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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민주주의 창-블레어⑧:언론사별 시각차 1

김문환

입력 : 2006.09.28 10:26


블레어 연설 보도, 언론마다 달라

노동당 전당대회를 통해 다시 한번 영국언론의 정치적 성격을 들여다 보는 계기를 갖는 것도 유익한 경험이다. 그 동안 몇 차례 글을 통해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 소유의 신문들이 90년대 초반 닐 키녹 당수시절 노동당 출입금지 조치를 당했다가 블레어 등장 이후 노동당, 좀더 정확히 블레어와 가장 가까운 언론이 됐다는 것을 살펴봤다. 이번 전당대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치 영국언론과 정치, 특히 블레어와 언론과의 관계가 "이런 것입니다"라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언론사별로 노동당 전당대회의 블레어 연설에 대한 시각이 180도로 달랐다. 언론과 정치의 관계, 언론과 정치인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보여 주는 동시에 민주주의에서 언론과 정치의 역할설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찬양 일색, 영국판 블레어천가(龍飛御天歌) '더 선'

1995년 블레어가 당수가 된 이후 '더 선(The Sun)'은 블레어의 대변지(Speaker)로 불릴 만큼 블레어와 밀접을 넘어 밀월관계를 이어 왔다. 이번 전당대회도 예외는 아니다. 1면을 블레어 사진 1장으로  메웠다. 아무리 타블로이드 판이라지만... 블레어가 노동당원과 국민에게 무엇인가 간절히 호소하는 듯한 제스처를 쓰는 사진. 마치 종교인이 거룩한 설교를 하는 표정으로 양손을 벌린 모습에는 비장감 마저 감돈다.   

블레어의 전당대회 연설을 다룬 머독 소유의 '더 선'지 1면.

큼직한 제목은 "나는 해냈다, 나의 길을(I did it, my way)". '더 선'이라는 제호(題號) 옆에는 "블레어의 역사적인 고별 연설(Blair's historic farewell speech)라는 감동적인 문구가 적혔다. 이어 큰 제목 밑에는 "누가 지금 슬픔을 느끼는가, 노동당(Who's sorry now, Labour)"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반어법의 이 문장은 누구도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뜻으로 블레어의 외교정책을 놓고 말도 많고, 퇴진요구도 있지만, 그게 다 부질없는 소리란 의미를 갖는다. 블레어를 지지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는 투다.

전체주의 국가 연상시키는 미화

작은 상자에 실은 기사는 한발 더 나간다. "토니 블레어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연설을 하며 두팔을 벌리고 서 있다. 노동당원들이 왜 그렇게 그 더러 물러나라고 요구했는지 의아하게 만들면서... 맨체스터의 열광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이 고별 연설에서 총리는 노동당의 업적을 치하하고, 고든 브라운 장관을 칭찬하며, 보수당을 혼쭐냈다. 블레어가 '당신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말했을 때 대표들은 울면서 환호했다. 그 역시 웃음을 터트렸고, 아내 세리 여사와 옆집 사는 친구(고든 브라운)에 대해서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Tony Blair stands arms outstretched as he gives the greatest speech in his life- and leaves Labour wondering why they were so keen to say goodbye to him. In an electrifying and emotional farewell address to the party in Manchester, the PM hailed Labour's achievements, praised Gordon Brown, and tore apart Tories. "You' are the future now," the PM told delegates who wept and cheered. He raised laughter too-in a hilarious gag about Cherie "and the bloke next door".              

이정도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의 수준을 뛰어넘는 블레어천가(블레어天歌)로 손색없다.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균형감각을 접은 일방적 미화라는 지적이 크게 어긋나 보이지 않는다. 미화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측면 너머에 대해서는 완전히 눈감는 그런 자세에서 진실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반나(半裸)의 여인도 가세

그렇다고 '더 선'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영국에서 인쇄되는 모든 신문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다. 180만부가 나간다. 가격이 35펜스(6백원정도)로 일반 정론지의 반 밖에 안되는 데다 한장을 넘겨 3면으로 가면 언제나 시원한 사진이 시선을 잡아 끈다. 매일 바뀌는 여인들은 여름철 수영시즌이 끝났건만 계절에 관계없이 일년 내내 알몸차림이다. 

1면 블레어 사진에 이어 3면 사진. 물론원래 신문에는 가슴이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이 여인을 통해서도 블레어 찬양에 나선다.

오늘은 런던 출신 24살 조(Joe)라는 여인. 이 여인의 촌평(寸評)을 다룬 기사 좀 들여다 보자. "조는 블레어의 어제 전당대회 연설에 환호했다. 명료하면서도 최상의 것이란다. '얼마나 멋진 연설이에요. 1997년 총선에서 수백만 명의 유권자를 끌어들였던 우수한 연설 그대로예요. 내년 선거에서 그가 떠난 뒤 노동당에 어떤 결과가 올지 흥미로워 지는데요.(Zoe hailed Tony Blair's conference speech yesterday as "simply the best" She said. "What a performance! He showed all the qualities that attracted millions of voters in 1997. It will be very interesting to see whether his departure rebounds on Labour come the next election." 은근히 블레어 없는 노동당이 안고 없는 찐빵 아??해 블레어 찬양기사와 각종 사진으로 지면을 도배했다. 1997년 총선에서 '선지는 블레어를 지지합니다.(The Sun backs Blair)" 이후 지속돼 온 블레어와 선의 밀월관계.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재산인 신문을 놓고 특정 정치인을 지나치게 미화하고 지지한다고 해서 뭐라 할 수는 없지만, 균형감각에 입각한 비판이 상식이라면 도를 넘는 것은 틀림없다. 물론 판단은 국민들 몫이다. 그리고 영국 현실에서 중요한 것은 '더 선'이 영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문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