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고 여기저기서 영화계를 결산하는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올 한 해 많은 영화가 개봉됐는데 한국 영화가 사상 최초로 100편을 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좋은 영화 많이 보셨는지요. 영화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이 시간이 없어 많이 못 보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올 해 본 영화 가운데 어떤 영화를 최고로 꼽고 싶으신가요. 영화담당 기자 입장을 떠나 순수 관객입장에서 제가 꼽는 최고의 한국 영화는 [라디오스타]입니다. 제 나이에 맞춰진 감동 코드에 120% 공감해 시사회 포함 3번 보며 볼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느꼈습니다. 외국 영화로는 [브로크백 마운틴],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내 곁에 있어줘]를 꼽고 싶습니다.
한국영화 100여 편 가운데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10%가 조금 넘는다는군요. 우회상장 등으로 급속히 불어난 자금 때문에 제작사나 투자사의 실적을 위해 설익은 영화들이 양산된 측면도 있습니다. 안정적인 수익률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 대박 아니면 쪽박식의 도박판같은 성향이 강한데요. 와이드 릴리즈 개봉방식이니 개봉 첫주 흥행에 실패하면 소리소문없이 사라져서 안타까워하며 DVD나 비디오 출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제가 본 개봉영화 가운데 주관적인 판단과 전문가들의 판단을 함께 참고해서 영화 좋아하시는 분인데 바빠서 극장에서 놓쳤는데 DVD마저 놓치면 후회할 만 한 영화들을 추려봤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니 참고만 하시고 연말연시 DVD 빌려볼 때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이중에는 DVD로 출시가 안 된 영화도 있습니다. 동숭동 하이퍼텍 나다에서는 22일부터 올해 개봉됐던 독립영화, 예술영화 20여 편을 모아 다시 상영하는 ‘마지막 프로포즈’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연
올해가 아니라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지만 이 영화를 첫손으로 꼽고 싶습니다. 제작 과정부터 우여곡절이 많았었는데 개봉을 앞두고 결정타를 먹인 것이 모 인터넷 언론에 영화의 주인공이 박경원에 대한 친일 논란 제기였습니다. 물론 [왕의 남자], [킹콩] 같은 흥행대작 틈바구니에 있었기도 하지만 전국 관객 30만 명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마감해야 했습니다. 시대배경인 일제치하에 독립운동 내지는 항일투쟁이 초점이 아니라 척박한 시절 하늘을 날고 싶다는 남자들도 생각하기 힘든 '비행'이라는 원대한 꿈을 품은 한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비행 장면의 촬영과 사운드도 멋있고 장진영의 연기도 훌륭했습니다. 특히 영화를 본 여성관객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가족의 탄생
사석에서 만나본 김태용 감독은 수줍음 많고 겸손하고 조용한 성격이었습니다. 이런 성격대로인지 이 영화도 따뜻하면서 새로운 기운이 넘쳐납니다. 고두심, 문소리, 공효진, 봉태규, 정유미, 엄태웅 등 출연진의 호연이 일일이 칭찬하기 버거울 정도로 돋보입니다. 특히 정유미의 어리버리하면서 신비한 듯 한 연기는 이 배우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보게 해줬습니다. 콩가루 집안의 대안 가족화 가능성에 대한 통찰이 돋보입니다.
구타유발자들
한 편의 잘 짜여진 연극같은 느낌의 영화입니다. 한석규, 이문식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이 볼 만 하고 성악교수 배역은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느끼한 남자로 꼽힐 만 합니다. 숱한 영화에서 우스꽝스런 감초 역할을 많이 선보였던 이문식이 진폭이 큰 에너지 넘치는 제대로 된 연기를 선보입니다. 폭력의 상처와 폭력의 악순환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해변의 여인

홍상수 감독 작품답지 않게 와이드 릴리즈 개봉했다가 말 그대로 쪽박을 찼습니다. 해외에서 호평받지만 국내에서는 외면받는 불균형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데 찌질한 지식인의 위선과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는 특유의 스타일은 그대로인데 홍감독의 한층 더 여유로워지고 성숙해진 세계관을 보여주고 고현정의 꾸미지 않은 생 연기가 돋보입니다. (개인적으로 토론토 영화제에서 새벽 4시까지 홍 감독 주도로 진행된 술자리의 '가위바위보 주'와 소주 병나발 불기는 아마 평생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이밖에 탈북자를 소재로 잘 짜여진 섬세한 멜로드라마이고 조이진의 발견이라 일컬어지기도 했지만 흥행에서는 참패를 했던 국경의 남쪽, 가난했던 시절 따뜻한 동심을 그린 아이스케키, 이것도 영화냐는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지만 제가 볼 때는 신선하고 발칙했던 다세포소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폭력이 결국 비참한 파국을 부른다는 교훈을 주면서 폭력의 극한까지 보여준 폭력써클, 아마 외국에서 만들어졌으면 컬트로 추앙받을 만 했던 제대로 된 뮤지컬 영화 삼거리극장 등이 있습니다.
가는 한 해 잘 정리하시고 알차고 의미있고 재미있는 새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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