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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둘째주 개봉영화] 로맨틱 코미디 퍼레이드

남상석

입력 : 2006.12.07 18:14|수정 : 2006.12.07 19:31


지난 주에는 경황이 없어 개봉영화 소개 글을 보내드리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11월에서 12월로 넘어가는데 극장가는 이상하리만큼 관객이 늘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수능 특수도 없고 이러다 연말 특수도 없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데 정확이 무슨 이유에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번 주 어떤 영화들이 선보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싸이보그가 아니라 사이보그가 맞는 표기법이라고 합니다. 말과 글을 다루는 직업인지라 표기법이나 발음은 항상 신경쓰지만 틀리는 경우도 많고 긴가민가해서 사전을 뒤적이거나 아나운서실에 조언을 구할 때도 있는데 싸이보그가 틀린 표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영화에서 임수정이 "싸이코가 아니고 싸이보그 거든요."하는 대사가 나와서 헷갈렸나 봅니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에서 [친절한 금자씨]를 거쳐 흡혈귀가 나오는 다음 작품인 [박쥐]로 가기 전 잠깐 쉬면서 즐기는 기분으로 만든 소품이라고 합니다. 비싼 필름 대신 저렴한 HD로 찍었습니다.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믿는 영군(임수정)은 집에서 무만 드시던 할머니가 흰 옷을 입은 일당들에게 잡혀간 뒤 남겨진 할머니의 틀니와 건전지, 구식 라디오를 들고 신세계 정신병원에 들어옵니다. 사람들과는 한마디도 안 나누고 형광등, 자판기 등과 대화를 나눕니다. 다른 사람의 특징을 훔치는 게 특기인 일순(정지훈:비)은 영군을 만나 첫눈에 반하는데 사이보그는 밥 대신 전기 충전을 해야 한다며 건전지만 빨아먹는 영군이 밥을 먹지 않아 위험한 상태에 빠지자 영군 밥 먹이기 프로젝트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무대가 정신병원인 만큼 이 영화에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의사와 간호사도 조금씩 이상합니다. 박찬욱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그동안 만든 영화들이 모두 18세 이상 관람가 였는데 이번에는 딸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로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12세 등급을 받았습니다.

기발한 상상력과 엉뚱한 이야기 전개 등 상업영화에선 보기 어려운 실험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특히 영군의 입이 탄창으로 변하고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총알이 뿜어져 나오며 의사와 간호사들을 대량 살상하는 상상 장면은 참으로 압권입니다. 감독이 정말 힘을 빼고 놀고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쳤다고 할까요. 여기서 논다는 말은 부정적인 요소와 긍정적인 요소를 다 포함합니다. 관습적인 영화보기에 익숙한 사람들 따라가기 다소 힘들었습니다.

영화 앞부분 오프닝 자막에 스탭 들의 이름이 박히는 형식은 제가 이제까지 봤던 영화의 오프닝 가운데 가장 독창적입니다. 또 색채와 공간, 음악을 다루는 솜씨도 감독의 이름값에 걸맞는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눈썹을 탈색하고 5킬로그램을 빼 39킬로그램의 체중으로 연기에 임한 임수정의 연기력은 마당극이나 전위적인 연극에서 한판 거하게 놀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드라마에서 간간이 연기를 선보였던 비의 영화 데뷔도 성공적입니다. 특이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조연으로 나오는 오달수는 한 술 더 뜨는 정신병자 연기를 보여줍니다.

시사회 후 반응을 살펴보니 젊은 세대일수록 영화를 즐기는 편이고 나이가 많고 보고 배운게 많을수록 고개를 갸우뚱 한다고 합니다. 저도 보고 배운건 별로 없지만 나이는 많은지라 후자에 속합니다. 보고난 후 2-3일까지 고개를 갸웃하다가 겨우 주제에 해당하는 메시지를 건졌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그건 평범하고 무지한 주변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오류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 틀 안에서 최대한 배려하고 마음 쓰는 것이다.'

[Mr 로빈 꼬시기]

이것도 꼬시기가 아니라 꾀기 내지는 꼬이기가 어법에 맞는 표현이랍니다. '싸이보그...'가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라면 이 영화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여주인공은 너무너무 친절하고 속마음 감출 줄 모르는 성격 때문에 숱한 남자들로부터 쉽게 사귀었다가 버림받는 비참한 신세의 노처녀 직장인입니다. 여기에 혜성같이 나타난 아니 추돌사고로 마주친 한국말을 못하는 멋진 남자, 알고 보니 직장 상사로 모셔야 합니다. 차갑고 냉철하고 멋진 외모의 나이스 가이에게 토종 된장에 가까운 여주인공이 접근 비슷한 시도를 하는데, 하는 시도마다 서투른, 번지수 잘못 짚은 실수 투성이, 이런 오해가 증폭돼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다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이쯤이면 뻔할 뻔자이지만 흥행은 웬만큼 될 것 같습니다. 왜냐구요? 엄정화가 나이를 잊어버릴만큼 생동감있는 연기를 보여주고(회식자리에서 노래부르는 장면이 압권입니다.) 스크린에 비친 다니엘 헤니가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직장 여성의 일상과 애환, 솔직한 속마음을 재미있게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발이 붕뜨게 마련인 이런 장르의 단점을 잘 커버하고 있습니다. 모 예매 사이트에서도 위 두 영화가 근소한 차이로 1,2위를 다투고 있군요.

[저스트 프렌드]

할리우드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고교 졸업을 앞둔 남자 주인공, 뚱보에다 소심남으로 학교 친구에게 어마어마한 연정을 느끼지만 입밖으로는 한마디도 못 꺼내는 성격입니다. 고향 뉴저지를 떠나 엘에이에서 쇼비즈니스 업계에 투신해 살도 쫙 빼고 고소득을 올리는 멋진 남자로 변신에 성공해 버렸습니다. 미녀에게 눈길한번 주면 그대로 끌려오고...하지만 고교시절 첫 사랑을 못잊고 있는데 그만 타고 가던 비행기가 고향마을에 불시착해 다시 옛 친구와 짝사랑 애인을 만납니다. 허전한 마음 한구석을 채워줄 것은 오로지 그녀뿐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고 여러 시도를 하려하지만 그녀 앞에만 서면 꽃미남에서 10년전 뚱보 성격 그대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친구냐 애인이냐 하는 뻔하고 보편적인 갈등, 직접 겪어봤을 수도 있고 주변에 이런 상황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 연애상담도 많이 해줬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젊은 날 '우린 그냥 좋은 친구야'하는 말에 '허걱'하며 절망과 실의에 빠졌던 경험이 있는지라 남의 일 같지 않은데 영화의 결말은 남의 일처럼 되버립니다. 남자 주인공 가족들의 푼수연기, 그중에서도 무지막지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형제 사이가 엽기적이고 남자주인공과 동행한 약간 미친 여가수(패러디 영화인 무서운 영화 시리즈 여주인공)역으로 나오는 엽기 캐릭터도 한없이 망가지는 귀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넉넉하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지난주에 개봉한 [그 해 여름]은 이병헌과 수애의 고전적인 멜로 연기가 돋보입니다.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한석규, 김지수의 현실적인 연기와 이 시대 30대 남녀의 현실적인 사랑을 현실적으로 그린 멜로 영화로 묘사의 디테일이 아주 꼼꼼합니다. [판의 미로]는 18세 관람가인 판타지 영화로 기묘하면서 아주 슬픈 영화입니다.)

(**극장에서 놓쳤던 에릭 쿠 감독의 싱가폴 영화 [내곁에 있어줘]를 지난 주말 챙겨봤습니다. '영화가 은근히 쎄다'는 입소문이 제 귀에까지 들려와 호기심 때문이었는데, 참으로 쓸쓸하고 또 쓸쓸한 정서로 슬픔과 고통의 밑바닥까지 끌고 내려가 기어이 바닥을 치고 다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솟아오르게 하는 기이한 마력이 있는 영화더군요. 감수성 예민한 사람은 마지막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꺼이꺼이 소리내서 울었다던데 소문이 소문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관심있는 분들 챙겨보시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출연 배우들 대부분이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아마추어들이고 주연에 해당하는 테레사 첸은 실존 인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