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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화'-색채와 스케일의 퇴폐적 탐미주의

남상석

입력 : 2007.01.22 11:41


장이모우 감독은 첸카이거 감독과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으로 일컬어지며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등의 작품으로 세계 영화계의 이목을 중국에 집중시키기도 했습니다. 문화혁명의 상처와 그 속에서 고생하는 중국 민초들, 숨막히는 듯한 여성에 대한 억압 등 중국의 현실과 현대 역사를 보여주며 색채와 구도를 통한 예술적 형식미도 갖췄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그의 작품세계도 변하기 시작했는데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이어서 참으로 유감입니다. 세월이 가면서 모든 것이 변하고 사람도 변하는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와 쌍벽을 이뤘던 첸카이거 감독도 소품같은 상업 영화를 만들고 있지만 사회성이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만큼은 거두지 않고 있어 장이모우처럼 우려스럽지는 않습니다. 연보상에 나오는 그의 작품을 다 보지는 못했지만 [영웅]에서 형식미와 내용적 완결성은 절정에 달했고 이후 [연인]에 이어 이번 [황후화]에서는 실망을 넘어 흉측스러운 괴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제작비 규모로 보면 [영웅]이 150억원, [연인]이 120억원인데 비해 [황후화]는 450억원으로 인건비 등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돈이 들었습니다.

[황후화]는 중국 당나라 말기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인물은 아닙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한 왕조였기 때문에 선택된 시대 배경입니다. 가장 큰 명절인 중양절을 앞두고 황후(공리)는 넓디 넓은 황실 앞마당을 국화로 장식하면서 은밀하게 반란을 준비합니다. 황제(주윤발)는 둘째 원걸왕자(주걸륜)를 데리고 6년째 변방을 돌며 정복사업에 열중이지만 어의를 시켜 황후를 독살하는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킵니다.

황제가 궁을 비운 사이 황후는 첫째 왕자와 은밀하게 정을 통하고 있었고 황후는 황제를 제거하는 은밀한 반란계획을 가장 아끼는 둘째 원걸에게 알리는데 원걸은 형을 제치고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차기 대권주자가 유력한 상황이어서 거사 참여를 놓고 갈등합니다. 드디어 운명의 날은 다가오고 영화 역사상 손꼽히는 스펙터클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영화 줄거리는 대략 콩가루 황실 집안의 비극을 그렸다고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근친상간을 포함한 불륜과 패륜, 음모가 뒤얽힌 욕망의 지옥도를 보여줍니다.

영화는 첫머리에 엄격한 면접을 통해 뽑았다고 보도자료를 통해 자랑하는 수백명의 궁녀들이 북장단에 맞춰 일제히 몸단장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쭉쭉빵빵 궁녀들은 프랑스 왕조시절 귀부인 복장처럼 가슴을 가운데로 끌어모아 부각시키는 파격적인(?) 패션으로 일단 눈을 즐겁게 해주는데 황후로 나오는 42살의 공리에게까지 이 패션을 그대로 적용시킵니다. 엄청난 규모와 복잡한 내부 구조를 가진 황궁은 번쩍거리는 황금색 바탕에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이 흐드러지게 어우러지며 눈을 매혹시키다가 얼마 못가 시각적 피로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합니다.

이런 피로감은 수십킬로그램의 무게로 촬영내내 배우를 고생스럽게 한 황금색 예복에서도 그대로 느끼는데 역시 압권은 넓디 넓은 황궁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수십만 군사들의 격돌장면 입니다. 어찌나 많은 인원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넣었는지 이쑤시개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촘촘한데 적군의 화살이나 창에 찔려 죽기보다는 앞, 뒤 동료 병사들에게 밟혀 죽는게 더 쉬워 보입니다.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개봉돼 3억 위안을 돌파하며 최고 흥행 기록을 수립했다고 합니다. 중국 사람들이 무척 열광한다는 이야긴데, 문제는 역사의 진열장을 뛰쳐나온 중화사상이 탐미주의와 결합하면서 이상한 변종 괴물이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장이모우 감독은 진정 이 시대 중국 인민들과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국가대표 감독인 것 같습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도 맡았다는데 얼마나 큰 규모와 인력, 돈을 들여서 중화 사상의 위대한 스케일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며 우리들의 눈과 귀를 홱홱 돌아가게 만들어줄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