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런던의 하늘 수놓은 우리 춤 공연
요즘 런던의 가을하늘은 금수강산의 청명한 가을날을 떠올려 줄 만큼 올릴 만큼 아름답다. 높고 푸르며 여유롭다. 생산적인 활동에 딱 어울리는 우리의 가을날 천고마비(天高馬肥)를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인디언 서머(Indian Summer)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날이 흐리고 기온도 내려가 추워지는 늦가을에 앞서 잠시 새파란 하늘에 마치 여름날처럼 기온도 높고 활동하기 좋은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 푸른 런던의 가을공기를 더욱 상큼하게 정화시켜준 준 공연이 펼쳐졌다. 서울에서 온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문화재재단(CFNMK)이 국립 런던대학교(UCL, University College London, 1826년 제임스 밀 등 자유주의자가 종교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세운 사립대학으로 출발) 블름스베리 극장(Bloomsbury Theatre)에서 '2006 한영 상호 방문의 해'를 맞아 14일 밤 개최한 '판타지아(Fantasia)' 공연이다.

전통 무용의 현대화... 현대의 무용기법과 표현양식을 우리 고유의 전통음악과 춤사위에 담아 온 '가인(佳人) 무용단'이 이번 런던 공연을 맡았다. 해거름에 4백 여명의 영국관객 앞에서 막을 올린 가인 무용단의 공연은 한마디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 그 자체였다. 1부 첫 작품인 창작 무용 홍도(Hongdo)가 현대에 살고 있는 런던의 관객들을 수백 년 전 한국의 전통속으로 불러들이는 향도 역을 맡았다면, 이어 펼쳐진 독무(獨舞) 교방무(敎坊舞)는 우리 춤의 매력 가운데 하나인 선(線)과 정(靜)의 미(美)를 한껏 드러내 보인 무대였다.
2)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무대
원래 교방(敎坊)이란 고려시대부터 조선에 걸쳐 존재하던 국가기관이다. 국가에서 기녀(妓女)들을 한데 모아놓고 노래와 춤을 가르치던 곳이다. 기녀라고 해서 부정적으로 볼게 아니라 요즘으로 치면 국립 음악원이라고 할까. 국가에서 음악을 관장했다고 보면 된다. 국가에서 길러 낸 기녀들은 궁중 소속으로 있으면서 각종 행사에서 가무(歌舞)를 맡았다. 조선시대에는 장악원(掌樂院) 소속으로 좌방(左坊)에서 궁중 아악(雅樂)을 맡고, 우방(右坊)에서 민간의 속악(俗樂)을 맡도록 했다. 음주가무(飮酒歌舞)가 예술(藝術)로 승화된 아름다운 만남이랄까. 머리위로 치켜 올린 손끝에서 치맛자락 아래로 살짝 드러나는 버선코까지 춤사위 하나 하나에 전통미가 그대로 묻어 나 감동을 더했다. 특히, 생음악으로 진행된 창(唱)과 태평소등의 반주에서 우러나오는 우리 가락 특유의 애틋하면서 애절한 분위기가 한민족의 정서를 더욱 실감나게 담아 냈다.
신라의 불교 예술에서 소재를 따온 창작무용 비천무(飛天舞)에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선녀가 속세로 내려온 듯 부드럽고 온유한 느낌이 공연장을 휘감았다. 비천무에 이은 요령고무(搖鈴敲舞)는 고구려의 고분 벽화에서 응용한 창작무용. 고구려인의 씩씩한 기상과 웅혼한 기백이 쩌렁 울려 퍼질 만큼 힘찬 동작 하나하나에 역동적인 한민족의 놀이문화가 가감없이 전달되는 느낌을 줬다.
3) 창작 고전무용의 가능성 열어
이어 2부 첫 작품으로 선보인 창작무, 청풍명월(淸風明月)은 고전 무용에서도 얼마든지 현대미를 가미한 창작무용이 대중성을 가질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제목에서 나오는 이미지 그대로 맑고 시원한 깨끗하며 시원한 바람과 달을 표현하듯 흰 색, 붉은 색, 푸른 색의 강렬한 색상이 정결하고, 선명한 그리고 밝은 분위기의 춤판을 빚어냈다. 특히 소품으로 사용한 붉은 색 부채는 무희(舞姬)의 손끝에서 마술처럼 다양한 동작으로 표현될 때마다 마치 붉은 해가 바다 위에 출렁이듯 이국적이면서도 황홀한 정경을 자아냈다. 빠른 장단에 맞춰 나비가 꽃에 앉듯, 새가 하늘로 날아 오르듯 우아하면서도 힘찬 춤사위가 마침표를 찍는 순간 터져 나온 관객들의 박수는 창작무용의 가능성을 점쳐 볼 수 있게 해준 반가운 까치 울음처럼 들렸다.
무속(巫俗)을 표현한 춤과 군사 훈련을 그린 춤을 지나 마지막 풍물마당은 역시 우리 춤, 우리 음악의 중심에는 북과 장구, 징, 꽹과리의 사물놀이와 풍물(農樂)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무대였다. 상모를 돌리며 흥겹고 신명나는 춤판, 놀이판을 연출했을 때 객석에서는 절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기에 장구와 북의 군무가 어울어지자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됐다. 무대에서는 검은 머리 한국인들이 연주와 춤으로 객석에서는 벽안의 영국인들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박수장단으로... 한국의 소리, 가락, 춤사위가 한데 어울려 깊어 가는 가을의 정취와 운치가 은은한 런던의 밤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았다.
가인무용단은 16일 토요일 국악공연으로는 처음으로 맨체스터에서도 공연을 가진 뒤, 이달 말부터 국립 중앙 박물관 용극장에서 '판타지아'를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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