겁니다.  

나도 정말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그냥 집에 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으나,

이번이 5번째 내한공연이라는 안스네스를 한 번도 공연에서 보지 못했던 터라,

마음 먹고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으로 달려갔던 터입니다.


굉장히 좋은 연주자이고, 공연 때마다 관객의 호응도 굉장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의외로 공연장은 한산한 모습이었습니다. 궂은 날씨 때문이었을까요.

공연이 시작하기 직전, 맨 앞줄에 앉아있던 저는 뒤를 돌아봤다가

전체 객석의 반의 반도 못 채울 듯한 수의 관객들이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안스네스가 성큼성큼 걸어나오면서 이런 객석을 쳐다보는데 제가 미안할 정도였죠.

 

첫 곡이었던 그리그의 '노르웨이 민요에 의한 변주곡 형식의 발라드'.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지만, 금방 보통 내공의 연주자가 아니라는 '감'이 왔습니다.

안스네스의 음색은 말할 수 없이 투명하다고 해야 할까요, 신비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그의 연주를 두고 왜 '북구의 청정함'이라는 찬사를 보내는지 실감이 나는 연주였습니다.

 

두번째 연주곡이었던 슈만의 '4개의 피아노 소품' 역시 낯선 곡이었는데,

안스네스는 이 곡을 출판할 때 핑거링을 해줬을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자주 연주한다고 합니다.  

제가 앉은 자리는 연주자의 뒷모습과 손가락이 보이는 맨 앞줄 사이드였는데,

저는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 

그리고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꿈결 같은 멜로디에 넋을 잃었습니다.


세번째 연주곡은 베토벤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인 32번. 

앞에 연주한 두 곡에 비하면 너무나 잘 알려진 곡이었습니다..  

베토벤의 소나타가 이렇게 섬세하고 몽환적으로 들리기는 처음이었습니다.

평소 접하던 베토벤과는 달라 낯설었지만 매혹적이었습니다.


휴식 시간 이후 이어진 2부.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1부에서 안스네스의 연주할 때 표정을 못 본 것이 아쉬워

이번에는 안스네스의 얼굴이 보이는 중앙의 빈자리로 옮겨 앉았습니다. .

강약의 명확한 대비, 정교하게 구축한 음악적 구조,

웅장하게, 당당하게 포효하는 마지막 곡 '키예프의 대문'까지,

안스네스의 '전람회의 그림'은 그야말로 '압권'이었습니다.

가끔 연주가 너무 좋으면 연주가 끝나고도 잠깐 동안 박수 칠 생각도 잊은 채

멍하니 앉아있게 되는데, 이번이 꼭 그랬지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판타스틱' '그레이스풀' '뷰티풀' 이런 형용사를 많이 쓰는데,

저도 안스네스의 연주에 대해 이런 형용사를 늘어놓자면 한도끝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중 어느 것도 아주 '적확하게' 제 느낌을 표현하기는 어려울 터이지요.

 

관객은 적었지만 객석은 열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기립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습니다.

안스네스는 앙코르로 네 곡이나 선사하며 객석의 열광에 답했습니다.

스페인 작곡가 몸포우의 소품, 리스트의 즉흥 왈츠, 멘델스존의 무언가,

그리고 공연의 문을 열었던 그리그로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네번째 곡의 연주가 끝났을 때는, 저도 주저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좋은 공연을 더 많은 관객이 보지 못한 것이, 아쉽고 원통했습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이렇게 가끔 좋은 음악회에서 느끼는 '절대 감동' 같은 것은,

제가 즐겨 보는 뮤지컬에서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인 듯합니다.

 

공연장 로비. 싸인회를 하는지 어느새 관객들이 길게 줄을 섰습니다.

공연 관객은 1층도 다 못 채울 정도였지만,

안스네스의 연주를 들은 관객의 거의 대부분이 싸인을 받으려 줄을 선 모양입니다.

저 역시 갑자기 '팬심'이 발동해 그 줄의 맨 끝에 섰습니다.  

공연기획사 직원에게 부탁해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저의 상기된 표정이 보이십니까? 안스네스의 미소가 찍힌 걸 보고 무척 흐뭇했습니다. 

(주책없다고 하시는 말씀, 들리는 듯 합니다.^^)  


   





  














제가 피아니스트 안스네스의 공연을 보러 간다고 했더니

잘못 알아듣고는 '안신애? 그런 사람이 있어?' 하고는 피곤하다며 먼저 퇴근했던 남편에게,

'그 공연 안 본 거 정말 큰 실수야!' 하며,

'안스네스 정말 근사해, 끝내줘. 다섯번째 내한이었다는데 왜 이제야 봤을까' 했더니,

남편은 '그렇게 좋으면 가라, 가. 노르웨이로.' 했습니다. ^^

공연 다음날, 연합뉴스 객원기자인 음악 칼럼니스트 최은규 씨가

이 공연의 리뷰를 '그것은 피아노 소리가 아니었다. 피아노로 구현된 꿈과 환상이었다!'라고

시작한 것을 보고는 다시 전날의 감동이 되살아나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씨가 예전에 안스네스의 내한공연에 

관객이 적은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잘 모르지?' 했다는 얘기도

 

공연계의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안스네스가 다음에 또 언제 한국에 올지 모르겠지만,

그 때까지는 음반으로 제 '팬심'을 달래며,

주변 사람들한테만이라도 이 멋진 연주자를 많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교가 뛰어난 연주자는 많지만, 안스네스 같은 진짜 '예술가'는 흔치 않은 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