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 천국에서 금연국으로
런던도 그렇지만 유럽 대부분의 도시는 참 맑고 신선하다. 런던 사람들은 공해가 심하다고 불평하지만 서울이나 기타 개발 도상국가 대도시에 가서 살라고 하면 아마 두 손을 절레 절레 흔들 것이다. 서울처럼 도시가 밀집돼 있지도 않고, 심각한 공해를 유발하는 자동차의 연소장치와 매연 저감장치가 우수해 공해 발생의 절대량이 우선 적다. 여기에 바람이 많고 수시로 비가 내리면서 대기를 맑게 해주는 데다 녹지공간이 많아 신선한 공기를 많이 만들어 내 큰 길가를 벗어나면 어디서든 마음껏 심호흡을 해도 서울기준으로 보면 맑고 상쾌하다.
그러나, 런던 거리를 걸으면서 서울과 비교해 눈에 거슬리는 부분 하나가 있다. 런던 뿐 아니라 파리같은 유럽의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지다. 거리 흡연. 도대체, 담배를 피지 않는 사람은 시내 중심가에서 숨을 제대로 쉬며 걷기가 어려울 정도로 행인들이 담배를 많이 피워 댄다. 한 사람 흡연자를 만나 살짝, 그러나 빠르게 앞으로 걸어 가면 또 다른 흡연자가 그 앞에서 담배를 손에 들고 걸어간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인구밀도는 한국의 서울이 높은데, 이곳에서 유난히 더 거리 흡연자가 눈에 많이 띄는 이유. 한국서는 그래도 성인 남자만이 피우지만, 여기서는 성인 남자 못지않게 여성 그리고 학생 가릴 것 없이 무차별로 담배를 피워대는 탓이다.
| 런던에서는 거리에서 여성흡연자를 더 많이 볼수 있다. |
거리만이 아니다. 공공장소 어디서도 비슷한 풍경이다. 미국은 이미 담배를 마약류로 지정했고, 한국도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하고 있지만, 런던을 포함한 대부분 유럽 도시들에게는 아직까지는 강 건너 남의 불이다. 꽁초나 제대로 휴지통에 버리면 좋으련만 휙 아무데나 집어던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청소부가 치우기 전에 거리는 꽁초로 뒤덮인다. 그렇다고 우리처럼 범칙금 물거나 누가 뭐라는 사람도 없다. 담배가 가져오는 공공적 피해보다 개인이 원할 때 어디서든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개인의 권리를 아직 더 소중히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젠 어렵게 됐다. 더 이상 담배를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끝에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결실을 맺게 됐다. 3년간의 입법화 운동 노력이 가져온 결과물이다. 런던만이 아니다. 프랑스도 내년 1월 1일부터 공공 장소에서의 금연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담배 천국 런던과 파리가 금연지역으로 바뀌면서 거리가 한층 깨끗해질 전망이다.
만화영화 담배장면 삭제
특히 여성과 청소년 흡연이 심각한 문제가 되면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TV프로그램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을 모두 삭제하라는 방침이 정해졌다. 정크푸드와 달리 이미 담배는 광고가 규제되고 있지만, 문제는 TV프로그램 자체였던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널리 인기를 얻은 유명 만화영화 '톰과 제리'를 비롯한 어린이들이 즐겨 보는 만화영화가 표적이 됐다. 고양이 톰이 생쥐 제리에게 멍청하게 당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안겨 온 만화영화. 극중 고양이 톰이 피우던 담배장면은 모두 가위질돼 방영될 예정이다. 1천5백여 편에 달하는 모든 영국 내 만화영화에 대한 흡연 장면 일제조사가 실시된다고 한다. 악당이 피우는 장면은 두되, 주인공이 멋지게 보이려고 피우는 장면은 모두 사라질 참이니... 뽀빠이 아저씨의 파이프도 TV 화면에서 사라지게 됐다. 담배 대신 풀잎을 입에 문 장면을 그려 세계보건기구(WHO)로 부터 상을 받는 만화가도 있었지만, 영국에서 달라지는 흡연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는 하나의 사례다.
| 인기 만화영화 '톰과 제리' 등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흡연장면을 삭제하게 됐다는 BBC 뉴스. |
담배 유해물질 4천 가지…피우고 나도 옷에 유해성분 남아
이런 가운데 담배를 밖에서 피우고 집으로 들어와도 유해물질이 그대로 남아 집안 식구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흡연에 대한 새로운 경고가 되고 있다. 미국의 마트(G. Matt)교수가 13개월 이하 유아 49명을 조사한 결과 소변에서 니코틴과 그 부산물인 코티닌이 검출됐다는 것이다. 또, 부모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어린 자녀가 위험 물질에 노출될 위험도가 50배, 부모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와도 부모가 아예 담배를 피우지 않는 집 아기보다 위험물질에 노출될 위험성이 7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어린이 천식은 물론 폐의 성장과도 관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유아들이 어른보다 숨을 빨리 쉬고 위험물질을 더 빨리 빨아들여 피해가 크다고 한다.
| 담배 속 4천 가지 유해물질의 대부분이 옷 등에 묻어 집안으로 들어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
담배 속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유해물질이 들어있을까. 무려 4천 가지 화학물질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것만 43가지. 이런 유해물질은 어른이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안으로 들어와도 옷에 그대로 묻었다가 실내의 가구나 공기 중에 퍼져 아기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 이렇게 3차 피해 연기(third hand smoke)속에 있는 니코틴의 양은 전체의 무려 90%나 된다. 밖에서 묻어 들어온 니코틴은 심지어 몇 달 동안을 집안에 머무는 것으로 밝혀졌다. 가족의 성화에 못 이겨 추운 겨울날 베란다나 정원 구석에 나가 덜덜 떨며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는 식구들. 결국 헛고생만 하고 피해는 피해대로 입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라이트(Light)' 표현도 못하게 규제
미국에서는 최근 담배 광고에 '라이트(경미하다, Light)'라는 표현을 넣어서는 안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니코틴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니코틴의 피해를 염려하는 애연가들이 담배피는 것을 꺼릴까 두려워한 업체들이 "니코틴 함량이 낮다"는 의미로 집어넣는 이 표현이 위선(Hipocrisy)이라는 것이다. 이미 치명적일 정도로 충분히 해로운 데도 그것보다 위해물질이 더 많이 든 담배에 비해 정도가 조금 낮다고 해서 위험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어서 위선에 불과하다는 판결이다. 국내에서도 담배에 '라이트'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영국도, 한국도 아직 담배에 있어서 만큼은 이를 마약으로 규정한 클린턴 대통령 정부 시절의 혁신적인 정책은 물론 담배회사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현 부시 행정부보다 한발짝 뒤져 있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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