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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독일16. 쾰른 검투사 모자이크

김문환

입력 : 2006.10.02 17:22


                                            -- 지중해 문명기 5권 --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7. 독일 

                                                          1)독일

        2,3,4,5,6,7,8,9,10,11,12,13,14,15,16) 쾰른(Cologne) --오늘 이야기

                                       17,18,19,20,21,22)베를린(Berlin)

16) 쾰른 로마- 게르만 박물관(Romisch-Germanisches Museum)

쾰른 박물관 검투사 모자이크

철학자 모자이크를 본 뒤 왼쪽 구석으로 들어가면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소재의 모자이크가 기다린다. 검투사 모자이크(Gladiator Mosaic)다. 디오니소스 모자이크, 철학자 모자이크와 함께 쾰른의 로마 게르만 박물관을 빛내 주는 모자이크로 손색 없다. 검투사 모자이크는 그리 크지 않다. 원래 1백20㎡나 되는 넓은 면적에 설치돼 있었지만, 모두 소실되고 지금 일부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1885년 발굴된 이 모자이크는 검투를 펼치는 검투사와 검투장으로 걸어들어가는 검투사로 구성돼 있다.

4명이 등장하는 검투 장면은 실존인물을 소재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격하는 포즈의 검투사 2명 위에 이름을 새겨 놓았기 때문이다.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름을 남은 검투사는 안키타투스(ANCITATUS). 옆에서 다른 검투사와 경기를 펼치는 또 한명의 검투사 이름은 로스투스(ROSSTUS). 이들이 공격자임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이름 뒤에 아드벤투스(ADVENTUS)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덕분이다. 검투를 벌이고 있는 4명의 검투사 위로 7명의 검투사가 더 등장한다.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모습을 묘사했다. 원형경기장의 대기석에 앉아 있다 검투를 펼치기 위해 무대(Arena)로 내려가는 장면이다. 곧 삶과 죽음이 갈리게 될 상황이 비장한 표정으로 묘사돼 있다.  

검투 경기의 기원과 유행

검투 경기는 로마와 이웃하고 있던 에트루리아(Etruria) 문명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기는 대략 B.C 3c 초. 이때 검투 경기는 일종의 희생의식(犧牲儀式)이었다. 명망가가 사망했을 경우 유족이나 친척이 망자(亡者)의 넋을 달래기 위해 치르는 장례식(葬禮式)의 일환이었다. 검투사가 죽으면서 흘리는 신성한 피를 통해 망자의 명복을 빌었으니... 일종의 순장(殉葬) 문화로 볼 수 있는 것인지... 이렇게 시작된 검투 경기는 호전적인 로마인의 성격에 맞아 점차 주술적 의미의 희생의식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경기로 바뀌었다. 개인의 명복을 비는 제례에서 집단 유희(遊戱)로 바뀐 것이다.

B.C 1c 가 되면서 검투경기가 국가의 손으로 넘어갔다. 검찰(檢察), 재무(財務)업무를 보던 관리(Quaestor)가 검투경기를 주관한 것이다. 국비로 경기를 치렀음을 말해준다. 로마시민들은 무료 입장. 국가는 노예나 죄인을 훈련시켜 경기에 투입했다. 삶과 죽음을 다투는 이 경기에서 승리한 자는 때로 자유를 얻기도 했다. 일반인도 검투 경기에 참가했다. 잔인한 경기를 치른 뒤 살아 남으면 큰 돈과 바람난 여인들을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 모자이크의 소재

검투사 모자이크는 이탈리아 로마의 보르게제 박물관에서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생생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검투 경기가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잔인한 경기였는지 아름다운 보르게제 박물관이 새롭게 인식된다. 테세라 모자이크를 처음 만들어 널리 사용한 그리스인들은 자연과 신을 묘사했다. 이와 달리 실용적이고 호전적이던 로마인들은 일상생활상을 모자이크 소재로 많이 채택했다. 일상생활에는 오락이나 여흥도 포함되는데, 전차 경주, 목욕탕 팔레스트라에서 운동, 그리고, 검투도 그중 하나다.

로마의 오락 문화

쾰른에서도 검투 모자이크가 발견됐다는 것은 로마시대 게르만족과의 국경인 라인강의 주요 도시 쾰른에도 원형경기장이 있었고, 검투경기가 행해졌음을 말해준다. 사실, 로마의 도시들은 어딜 가나,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Theatre)과 음악홀인 오데온(Odeon), 검투경기를 치르는 원형경기장(Amphitheatre)이 갖췄다. 규모가 큰 도시는 초대규모 전차 경주장(Circus)과 달리기를 비롯해 기타 운동경기를 벌이던 스타디움(Stadium)도 있었다. 쾰른에 이런 시설이 모두 있었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철학자 모자이크의 정물화

앞서 철학자들 모자이크를 살펴봤다. 철학자 모자이크에는 과일이나 꽃, 물병을 소재로 한 일종의 정물화 성격을 띤 모자이크도 함께 볼 수 있다. 돌로 만든 고대 모자이크가 아니라면 마치 현대 작가들이 그린 정물화라는 느낌을 받는다. 로마시대 로마인들의 미적 감각이나 2천년이 지난 현대 유럽인들의 미적 감각이나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의 동질성에 흠칫 놀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