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83년 초선 재무위서 맹활약
국회의원에 당선되자마자 블레어는 곧 노동당 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84년 구성된 예비내각(shadow-cabinet, 야당이 집권시를 대비해 구성하는 내각)에서 재무부 차관을 맡았다. 이때 블레어는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이 1985년 10월 파산한 존슨 매티 은행(Johnson Matthey Bank)을 지원하기로 한 결정의 문제점을 파고들어 주목을 받았다. 이어, 영국경제 정책에 비판적인 유럽 경제공동체(EEC, European Economic Community)의 보고서에 집권 보수당의 의원이 서명한 사실을 밝혀내면서 보수당을 궁지로 몰아넣기도 했다. 초선답지 않은 맹활약이었다.
이 무렵 블레어는 노동당의 체질개선을 추진하는 개혁파에 속했다. 어느 나라나 젊은 의원은 당내에서 인적 청산인 세대 교체와 당내 정강 정책의 수정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시대정신이 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존재부각의 의미도 담는다. 당시 노동당은 전통적인 집단주의적 원칙에 좀더 충실하던 닐 키녹이 이끌던 참이었다. 블레어는 집단주의 시각에서 벗어나 시장 자율적 기능을 강조하는 개혁파에 속했다. 야당 속의 야당 블레어는 1987년 총선을 앞두고는 예비내각에 입후보해 77표를 얻는 기염을 토하며 착실하게 당내 신임을 높여 갔다.
2) 1987년 재선 뒤 당내 야당, 노선을 오른쪽으로
1987년 재선에 성공한 블레어는 그 해 주식시장 붕괴 뒤 경제통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 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노동당 예비내각에서 에너지 장관(Secretary of State for Energy)을 맡았다. 이듬해에는 고용부 장관(Shadow Employment Secretary)으로 활동 폭을 넓혔다. 고용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그는 고용법(employment law)에 대한 유럽 사회헌장(Social Charter)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노동당의 전통적인 콜로즈드 숍(closed shop) 원칙에 반(反)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블레어는 주저하지 않고 노동당이 더 이상 클로즈드 숍을 지지해서는 안된다고 1989년 12월 선언했다. 노동당의 노선을 시대상황에 좀더 유연하게 오른쪽으로의 이동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클로즈드 숍은 기업에서 노동자를 고용할 때, 노동 조합에 가입한 사람이 아니면 고용할 수 없는 제도이다. 노사간에 협정을 맺어 사측은 노조에 가입한 사람 이외에는 고용할 수 없게 된다. 조합을 탈퇴하거나 조합에서 제명된 사람은 해고당한다. 노조의 권한을 극대화하는 제도의 하나다. 노조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노동당으로서는 콜로즈드 숍 문제가 현실적인 표와 관련해 민감한 것이었다. 여기서 블레어는 시대상황을 들어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그런 만큼 노동당의 기존 원칙과 크게 벗어나는 것이어서 당내 원칙주의자들(left wing of the Labour Party)의 강력한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관철시켰지만...
3) 1992년 3선: 당내 지도부로
젊고 TV에 잘 어울리는 얼굴이라고, 블레어는 1990년 노동당 대회에서 처음으로 비중있는 연설을 맡았다. 그러나 아직 40도 안된 그는 역부족이었다. 당황한 나머지 너무 빨리 연설하고 내용도 헤매는 실수연발이었다. 정치 지도자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게 아니었다. 블레어는 노동당을 좀더 유연한 정당으로 바꾸려 애썼지만, 그렇다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보수당의 반발을 불러오면서도 최저 임금제 정책을 가다듬었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보모들 편에 서서 고용주들과 대립하기도 했다.
곡절을 겪으며 그는 1992년 총선에서 3선의 의원이 된다. 그렇지만, 당의 시름은 깊어 갔다. 1979년, 1983년, 1987년, 1992년. 노동당은 연거푸 4번 보수당에 패배했다. 1992년 총선은 앞서 살펴본 대로 보수언론이 일방적으로 보수당을 지원하면서 예상을 뒤엎고 노동당이 패했던 선거였다. 닐 키녹이 물러나고 존 스미스 당수 체제에서 블레어는 예비 내각의 내무 장관(shadow Home Secretary)을 맡았다. 내무장관은 가장 중요한 포스트의 하나다. 이제 노동당내에서 블레어는 확고부동한 지도층으로 부각됐다. 나이도 40대로 접어들었다.
4) 예비내각 내무장관으로
블레어는 예비 내무 장관직에서 내무 정책을 가다듬는 기회로 삼는다. 노동당의 최대 약점 가운데 하나는 범죄에 취약하다는 인식이었다.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블레어는 이를 바꾸겠다고 팔을 걷어 붙였다. 몇 가지 범죄를 줄이는 방향으로 당의 정책을 수정했다. 형무소에 갈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 틀림없었지만, 밀어붙였다. 그리고, 공동체 의식(a sense of community)이 날로 사라져 가는 현실을 개탄하며 이의 회복을 주창했다. 1960년대의 자유방임적 기풍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면서 공동체의식을 회복해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범죄에 대해 일방적으로 강력히 대처하라는 주문으로부터는 일정 부분 거리를 뒀다. 사형제도(capital punishment)를 반대한 것은 이런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강약을 조절하는 유연한 정책은 주로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현 재무부 장관)의 충고를 받아들인 덕분이다. 노동당의 원칙에 더 충실했던 고든 브라운은 "죄를 힘으로 다스릴 경우 죄 지을 명분만 더 만들어 준다(Tough on crime, tough on the causes of crime)"는 말로 유명하다. 범죄 정책, 참 중용을 찾기가 어려운 대목인데... 블레어는 게이(gay) 인권에도 신경을 썼다. 그들도 일반 성인처럼 똑같이 16세에 성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예비내각을 통해 블레어는 착실히 국정 수행 능력을 키워 나갔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