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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운동권의 아픈사랑 '오래된 정원'

입력 : 2006.12.22 14:52

임상수 감독, 황석영 동명 소설 재해석…지진희·염정아 주연 맡아 열연


2007년 새해를 열 영화  '오래된 정원'(1월 4일 개봉)은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임상수 감독이 재해석해 내놓은 작품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강한 의지로 되레 사회주의에 대한 갈망이 고개를 쳐들 만큼 암울했던 1980년대, 쫓기는 남자와 숨겨주는 여자의 17년 세월을 담은 시대극.

여기에는 권력자에 대한 비난, 운동권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이 있지만 염정아와 지진희, 두 주연배우는 "그런 시대에 피어난 사랑 이야기"라고 말했다.

염정아는 도망다니는 한 남자를 숨겨주며 6개월여 동안 사랑을 나눴지만 17년여의 세월을 감옥에 갇힌 그 남자를 기다리며 생을 마감한 한윤희 역이다.

"처음에 제가 캐스팅됐을 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도 들었지만 상관하지 않았어요. '나는 그냥 나일 뿐'이니까요. 전 원작을 읽었는데 원작과 시나리오의 차이도 별반 느끼지 못했죠. 저한테 대입시켜 염정아의 모습으로 만들어놓은 윤희가 떠올랐을 뿐이니까요."

한윤희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주어진 삶을 덤덤히 받아들인다.

운동권 학생과 교류하면서도 그들의 사상에 빠져들지 않은 채 객관적 시선을 유지한다.

그러나 그건 실제 삶에서 쉽지않은 일.

염정아는 다분히 현실적인 한윤희와 현실에는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한윤희의 모습을 영리하게 그려냈다.

"그릇이 큰 여자예요. 모든 걸 수용할 줄 아는 여자죠. 저도 윤희처럼 되고 싶은데 저는 결코 못할 것 같은 큰 여자입니다. 중요한 건 시대가 아니라 그런 감정선을 가진 여자의 멜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그 시대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어요.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역할을 보게 되는데 아주 마음에 드는 배역이었고 무엇보다 임상수 감독님 작품이라는데 어떻게 연기하지 않았겠어요."

운동권 핵심 멤버로 17년 간의 무기수 생활을 마친 후 사랑하는 여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는 오현우 역을 맡은 지진희가 옆에서 거든다.

그는  왠지  우울한 운동권의 이미지를 벗어나 경쾌하게 등장한다.

그의 환한 미소 속에 감춰진 아픈 속 내가 짬짬이 드러나며 영화의 느낌이 완성된다.

"영화를 보고 놀라셨다는 분들이 있는데 그것 역시 편견이라고 생각해요. 80년대 운동권 학생은 사랑도 안할 것 같은 선입견이 있는 거죠. 그들도 사랑하고 연애하고 가슴 아파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시대 배경 때문에 꺼리고 지루하고 고리타 분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지루하지 않게 영화가 만들어져서 참 다행입니다."

90학번인 지진희는 "난 91학번인데도 80년대 영화 속 상황을 잘 모르겠다"는 염정아에게 "우리 때도 얼마나 심했는데"라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대학 1학년 때 미술도구를 사러 이화여대 앞을 갔는데 그날 신촌 일대에서 시위가 예정돼 있었고 그 주변은 경찰에 의해 원천봉쇄됐단다.

그걸 모르고 간 지진희와 친구들은 영문도 모르는 채 일명 '닭장차'(철망이 둘러있는 경찰차)에 끌려가 고개를 숙인 채 12시간 넘게 '감금'돼 있다 새벽 1시에야 풀려났다는 것.

"고개를 들지 못하게 무지막지하게 패더군요. 누군가 항의했더니 까만 장갑차 같은 곳으로 데려가 반죽음 상태를 만들어놔 아무도 끽 소리 하지 못했습니다. 남자들은 군대에서도 독재의 잔재를 느껴요. 아무 이유없이 하루 세 번 이상은 맞았던 것 같습니다."

옆에서 염정아가 "정말? 정말?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라며 울상을 짓는다.

지진희의 경험담이 무척 생생하게 진행돼 다시 영화 이야기로 오는데 한참 걸렸다.

"어느 작업에서나 그렇지만 내가 맡은 배역만 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어떤 배우만 보고 나왔다는 평은 싫다"는 지진희는 오현우에 대해 "그래도 참 행복한 사람이다. 17년의 세월이 멈춰 있지만 윤희가 그에게  바깥 세상의 일을 빼곡히 적어놓은 노트와 윤희를 꼭 닮은 딸을 남겨놓아 현실에 빨리 적응할 수 있게 해줬으니…"라고 말한다.

멜로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남자가 감옥에 가 있는 바람에 도대체 상대도 없이 멜로 연기를 펼쳐야 했던 염정아의 배우로서 어려움은 상당했을 터.

그렇지만 그는 "그냥 남자 없이 혼자 멜로했죠, 뭐"라며 별일 아닌 듯 넘긴다.

오히려 그는 "아름답고 좋았던 시절보다 이 여자가 어떻게 배신하지 않고 사랑을 지켰는지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같다"며 "늘 허하고 가슴 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남아야 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 윤희를 표현하는게 재미있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염정아는 "두 번째 영화를 봤을 때 너무 슬펐다. 현우가 '나는 쓰레기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러게, 살아있을 때 잘하지. 왜 떠나'라는 생각이 들며 가슴 아팠다. 아버지가 잘 봤다며 무척 좋아하시는 걸 보니 그 시대를 지나온 모든 분들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진희 역시 "30대, 40대가 볼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이 울 수 있는 영화를 내놓게 돼 가슴 찡하고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두 사람의 영화 속 인연은 30일 염정아의 결혼식장에서도  이어진다.

지진희가 그날 사회를 보기로 한 것.

두 사람은 "신혼여행지가 몰디브인 것도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