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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통신] 다이애나① : 운명의 7월 휴가

김문환

입력 : 2006.09.05 11:15|수정 : 2006.09.05 16:10


비운에 간 전 영국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사후 일주일간을 다룬 영화 '더 퀸'에 대해 그녀의 9주기를 맞아 살펴봤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다이애나의 인생과 사랑, 죽음은 단지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에만 다뤄질 정사(情事)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한 인간의 행복과 자유, 진실이라는 인류사회 보편적 가치 외에 영국 왕실의 역사와 영국 사회의 현재 성격이라는 개별적인 특수성이 한데 응축된 정치 사회적 결과물로 격이 달라진다. 물론 프랑스 경찰이 7년간 수사하고도 논란이 그치지 않고, 영국이 념겨 받아 2년이 지나도록 헛바퀴만 도는 상황에서 진실 규명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다이애나의 죽음 직전 행적과 정황을 살펴봄으로써 죽음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건의 정황과 의미를 파악하는 혜안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다이애나 문제를 4회에 걸쳐서 다뤄 본다.

운명의 1997년 여름 휴가, 이렇게 시작

1981년 7월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며 결혼한 다이애나-찰스 커플. 영국왕실의 뒤를 이을 아들도 둘을 낳고 남부러울 것이 없어야 할 다이애나가 남편 찰스 왕세자와 별거에 들어간 것은 1992년. 그리고 1996년 이혼했다. 그녀는 이혼으로 왕실에 대한 모든 칭호와 권위를 잃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는 곳 마다 그 이상의 관심을 모았다. 지뢰반대 캠페인을 비롯해 사회적 무게를 싣는 행보에 성공적일 수 있음을 보여 줬다. 왕세자비 자리를 잃고도 충분히 사회활동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것으로 보였다. 그런 가운데, 다이애나는 1997년 8월 31일 빠리에서 숨지기 직전 뜨거웠던 여름을 프랑스 지중해안의 유명한 휴양지 상 트로뻬(St. Tropez)에서 보냈다. 그녀의 운명을 바꿔 놓은 휴가였다.

이혼후에도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던 다이애나.

휴가는 6월 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국립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이 펼쳐진 로열 알버트 홀(Royal Albert Hall, 템즈강 남단에 있는 국립 극장으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공의 이름을 딴 공연장). 해로드(Harrods) 백화점 후원으로 열린 발레에 백화점 소유주 알 파예드와 백조의 호수 팬이었던 다이애나가 귀빈석에 함께 앉았다. 알 파예드는 다이애나 아버지 스펜서 백작의 절친한 친구였고, 스펜서의 부인(다이애나 의붓어머니)에게 해로드 백화점에 매장을 내줄 정도로 막역했다. 공연 뒤 처칠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벌어진 만찬에서 다이애나는 알 파예드에게 두 아들이 여름에 어디 파파라치들의 시선을 피해 쉴 수 있는 바닷가가 없겠느냐고 물었다. 파예드는 그 자리에서 상 트로뻬의 자기 별장을 추천했다. 생각해 보겠다고 답변한 다이애나가 며칠 뒤 수락의사를 밝혔다.

지중해의 새로운 여왕

파예드는 다이애나가 온다는 기별을 받고 열과성을 다해 손님 맞을 채비에 나섰다. 손님이 아니었다. 장래 영국의 왕비가 될 뻔했던 특별한 귀빈, 지구촌에서 가장 화려한 주목을 받으며 이미 여왕이나 다름없는 여인을 위한 휴가. 파예드가 다이애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의 내용을 보면 새로운 여왕의 탄생 못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 영국 여왕이 된다 해도(여왕이기 때문에) 받지 못할 영접이었다. 다이애나가 잃어버린 왕세자비(HRM, Her Royal Majesty)의 허전함을 달래 주기 충분한 것이었다.

휴가를 떠나는 날. 산뜻한 색상의 녹색 헬리콥터가 다이애나, 그녀의 두 아들, 경호원들을 태우고 공항으로 날아갔다. 해로드 백화점 소유 헬리콥터다. 공항에서는 알 파예드의 전용 제트기가 시동을 걸고 요란스럽게 윙윙거리고 있었다. 날아다니는 호텔로 특별 개조된 전용기는 그들을 남프랑스 지중해안 상 트로뻬에 있는 알 파예드 소유의 아름다운 별장으로 데려갔다. 별장에는 다이애나 일행을 위해 무려 50대의 고급 차량이 대기중이었다. 매일 기분 따라 마차를 바꿔 탈 동화 속의 공주도 꿈꾸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림같은 바닷가 별장 선착장에는 3대의 하얀 요트가 밧줄에 묶여 언제라도 푸른 바다를 향해 나갈 것처럼 돛을 올린 상태였다. 그중 한 대(조니칼호, Jonical)는 콜럼부스가 아메리카를 탐험할 때 탔던 산타마리아호에 버금가는 40m 짜리 대형이었다. 알 파예드가 무려 천5백만 파운드(2백70억 원)를 주고 다이애나의 휴가를 위해 새로 구입한 요트들이었다. 매일저녁 전용 요리사들에 의해 만찬이 펼쳐졌음은 물론이다. 
 

상 트로뻬 해안에서 다이애나. 운명을 바꾼 여름휴가가 됐다.

이곳 별장이라고 파파라치들이 비껴갈 리는 만무한 것이었다. 그런데, 파파라치들은 무엇인가 전과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눈치챘다. 매일 오전 11시 바닷가로 나온 다이애나의 모습이다. 전 같으면 파파라치들에게 빈틈을 주지 않기 위해 행동을 조심하고 파파라치들을 최대한 피했다. 그러나, 다이애나는 전혀 파파라치를 의식하지 않았다. 수영복 차림으로 바닷가에 나와 수영하고, 다이빙에 제트스키를 즐기며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프랑스 파파라치 장 루이 마꼬(J.L. Macault)는 회고하다. "그렇게 사흘을 우리를 의식하지 않던 그녀가 마침내 우리 앞으로 왔습니다. 사진촬영을 위해 빌린 보트 앞으로요. 그리고 말하더군요.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리며 사진을 찍을 것이냐고, 그러면서 10분간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어요. 윌리엄 왕자는 파파라치에 전율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다이애나가 의미 심장한 말을 남겼다고 덧붙인다. "내가 다음 번에 할 일에 여러분들이 깜짝 놀랄 겁니다."   

도디 파예드는 누구인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기 따라서는 그냥 스쳐가는 의례적인 말일수도 있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새 인생의 출발을 알릴 주인공. 알 파예드의 아들 도디 파예드는 전날 저녁 빠리에서 도착해 휴가에 합류했다. 도디. 1955년생이나 다이애나 보다 6살이 많아 당시 42살이었다. 도디는 알 파예드가 첫번째 결혼에서 낳은 자식이었다. 그녀의 생모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세계적인 무기상이자 은행, 호텔등을 소요한 아드난 카쇼기의 여동생 사미라다. 카쇼기는 CIA와 함께 9.11 테러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인 동시에 그의 기업을 통해 2002년 우리 서해안의 안면도를 국제 위락단지로 개발하려다 포기한 적도 있다. 

부모가 이혼하면서 4살 때부터 삼촌 손에 자란 도디는 성인이 된 뒤 영화산업에 손을 댔다. 1981년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음악, 각본 등 4개 부분을 석권한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1928년 제 8회 빠리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인 영국 육상선수의 실화(유대인 주인공이 토요일인 안식일에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사연을 근간으로 한 내용. 유대인에 장악된 허리우드 영화의 한 예)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아랍인인 도디가 유대인 소재 영화에 손을 댔다는 점이 좀 의아하기는 하다. 돈벌이인지, 폭넓은 도량인지... 도디 집안 정도의 거부라면 이제 그런 가치기준은 넘어서야 부의 축적이 가능하겠지만... 모델과 결혼했다 8개월 만에 이혼한 도디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를 좋게 얘기한다. 이해심이 깊고, 부끄럼도 타는 순진함에 매력적이고, 달콤한 사람으로 회고한다. 다이애나를 만나던 무렵에는 모델 켈리 피셔와 사귀었는데, 도디가 죽고 나서 "도디는 나에게 청혼했다"면서 울먹이던 금발 미녀 켈리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상트로뻬 휴가를 통해 연인으로 발전 

다이애나와 도디가 처음 만난 것은 1987년. 찰스왕자의 폴로팀과 해로드 백화점 폴로팀이 친선경기를 가질 때다. 그러다 둘 사이가 연인으로 급격히 발전한 것은 바로 이 1997년의 여름휴가이다. 바로 직전 까지도 도디는 모델 켈리와 함께 다녔었다. 그러나, 휴가에 도디가 합류한 뒤 바로 도디와 다이애나 사이의 관계에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이때가지만 해도 둘이 사귈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주방장만 남은 식당에서 둘이 손을 잡고 걸어 주방장을 깜짝 놀라게 만들면서, 말이 퍼지더니 휴가 말미에는 도디가 자연스럽게 다이애나의 몸에 손을 걸치고 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7월 20일 10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다이애나가 켄싱턴 궁에 도착했을 때 장미, 고급 까르띠에 시계 같은 선물이 쏟아졌다. 다이애나는 여름휴가를 마친 뒤 양어머니에게 인생에 가장 행복한 여름휴가였고, 누군가를 만났다고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7월 22일 이탈리아 디자이너 베르사체의 장례식에 참석한 다이애나는 사흘 뒤 25일 도디의 저녁식사 초대에 응하기 위해 빠리로 날아갔다. 두 아들은 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스코틀랜드 발모럴(Balmoral)성에서 휴가중이었기 때문에 다이애나는 자유로운 상태였다. 도디는 해로드 백화점 헬리콥터를 내줬고, 리츠 호텔에 주말을 보낼 방을 잡아 줬다. 하루 저녁 방 값이 무려 6천 파운드(약 1천1백만 원)인 임페리얼 스위트(Imperial Su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