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출근' '아주 특별한 손님'서 눈길, '천년학' 낙마 설움 훌훌 털고 도약 준비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광기 어린 모습으로 부인을 죽이고 도망치던 청년승은 얼마 전 개봉한 '잔혹한 출근'에서 이중유괴의 키를 쥐고 있는 형사로 나왔다.
두 역할 모두 강렬한 이미지.
그랬던 그가 30일 개봉하는 이윤기 감독의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는 어느 무리에나 존재할 것 같은 뻔뻔하면서도 인간미가 느껴지는 시골 동네 청년으로 분했다.
이상하다.
캐릭터는 강할수록 더 눈에 띄는 법인데, 그는 시골 동네 청년으로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다.
연극배우 김영민(35)이 차근차근 스크린으로 걸어들어오고 있다.
연극 '에쿠우스' '청춘예찬' '햄릿' 등으로 대학로에서 주목받는 신예였던 김영민이 최근 들어 스크린에서 부쩍 활약하고 있다.
작고 날렵한 체구, 매끈한 마스크에 연기력을 겸비한 그는 영화계 곳곳에서 다양한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아주 특별한 손님'에서 김영민은 얄미우면서도 예의 없고, 일견 막무가내인 기용을 참 살갑게 연기했다.
주인공 보경(한효주 분)을 둘러싼 주변인물 중 한 명일 뿐이지만 그의 캐릭터는 맛있다.
기용은 길에서 만난, 난생 처음 보는 보경에게 다가가 "내가 아는 여자와 너무 닮았는데, 그 여자의 아빠가 지금 죽어간다. 가짜 딸 행세를 하며 임종을 지켜달라"고 다짜고짜 부탁한다.
그러면서 같이 따라나선 여자에게 예의를 갖추거나 그다지 배려하지도 않는다.
"진짜 캐릭터가 재미있죠? 저도 연기하면서 대체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 결론을 내렸죠.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보여야 그게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일 것 같다구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기용처럼 강한 척하면서 시건방을 떠는 인간이 친구들 중 꼭 한 사람씩 있어요. 처음에는 목소리 높이며 나서다가 어느 순간 조용히 사라지는 캐릭터 말이죠(웃음)."
그의 말처럼 기용이 땅에 발을 붙이고 있는 캐릭터인 까닭에 김영민의 연기력과 궁합을 맞춰 스크린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특히 그의 잘생긴 외모로 인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기용은 얼굴 믿고 매사 자신감에 차 있는 인간형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했다.
김영민은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태양은 없다'를 시작으로 '수취인불명'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의 작품을 통해 스크린을 노크했다.
모두 작은 역들.
그런 그가 한순간 영화계 주목을 한몸에 받는 때가 있었다.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작품인 '천년학'에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되면서였다.
그러나 이 일은 이제 떠올리기조차 싫은 기억이 됐다.
'천년학'의 투자자가 교체되면서 캐스팅 자체가 전면 수정돼버린 것.
"그 얘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그는 인터뷰 도중 당시 상황이 떠올랐던지 잠시 호흡을 골랐다.
하지만 이내 밝은 웃음으로 지나간 일은 훌훌 털어냈다.
"예술을 하려면 최소한 세 번 울어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 당시는 참 힘들었지만 배우를 한두 해 할 것도 아니고 길게 봐야죠. 전 아직 배워야 하는 단계잖아요. 모든 경험이 제게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 믿습니다."
'잔혹한 출근'의 촬영장에서 주인공 김수로의 동분서주 활약을 지켜보며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는 김영민은 "제가 큰 역을 맡든 작은 역을 맡든 나로 인해 작품이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내 연기를 보며 한 두 사람만이라도 살아가는 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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