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신문은 사기업 생존이 당면과제
민주화 이후 신문은 정의를 논하는 단계에서 정파성을 논하는 단계로 질적인 변화를 이뤘다고 살펴봤다. 물론 모든 신문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또 신문의 모든 내용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다. 정의를 주장하는 부분도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정파성으로 국한시켜 얘기할 때 특정정당이나 정치집단, 특정 계층에 기우는 가치관을 기사를 통해 전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신문이 주로 이해관계를 함께 하며 정파성을 표출하는 집단은 어디인가. 민주화 이후 사회는 정책과 법률제정에서 가치관에 따라 분화 현상을 경험하는데, 신문은 주로 보수진영에 서게 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민주화 이후의 과제는 한 사회에서 재화나 용역을 어떻게 생산하고 나눌 것인가의 방법론으로 귀결된다. 정부의 역할을 크게 할 것인가, 민간의 역할을 크게 할 것인가. 그리고 생산된 결과물을 정부의 힘을 사용해 좀더 평등하게 나눌 것인가, 아니면 시장에서 적용되는 힘의 크기를 그대로 반영해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영국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토지나 기타 재산을 소수의 귀족들이 독점하다가 점차 국민다수의 손으로 나누게 됐다. 그렇다면, 정치적 민주주의를 국민 다수가 요구할 때처럼 재화와 용역을 국민다수가 좀더 공평하게 나누자는 주장에 언론이 동참해야 모순이 없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다. 현존하는 힘의 크기대로 나누기를 바라는 사회 상류, 보수층의 손을 드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신문사는 사영(私營)기업이다. 언론에 뜻을 가진 사람이 사재를 털어 만든 게 신문이다. 굳이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윤을 내야 살아 남는 속성을 지니는 기업체다. 경제 분야에서 재화와 용역을 나누는 문제에는 직접 돈이 오간다. 정치 민주화 과정과 다르다. 신문은 생리적으로 자기 신문의 이윤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지지계층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정치 민주화 과정에서는 독재라는 악(惡)이 분명히 존재했다. 이를 거부하면 됐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확보된 상태에서는 이런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방법론에서 가치관의 차이 만이 존재한다. 따라서 신문사는 큰 고민없이 이윤 확보, 확장에 보탬이 되는 방향에서 정책이나 법률의 지지, 비판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돈 되는 편에 서는 것 자체는 민주화 이후 자본주의 사회에서 악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2)돈 되는 계층에 뿌리...보수적인 정파성
보수계층이 신문의 돈벌이에 보탬이 된다는 결론인데, 여기서 신문을 누가 보는 지로 넘어가 보자. 영국처럼 거리에서 사서 보든지 아니면 한국처럼 주로 가정 배달로 보든지 신문을 구입해야 한다. 정치 민주주의에서는 1인 1표다. 그러나, 자본시장에서 1인 1표 주장은 통용되지 않는다. 돈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국민 1인 1부가 아니다. 돈을 갖고 사는 사람만이 1부다. 따라서, 신문은 돈 주고 신문을 사는 사람, 영국서는 1부 60펜스(천 백원 정도) 한국서는 1부 5백원 주고 사보는 사람에게 기울게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영국에서 진보적인 성향이며 언론의 정도를 걷는 인디펜던트의 경우 판매부수가 전체 주요 일간지 10개 가운데 꼴찌다. 인디펜던트의 수혜층이라 할 사회적 약자들은 한부에 천원이 넘는 신문을 사서 볼 여유가 그만큼 적다. 인디펜던트의 독자 수는 극히 제한될 수 밖에 없다. 이는 한국이나 전 세계 어디든지 마찬가지다.
신문 구입자 말고 또 있다. 광고. 푼돈을 내고 사보는 사람은 다수지만, 거액을 들여 광고하는 사람은 극히 제한된다. 기업이나 대규모 자영업자다. 이들이 신문에 광고를 낸다. 사회 상류계층임은 물론이다. 기존의 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갖는다. 신문은 자선사업이 아니다. 자신에게 이윤을 안겨 주는 계층에 기울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계층에 더 큰 이익을 보장하는 정치세력 즉 정당에게 우호적이다. 신문은 보수층을 지지하며 그 보수층의 이해에 충실한 정당에 정파성을 보인다. 또 하나, 신문은 기업가가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가의 사회적 토대는 상류계급이다. 이미 신문 소유주 자체가 이념적 가치 대결장에서 보수층으로 분류되며 언론인이기에 앞서 기업가로 기업을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신문사주가 이런 상황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거나 국민다수의 경제적 복리를 염두에 두고 정책과 법률을 지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은 연봉을 보장받거나 그런 사회적 관행에 익숙해져 있는 언론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가는 아니지만, 신문사의 보수성을 유지해 신문사의 이윤을 보장해야 자신의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때로는 의식적으로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수적 관행과 관념에 젖으며 보수층 이데올로그(ideologue)로 자리잡는 경우가 발생한다. 좋고 나쁨의 판단을 떠나 민주화 이후 언론과 그 종사자에게서 발생할 수 있는 속성이다. 특히, 민영 언론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영역에 머물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보수신문을 보는 독자들은 전부 보수층인가. 그들이 보수신문을 주로 사서 보는 다른 요인은 없는가. 다음 글에서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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