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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통신] 트라팔가 광장 비둘기

김문환

입력 : 2006.09.26 08:57|수정 : 2006.09.26 08:58


트라팔가 광장의 넬슨 동상

진부하지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표현이 늘 따라다닌다. 식민 제국주의 시절, 세계 각국에 함대를 보내 식민지를 확보해 지구상 어느 곳이나 식민지를 둔 탓에 붙여진 이름이다. 식민제국은 강력한 해군이 있기에 가능했다. 16c 대서양과 태평양을 누비던 스페인 무적함대(無敵艦隊, Armada Invincible) 를 1588년 물리친 엘리자베스 여왕시대 영국해군은 세계로 나가 5대양 6대주에 식민지를 만들었다.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 주권을 빼앗은 대가로 영국에 부귀영화를 가져다 주고 영국의 위상을 드높인 영국 해군의 역대 최고 제독을 꼽으라면 단연 넬슨(Nelson, Horatio)이다.

넬슨은 1780년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후, 프랑스의 혁명전쟁에 종군하여 지중해와 대서양에서 싸운 그는 1794년에는 코르시카섬 점령 때 오른쪽 눈을 잃었다. 이어 1797년의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 오른 팔을 잃는 투혼으로 조국에 승리를 안겨 줬다. 마침내 1798년 나일강 입구의 아부키르만 해전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 함대를 격파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이어 1803년부터는 지중해 함대 사령관인 된 그는 1805년 나폴레옹군과 운명을 건 일전을 다시 펼친다. 당시 나폴레옹은 대륙을 휩쓸며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을 프랑스 천하로 만들던 참이었다. 넬슨은 스페인 남단의 트라팔가(Trafalgar) 해전에서 프랑스 해군을 무찔러 프랑스의 대륙 봉쇄 정책을 실패로 돌리는 공을 세웠다. 자신은 그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고 영국인들 가슴속에 아니 현실속에 계속 살아 숨쉰다. 넬슨이 조국을 위해 멸사봉공하던 시절 제국주의 영국의 심장부 런던(London)에서도 최고 중심지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에 거대한 동상으로 남아서...  

광장을 가득 메운 비둘기

트라팔가 광장의 비둘기

여느 광장도 마찬가지지만, 트라팔가 광장의 명물은 비둘기다. 거대한 국립 미술관 건물, 하늘로 치솟은 넬슨 동상이 웅장한 남성미로 위용을 뽐낸다면, 광장 양쪽에 자리한 분수는 아름다운 여성미로 분위기를 고조 시키고, 이어 남성과 여성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메신저처럼 비둘기들이 하늘과 땅에서  자유와 평화의 기운을 선사한다. 이런 운치있는 분위기가 트라팔가 광장을 상징한다. 수 백 마리, 나아가 수 천 마리의 비둘기 떼가 하늘을 향해 일제히 날아오르거나 땅 위로 내려앉는 모습은 삭막한 현대 도시의 정경에 친환경적인 친 자연적인 서정미를 선사한다. 이탈리아 로마 포폴로 광장의 비둘기도, 수중도시 베네치아 광장의 산마르코 광장 비둘기도 마찬가지다. 관광객들은 비둘기에 먹이도 주고 사진도 찍으며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를 아낀다.    

골칫거리 비둘기 '매'로 쫓는다

그러나, 관광객이 보기에 아니면 트라팔가 광장에 어쩌다 한번씩 찾아 목가적인 정경에 흠뻑 취하고픈 사람이 보기에는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런던시 당국은 비둘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비둘기가 인간에게 유해한 병균을 옮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시 당국은 번식력이 뛰어나 쉽게 개체수가 늘어나는 비둘기를 없앨 방법을 놓고 고민해 왔다. 먹이 주는 것을 금지해 보기도 했지만, 비둘기 보호단체(Pigeon Action Group) 등에 밀려 이것도 여의치 않았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짐승이어서 딱히 규제하기도 어렵고, 강제로 포획해 죽일 수도 없고...

런던시가 고용한 참을성 많은 직원과 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매(hawk)를 이용한 '겁주기 작전'이다. 야생에서 비둘기 같은 작은 조류에게 매는 위협적인 존재다. 런던시 당국은 트라팔가 광장에 매를 데려다 놨다. 비둘기들이 본능적으로 맹금류인 매를 피해 도망가는 것을 노렸다. 켄 리빙스턴(K. Livingstone) 시장의 런던시는 지난 8월 개인회사와 1년 계약을 맺었다. 매일 매를 광장으로 데려와 비둘기를 쫓아 달라는 것. 비용은 연간 3억 6천 만원. 비둘기 쫓는데 이 정도라면 적지 않은 돈이다. 이 회사는 뙤약볕이나 빗줄기 속을 아랑곳 하지 않고 매와 함께 광장을 누빌 참을성 많은 직원 1명과 매를 한 마리 고용해 하루종일 순찰을 돌게 만든다. 흥미로은 것은 현장에서 직원이 비둘기를 팔에 태우고 돌면 비둘기들이 놀라 달아나는 것. 효과가 꽤 있어 비둘기 숫자도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평화의 상징에서 병원균을 옮기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매의 공포속에 살아야 하는 비둘기의 운명. 사라진 비둘기 호 만큼이나 가련하다. 비둘기를 몰아내는 정책, 아직 우리에게는 좀 멀게 느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