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화에서 전쟁으로 궤도 이탈
5회에 걸쳐 평화를 지향했던 미국 대통령의 궤적을 따라 걸어 봤다. 중동에서 평화를 일궈냈던 대통령들. 카터나 클린턴도 훌륭하지만, 미국사회를 정확히 꿰뚫는 아이젠하워의 통찰력은 국제정세와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을 읽고, 나아가 미국의 바람직한 역할을 그려보는 혜안(慧眼)을 갖게 해준다. 특히, 1957년 제 2차 중동전 때 아이젠하워 독트린과 1961년 퇴임시 고별사는 서가에 고이 간직하고 전쟁과 평화에 대한 단상이 필요한 순간 마다 꼭 꺼내 읽어야 할 평화의 지침서로 손색없다. 평화와 민주주의, 번영을 내세우며 역설적으로 평화와 민주주의, 번영을 파괴하는 오늘날 초강대국의 오만과 자만.
| 레바논전쟁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숨진 레바논 일가족. 부시 대통령이 주장하는 파시즘을 젖병 문 이 어린 희생자에게서 찾을 수 있을까. |
오늘날 강대국이 빚어내는 비극적인 인간 학살과 인간성 파괴행위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하거나 용서받을 수 없는 추악한 행위임을 역설적으로 최강대국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의 철학에서 들여다 보게 된다. 힘이 없는 국가가 평화를 역설하기는 쉽다. 그러나, 최고의 힘을 가졌으면서도 그 힘이 갖는 부작용의 의미를 깨닫고 힘을 절제하며 평화를 일구기는 어렵다. 그래서, 유일 강국 미국의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나 카터의 평화철학이 위대하게 돋보인다.
레바논 전쟁에서 양민 학살과 민간시설 파괴가 정점으로 치닫던 2006년 8월 7일에서 9일 사이 AP 통신이 미국의 공식 등록유권자 813명을 포함한 성인 1천1명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파시즘과 테러리즘의 척결을 내세우며 이스라엘의 부도덕한 전쟁을 지원하던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궁금하다. 불과 33%에 그쳤다. 거부율이 두 배나 많은 64%나 됐다. 평범한 미국인들도 이제 부시의 전쟁정책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조심스런 증거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무엇보다 다음 질문과 답변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미국의 외교정책이나 테러와의 전쟁이 긍정적이라는 답변이 40%에 그친 대신, 부정적인 답변이 58%로 많았다. 승리라며 흥분하며 항공모함에서 종전을 선언한 뒤 거의 매일 전투가 발생하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는 33%에 그치고, 부정적인 평가가 65%로 훨씬 높았다.
2) 미국은 왜 전쟁을 지향하는가
결론적으로 지금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항목. "그렇다"는 답변이 26%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무려 71%나 나왔다. 물론 부시의 전쟁정책만을 평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국정운영의 전반적인 측면을 담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인들 스스로 유일 초강대국인 자신의 행보가 정상궤도를 벗어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의 궤도 이탈. 미국이 가야할 바람직한 궤도는 무엇인가. 아이젠하워는 이를 어떻게 묘사했는가. 유엔의 헌장과 결의를 절대적으로 지키는 원칙 아래 국제사회와 협력을 통해 국제문제를 다루되, 민주주의와 자유, 인간행복의 증진을 위해 전쟁 대신 평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는 그 높은 이상을 바로 최강대국 미국이 가야할 올바른 길로 파악했다.
| 미국의 군수산업체는 민간기업이다. 전쟁이 없어 무기가 팔리지 않으면 문을 닫는다. 무기를 팔아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생리다. |
그런데 2001년 등장한 부시 행정부가 이런 길을 걸어갔는가. 대통령 따라 다른 독트린을 낼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재, 바로 지금 미국인들은 부시가 이끌고 가는 미국의 길이 분명, 올바른 길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하다. 평화를 사랑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길을 외면하고, 또 국민들이 원하는 길 대신 다른 길을 걷는 부시 행정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점에서 국제문제를 다루는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평화의 길 대신 전쟁의 길이 미국의 민주주의는 물론 지구촌 평화를 위협하고 있음이 명백한 데도 왜 숱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길을 걷을까. 아이젠하워가 그 답을 이미 50여 년 전에 우리에게 던져 줬다. 바로 군수산업(軍需産業)이다.
3)아이젠하워, "군산 복합체 위험" 경고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전쟁이 없으면 문을 닫는다. 처음 미국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치렀다. 위기에 처한 유럽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미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과거의 전쟁이 사람이 치르는 전쟁이었다면 20c 이후 현대전은 무기가 치르는 전쟁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무기는 기업이 만든다. 20c 전쟁을 지속하면서 자본주의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무기생산에 나섰다. 전쟁기간 동안 국민들은 군인으로 전쟁터에 나가 죽고, 국가는 복지나 기타 분야에 써야 할 많은 예산이 전쟁 무기구입 하는 데 지출했다. 국민은 죽고, 생활수준이 떨어지지만, 오직 한 곳, 무기를 만드는 기업은 돈을 벌었다.
| 이 가족의 슬픔은... 아이젠하워는 무기생산을 늘리려는 산업체와 이와 결탁한 군부(정치인)의 음모를 막지 못할 경우 민주주의와 자유가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사회주의 정신을 많이 도입해 무기 산업체를 비롯한 주요 기간산업을 국가가 관리하는 유럽 각국과 달리 미국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무기 생산 업체가 민영이다. 전쟁이 끝난 뒤 무기를 생산하지 못해도 유럽의 국영기업들은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국가가 운영하는 기업이 적자 난다고 전쟁을 일으킬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전쟁이 사라지자 기업의 이윤이 급격이 떨어지고 문을 판이었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위기다.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악이 아니다. 따라서 미국 군수 산업의 자본가들이 자본의 덩치를 키우기 위해 끝없이 새로운 무기를 만들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는 일은 그들 만의 논리로 볼 때 합법적이다. 무기를 만들려면 전쟁을 벌여야 한다. 그런데 전쟁은 군수 산업가들이 하는 게 아니다.
전쟁은 군인들이 한다. 그래서 군수 산업가들은 군인들과 밀접한 관련을 가져야 한다. 군인과 군인의 상관인 정치인을 움직여 무기를 좀더 많이 구입하도록 청탁하거나 압력을 넣어야 한다. 무기를 더 생산할 수 있다면 때로 전쟁도 불사한다. 이런 체제 아래서 전쟁은 이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특정집단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게 된다. 그 집단이 바로 군인과 산업체가 결부한 군산 복합체(軍産 複合體, military-industrial complex)다. 이 논리와 용어는 중국이나 소련의 공산주의자, 유럽의 사회주의자, 아니면 진보적인 지식인이 만들어 낸 게 아니다. 평화를 사랑했지만, 변해가는 조국 미국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봐야 했던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의 논리요, 아이젠하워가 만들어 낸 말이다. 그는 미국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으로 군산복합체의 도전을 꼽았다. 정말 용기있는 정치인이자, 용기있는 미국인의 양심고백이었던 것이다. 다음 글에서 원문으로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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