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문제로 논조 비교
9월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와 10월 열린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노동당 블레어 총리와 보수당 카메론 당수의 연설 보도를 통해 영국 신문들의 정파성의 현황과 그 배경을 짚어 봤다. 이는 국내 정치와 경제 문제에서 드러난 이념적 지향점과 현실적 보도 관행에 해당된다. 이제 국제문제에 대해서는 이들이 어떤 시각을 견지하는지 들여다 본다. 신문이 지향하는 가치관에 따라 국제문제를 반영하는 보도 역시 내용을 달리 하는지 관심의 대상이다. 쉽게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의 레바논 전쟁], [미국의 압박 위주 대 테러 전쟁]을 접근하는 시각의 차이가 존재하는지. 있다면, 신문의 성향 별로 어떤 특성을 나타내는지... 영국 신문의 예를 통해 우회적으로 한국 언론 현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 국경을 떠나 공유하는 공통 분모가 있는지도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실, 신문의 논조를 분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문마다 특정한 규칙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사건 마다 미묘한 입장차이를 갖기 마련이어서 아주 오랜 기간 면밀히 들여다 본 뒤 일정한 원칙이나 관행을 경험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그중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전국적인 관심을 갖거나(영국에서 감세, 보건 의료 NHS 문제...), 세계적인 관심을 갖는(레바논 전쟁, 이라크 전쟁...) 사안을 놓고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도 사건이 진행되면서 각 신문마다 매일 다른 내용을 다룰 수 있어, 단순 비교가 쉽지 않다. 따라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①대형이면서 ②단발로 끝나는 사건을 놓고 비교하는 일이다. 대형이어야 신문사가 다루는 기사의 양이 많아 비교할 재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고, 단발로 끝나는 사안이어야 신문사 논조가 집약적으로 응축된다.
그래서, 영국신문의 이념적 정파성과 이에 따른 보도 관행을 들여다 보는 방법으로 영국 국내 문제로 "노동, 보수 양당의 전당대회", 국제 문제로 "북한 핵실험"을 골랐다. 영국 국내 행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정당 전당대회를 꼽아도 무방하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나라여서, 집권당 전당대회는 국가 운영 전반에 걸친 재점검이요, 야당의 경우 집권시 청사진을 제공하는 장이다. 더구나 당수 연설은 이의 결정판 행사다. 2006년 10월 10일을 한국 역사상 몇 안 되는 이례적인 날로 기록하게 될 "북한 핵실험" 보도 역시 같은 맥락이다. 영국에서 TV는 긴급뉴스(Breaking News)로, 신문은 1면 머릿기사로 많은 공간을 할애해 보도한 "북한 핵실험"은 단순히 '핵무기 확산'에 대한 우려의 차원을 넘어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평화 대신 힘의 외교', '포용 대신 갈등의 외교'로 치닫고 있는 세계 정세를 재평가하는 하나의 시금석이 되는 사건이다. 그것도 단발 사건이어서 오류를 줄이면서 논조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적절한 소재다.
[더 선], 김정일 원색 비난
2006년 10월 10일 아침. 3백 80만부 최고 발행부수의 신문 [더 선(The Sun)]은 1면 제목을 "한국 같은 문제를 어떻게 풀까.(How do you solve a problem like Korea?)"라고 독자들에게 묻는 의문문으로 달았다. '핵실험에 대한 세계의 분노(World fury at nuke test)'라는 부제가 붙은 이 제목은 "북한(North Korea)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아 자칫 한국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는 독자들에게 남북한을 혼동시킬 우려가 있는 제목으로 적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BBC에서 인기리에 방영하던 뮤지컬 주인공 선발 프로그램 "마리아 같은 문제를 어떻게 풀까.(How do you solve a problem like Maria?)"라는 프로그램의 제목을 패러디하는 과정에서 마리아(Maria)와 코리아(Korea)의 발음과 가락을(운율, 韻律)을 맞추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풀이돼 넘어갈수 있는 대목이다. 중요한 것은 기사가 핵무기 실험의 실상, 핵무기를 실험하게 된 배경, 향후 국제정세에 미칠 영향과 전망 등을 차분히 그리고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 지다.
| [더 선]의 북한 핵실험 보도. |
1면 제목 아래 핵심을 요약해 적은 3줄짜리 작은 기사는 "세계가 북한이 첫 번째 핵무기 뇌관을 터뜨린 어젯밤 이후 위기 속에 빠졌다. 지구촌의 격노한 지도자들이 적색 공산주의 국가를 벌주기 위한 방법 찾기에 필사적으로 골몰하고 있다. 인형극 영화 '팀 아메리카'에서 오른쪽 사진처럼 풍자된 정신 나간 독재자 김정일이 실험을 지시했다. (The world plunged into crisis last night after North Korea detonated its first nuclear bomb. Furious leaders around the globe were desperately considering ways to punish the rouge communist state. Crazed dictator Kim Jong-il -lampooned , right, in cult puppet movie Team America- ordered the weapon test)". '광적인 독재자', '격노한 세계 지도자', '적색 공산국가'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원색적인 용어를 사용해 북한의 핵실험과 김정일을 비난한다.
대북 군사제재 가능성 부추기듯 강하게 제기
관련 기사를 다룬 10,11면으로 가보자. 2개면을 통합한 제목이 눈에 띈다. "세계가 독재자에 대항해 단결하다.(World unites against tyrant)"라는 부제 아래 붙은 큰 제목이 "나쁜 한국 움직임. (Bad Korea move)"이다. 일방비난이라는 원색용어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 밑에 붙인 부제는 상황을 섬뜩하게 몰고 간다. "유엔, 핵실험에 맞서 군사력을 포함한 제재안(UN response to nuke test backed by military might)"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대북제제인데 이것이 무력사용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확대되는 내용이다. 기사를 더 들여다 보자. 'Military', 'No', 'Has' 3개 단어를 굵게 인쇄해 강조한 기사는 다음과 같다.
"블레어 총리와 미국 부시 대통령이 핵실험으로 배반자가 된 북한을 박살내기 위해 조치마련에 들어갔다. 작달막한 미치광이 지도자 김정일은 세계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지하 핵실험을 진행시켰다. 유엔안보리는 북한을 벌주기 위한 위기회담을 시작했다. 긴급 제재조치는 군사력 사용 침공은 없다고 주장하지 김정일이 핵무기를 이란에 전달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Prime Minister Tony Blair and US President George Bush led moves last night to crack down on renegade North Korea after it tested a nuclear bomb. Pint-sized crackpot leader Kim Jong-il gave the go-ahead for the underground blast -despite worldwide protests. The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began crisis talks aimed at punishing his country. Un emergency resolution will be backed by Military authority. World leaders insisted there were No plans to invade but the Pentagon Has drawn up a blueprint for such a move... President Bush raised fear that brutal dictator Kim could pass nukes to Iran)
강조한 단어는 'Military', 'No', 'Has'는 대북 제재조치에 '군사력'을 담긴다는 것이고, 북한 침공 뜻은 없지만, 'Has drawn up'의 현재 완료형(강조형)을 사용해 "미 국방부가 무력 사용안을 이미 마련했고,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의미를 담는다. 다른 신문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과격한 주장이다. 마치 군사력에 대한 깊은 진단 없이 군사력 사용을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한 이미지를 준다.
'엽기적인 김정일' 말초적으로 전달
이와 함께 다뤄진 기사는 북한에서 3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소식과 각국의 반응, 각국의 핵무기 보유 현황 지도다. 이어 자극적인 내용을 주로 삼는 대중지 답게 역기적인 김정일의 일상을 별도 기사화 했다. 그의 키가 157.5 cm 정도 되고, 굽이 높은 구도를 신으며, 엘비스 프레슬리 풍의 선글라스에 부풀어 오르는 우스꽝스런 헤어 스타일로 사치스런 생활을 즐긴다고 소개한다. 수백만 명의 국민이 굶어 죽지만, 그의 사치행각은 그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밤새 맛난 음식을 동원한 파티를 여는 가하면 여인들을 나체로 춤추게 하고 초대한 손님들에게 춤추도록 권하면서 "춤만 추시라. 만지면 도둑질이다. (Dancing is OK But you can't touch. If you touch, it's theft.)"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한다. 자극적이면서 말초적인 용어를 사용한 인물평이다.
다시 한 번 [더 선]의 북핵 기사를 정리하면 "엽기적이고 광적인 지도자 김정일이 만들어 낸 사건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가 군사력을 포함한 제재조치 마련"이다. 시종일관 "부시 대통령(President Bush)라는 경어를 사용하며(흔히 언론에서 Mr. Bush라는 표현이 더 많은 데 비해)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과 제재조치가 북한과 김정일을 벌 줄 것이라는 논조를 전달한다. 미국 위주 세계관에 도전하는 악, 북한과 그 지도자 김정일을 원색적 용어로 비난하는 내용으로 일관한다. 사진은 이런 내용을 뒷받침한다. 영화 팀 아메리카(Team America)에 사용됐던 우스꽝스런 모습의 김정일 인형 사진을 1면에 그리고, 같은 형태의 김정일 인형을 불태우는 남한의 시위장면 사진을 10면에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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