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에서 새해 인사도 제대로 못드렸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하시는 일마다 행복이 함께 하시길 빌겠습니다. 신년 초 극장가는 지난해 말 개봉한 [박물관이 살아있다]가 가족 단위 관객들의 예상 밖의 열띤 호응으로 2주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영화계 내부에서나 기자들도 이 영화의 흥행에 대해서는 ‘뜻밖이다’ 내지는 ‘불가사의하다’고 까지 하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고 컴퓨터 그래픽이 가미된 모험과 액션, 코미디에 부자관계를 녹여낸 전형적인 할리우드 가족 영화일 뿐인데 이렇게 성공하는 요인이 무엇인지는 좀 더 찾아봐야 하겠습니다. 뭐 물론 사후약방문 식에 그치겠지만요.
한 주 먼저 개봉한 [미녀는 괴로워]도 20일 만에 4백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열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와 성형 열풍을 넘어 중독이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적절한 소재에다 신인 김아중의 매력 발산, 탄탄한 조연들의 감초 연기가 어우러져 긴 뒷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극중 김아중이 부른 노래 ‘마리아’는 은근한 중독성으로 음원 시장에서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흥행작이 탄생하려면 스타나 제작비, 그래픽 같은 단일 요인만 필요한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는 사례입니다.
100억 원대의 환타지 대작 [중천]은 2백만 명에 못미치는 초라한 성적으로 문을 내려야 하는 운명을 맞았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액션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기본이자 핵심은 줄거리와 캐릭터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절감하게 해주는 사례입니다. 1월 첫째 주에는 한국영화 두편과 할리우드와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각각 개봉됩니다.
오래된 정원

어제 보내드린 글에서 자세히 설명드렸습니다만 전체적으로 영화의 시각이나 만듦새는 빼어나지만 극장을 찾는 주요 관객층인 젊은 세대에게는 공감을 주기가 힘들어 흥행 전망은 어둡습니다. 젊은층의 트렌드에 맞춘 기획영화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관객의 연령층을 확대하려는 제대로 만든 이런 작품들이 다양한 취향의 남녀노소를 극장으로 끌어 모아야 건강성이 유지될 텐데 말입니다. 영화는 80년대 운동권을 관찰자 입장에서 응시하는데 때로는 비판적인 시각은 현재의 386에게까지 이어집니다. 화석같이 딱딱한 머리와 마음으로 여전히 시대착오적인 왕년의 찬가를 불러대는 일부 386들에게는 따끔한 경종이고 사회 각 분야에서 그때의 상처와 악몽을 마음 깊숙한 곳에 간직한채 묵묵히 때로는 힘겹게 살고 있는 대다수 386에게는 위안이자 치유의 손길로 작용하는 다층적인 해석과 수용이 가능합니다.
데뷔작 [처녀들의 저녁식사] 부터 [눈물],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을 거쳐 [오래된 정원]으로 이어지는 임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평범함을 거부하고 때로는 과감하고 파격적으로 소재를 선택하고 다루는 솜씨가 뛰어납니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자신의 뚜렷한 주관과 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감독 가운데 하나입니다. 과감성과 파격성 때문에 때론 격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고는 하지만 소모적이고 불필요한 논란은 아니라는 점에서 임상수 감독의 존재의미가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 나시면 그의 두번째 작품 [눈물]을 한번 구해 보십시오. 무지하게 쎕니다.
언니가 간다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서 톡톡튀는 매력으로 스타덤에 오른 뒤 [비트] 등을 통해 영화계에 들어와 다소 어정쩡한 톱스타 자리를 10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고소영이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의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했습니다.
30살 노처녀 정주(고소영)는 디자이너를 꿈꾸지만 그 나이 먹도록 심부름과 뒤치다꺼리나 하는 보조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주는 자신의 삶이 이렇게 꼬인 것은 12년 전 첫사랑을 잘못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게 누구냐 하면 당시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는 킹카이자 밴드 리더인 조하늬(이중문)로 바람둥이인 이 남자는 바람둥이 답게 정주의 마음을 홀딱 뺏어놓고는 결정적인 순간에 차버려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반면 공부 잘하고 성실하지만 별 매력은 없는 모범생 태훈은 정주를 짝사랑하지만 정주는 콧방귀도 끼지 않습니다.
하늬는 여전히 톱가수로 잘 나가면서 바람둥이 행각을 계속하고 있고, 10년 만에 만난 태훈은 미국 유학 뒤 잘나가는 벤처사업가로 변신해 정주 앞에 나타납니다. 자신의 선택을 더욱 후회하게된 정주는 엄마의 도움으로 12년 전 과거로 돌아가 당시 여고생 정주를 만나 첫사랑 바꾸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작진은 영화의 배경인 1994년을 재현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설명합니다. 인기듀오 듀스, 유명 청바지 브랜드, PC 통신 등이 등장하는데 영화 속에 유기적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단순 나열에 그친 느낌입니다. [품행제로]에서 여고생들이 ‘경아’의 박혜성파와 ‘스잔’의 김승진파로 나뉘어 싸우고 남녀주인공의 심경을 헤아리는 주요 모티브로 이어지는 매끈한 이음새와는 대조됩니다. 고소영은 기존 이미지와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가장 많이 보여줍니다. 막춤도 추고 망가지는 모습도 보여주는데 좀 더 일찍 이런 시도를 보여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성인 정주가 고교생 태훈에게 키스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은 영화의 흐름이나 주제와는 상관없이 아주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잘못된 첫사랑 때문에 인생이 꼬였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심리적 도피처라는 점은 이 영화의 전제이자 출발점이 약한 기반에 놓여있어 설득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너무 잘 눈에 띕니다.
이밖에 할리우드 동물 애니메이션 [부그와 앨리엇]이 선보이는데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할리우드도 그렇고 그런 동물 애니메이션은 이제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나루토] 극장판도 선보입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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