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일련번호의 새 1천 원권과 1만 원권 지폐를 교환하려는 시민들이 몰려든 한국은행 앞에서 22일 오전 대기자들이 임의로 순번을 정한 `자체 번호표'의 효력을 둘러싸고 서로 마찰을 빚는 소동이 벌어졌다.
한국은행은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일련번호 10001~30000번의 새 지폐를 1인당 최대 100장씩 교환해줄 계획이었으나 번호표를 받지 못한 일부 대기자들이 순서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교환 업무가 1시간30여 분이나 지체됐다.
사건의 발단은 신권을 교환하려고 일찌감치 줄을 선 대기자들이 질서 유지와 편의를 위해 자체적으로 1~200번의 순번을 미리 정해놓으면서부터.
4~5일씩 한국은행 앞에서 노숙을 하면서 신권 발행을 기다려온 사람들은 지난 19일 대표자를 뽑아 1번부터 200번까지의 숫자가 적힌 종이 쪽지에 대표자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자체 번호표를 제작, 선착순으로 순번을 정해 표를 나눠가졌다.
번호표 발행에 동의한 시민 문태주(62)씨는 "질서를 유지하고 나중에 생길 수 있는 분쟁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순번을 정한 것"이라며 "계속 앞뒤로 확인해 밥을 먹거나 씻고 오는 등 1~2시간 정도 자리를 비우는 것까지만 서로 용인하고 그 이상의 경우에는 순위표를 박탈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신권 발행 당일인 22일 오전 2시께 갑자기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상황이 다소 험악하게 변했다.
새로 온 대기자 중 일부는 "한국은행이 공식 발행해준 것이 아닌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따지며 셔터가 내려진 출입문 앞을 봉쇄하고 번호표를 받아 앞쪽에서 줄을 서 있던 사람들과 마찰을 빚었다.
이들은 오전 7시께 출동한 경찰의 제지에 따라 뒤로 물러섰으나 이후에도 고성을 지르고 말싸움을 벌이는 등 번호표의 효력에 대해 계속 불만을 나타냈다.
뜻밖의 사태로 교환 업무 개시를 늦춘 한국은행은 결국 번호표의 효력을 인정하되 1인당 100장의 한도를 90장으로 낮추는 대신 200명 외의 대기자에게 1인당 10장의 몫을 배분하기로 합의하고 오전 11시께 교환 업무를 시작했다.
1번 대기자가 창구에 들어서려는 순간 20대 후반의 남자 2명이 뛰어나와 문을 가로막고 "그 번호표라는 게 사고팔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기도 했지만 경찰이 이들을 밖으로 끌어낸 뒤부터는 무사히 교환 업무가 진행될 수 있었다.
18일 저녁부터 기다려 가장 먼저 화폐를 교환한 이순근(50)씨는 "사필귀정이다. 고생한 만큼 돌아오게 된 것 같다. 다른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라면서 "총 100만 원 상당의 돈을 바꾸려고 하는데 나중에 1천만 원 가량 호가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화폐수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소장을 목적으로 자자손손 가보로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번호표를 받지 못한 대기자 이진모(54)씨는 "신권이라는 것이 한 장이나 두 장만 있어도 의미가 있는 것인데 100장이나 바꾸려는 것은 투기 목적이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처럼 치열한 `쟁탈전'의 대상이 된 일련번호 10001~30000번의 새 지폐에 대해 한국은행 측은 "일련번호 10000번까지는 경제적 가치가 크다고 생각해 특정인에게 제공하지 않고 경매에 부쳐 성금으로 기탁하기로 한 대신 10001번부터 공급한 것인데 예상 외로 10000번 이후의 지폐에도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줄을 서있던 이성민(35·자영업)씨는 "70년대 한국은행 설립 이후 최초로 발행된 5천 원권이 지금은 가치가 30만 원에 이른다. 이번에 발행된 화폐가 나중에 어떤 가치를 갖게 될지 다들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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