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7. 독일
1)독일
2,3,4,5,6,7,8,9,10,11,12,13,14,15,16) 쾰른(Cologne) --오늘 이야기
15,16,17,18)베를린(Berlin)
15) 쾰른 철학자 모자이크: 소크라테스
(1)플라톤
철학자 모자이크 마지막 편으로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 대해 살펴본다. B.C 429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톤은 아테네 부유한 가문 출신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 사형에 깊은 충격을 받은 플라톤은 현실 정치에 대한 참여를 포기하고, 학문에 전념하는데 이 덕분에 그리스 고대 철학은 물론 서양의 철학이 한 단계 성숙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지식을 사랑하는 일(philo,사랑하다+sophia, 지식)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B.C 385년 아테네 근교에 연 아테네의 영웅 아카데모스를 기리는 성역(聖域)에 아카데미아(Akademeia)라는 최초의 고등 교육기관을 개설한 것은 지식 대중화의 시발점이었다. 학교를 만들지는 않았던 스승 소크라테스와 대비되는 점이다. 30편에 이르는 플라톤의 저서는 1편을 제외하고 여러 가지 논제(論題)를 둘러싸고 오간 철학적인 논의를 담고 있어 대화편(對話篇)이라고 불린다.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주요 등장인물이며 그의 사상을 정리해 놓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 향연등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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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라톤 . 쾰른 로마 게르만 박물관ⓒ김문환> |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이데아(idea, 形相)라고 불렀던 그는 자신이 현실 정치에 뛰어들지 않은 대신 영원한 진리로서의 바른 정치철학을 정치인에게 제공하는 일에는 열성적이었다. 자신의 철학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지중해 전역의 그리스 도시국가들 어디를 막론하고 찾아다녔다. 플라톤이 찾아 나선 곳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훗날 위대한 과학자 아르키메데스가 활약하다 로마군에게 죽게 되는 시라쿠사는 B.C 5c-B.C 4c 날로 빛이 바랜 아테네에 이어 지중해 그리스 문명권에서 최고의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도시국가였다. 플라톤 시절 시라쿠사는 민주주의가 후최하고 독재자(참주, 僭主) 디오니시오스 2세가 통치했는데, 플라톤은 그를 교육시켜 이상정치를 펴고자 하는 뜻을 가졌다. 물론 실패하고 말지만...
플라톤의 주유는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세상이 혼란해 지자 제자백가(諸子百家)이 다양한 사상가들이 세상을 구하는 바른 길을 설파하기 위해 중국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자신의 철학을 유세(遊說)하며 쟁명(爭鳴)했던 일에 비견된다. 춘추전국시대는 춘추(春秋)시대와 전국(戰國)시대의 합성어이다. 춘추시대는 B.C 770년 주(周)나라가 도읍을 낙양(洛陽)으로 옮긴 뒤 천자의 권위가 떨어지고 각지의 제후들이 할거하던 시기로 노(魯)나라의 연대기 춘추(春秋)의 첫해로 기록되는 B.C 722년을 그 원년으로 삼는다. 전국시대는 진(晉)의 유력한 귀족이던 한(韓), 위(魏), 조(趙) 3씨가 실권을 잡던 B.C 453년을 기점으로 잡는다. B.C 221년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춘추 전국시대 5백년 간의 다툼이 막을 내린다.
(2)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가 비극적으로 죽고, 플라톤도 이상을 펴지 못한 채 눈을 감았지만, 진정 불행한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였다고 볼 수도 있다. B.C 384년 태어나 B.C 322년 죽은 그는 알렉산더 시대를 겪으며 아테네의 몰락을 눈으로 직접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7살 때 아테네에 와 스승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B.C 347년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학문을 함께 했다. 이후 마케도니아 왕궁에 초빙돼 왕자인 알렉산더의 교육을 맡기도 했다. 왕사(王師)였다고 할까. B.C 335년 아테네로 돌아와서는 리케이온(Lykeion, 리케이우스 신전 근처 팔레스트라)에서 학교를 열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스승 플라톤의 학교 아카데미와 함께 리케이온도 훗날 학교의 어원이 된다.
| 쾰른 로마 게르만 박물관. 아리스토텔레스ⓒ김문환 |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과 정치학, 시학, 기타 자연과학 전반에 걸쳐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대학자였다.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로 간주한 그는 인간이 공동 생활을 하는 가운데 선(善)을 실현할 수 있으며 지배받는 자들의 교대로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다듬었다. 이미 그리스 도시국가시대 실현되던 정치형태로 독재정을 부정한 민주주의의 원리다. 미학에서도 큰 자취를 남겼다. 창작을 모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한 그는 숭고한 인물의 비극을 다루는 연극에서 관객들이 공포와 연민의 정으로 정서적 정화 즉 카타르시스(katharsis)를 경험하게 된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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