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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민주주의 창-평화의 미국①: 카터

김문환

입력 : 2006.08.18 14:22


카터의 중동 평화정책

미국의 세계 전략은 무엇일까. 지구촌을 미국이 의도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 나가는 것이라고 했을 때 부정한다면 보편성이 떨어진다. 어느 나라가 지구상 초강대국이 된다고 해도 대동소이한 목표를 가질 게 분명하다. 범위를 좁혀 중동에서는 어떤가. 대부분의 국가를 사우디같은 친미 국가들로 바꿔 중동에 친미 블럭을 형성하는 것이다. 좀더 이상(理想)적으로 표현해 친미는 아니라 할지라도 대화가 가능한 온건한 국가들로 바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지속돼 온 갈등과 전쟁에 어떻게든 종지부를 찍어 중동에 평화를 정착시키자는 게 미국의 목표라는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다.

지금의 미국이 그런 정책을 추진하고 있느냐, 혹은 미국이 과연 그런 나라인가의 문제는 별개로 하더라도 일단 그런 정책을 추진한 대통령과 정권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대통령과 정권이 그리운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과거 알렉산더 대군이나 로마의 대군, 몽골의 최강 군대에 비견할 가장 강력한 군대를 가진 미국이 그 힘을 평화정착에 써주길 진정으로 바라는 입장에서 그렇다. 그런 대통령은 누구였을까. 지금도 왕성하게 지구촌 평화와 인권의 사자(使者, 심부름꾼)로 맹활약 중인 카터다. 지미 카터(James Earl Carter).

1924년 생이니 우리로 치면 남북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던 김대중 대통령보다 2살이 많다. 1979년 한국을 방문해 카퍼레이드를 벌일 때 함께 했던 박정희 대통령보다는 7살이 어렸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것보다 2년 늦게 2002년 노벨 평화상을 탄 카터는 정말이지 지금의 미국 대통령과 너무나 다른 대통령의 길을 걸었다. 특히 중동정책에서 그랬는데, 1979년 맺은 그 요명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은 평화를 추구했던 그가 중동은 물론 인류사회에 던져 준 최대의 선물이었다. 지금 왜 카터를 그리워하게 되는지, 카터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자세히 들여다 봄으로써 난마처럼 얽힌 중동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본다.

1) 중동전쟁의 기원

중동전쟁이라 하면 1970년대까지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전쟁을 가리켰다. 모두 4차례에 걸쳐 발생했던 중동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제1차 세계대전을 주도적으로 치르던 영국은 유대인들의 재정적인 지원과 유대인 여론을 연합국측에 유리하게 작용시키기 위해 얻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나라를 세운다는 시오니즘(Zionism)을 지지하겠다는 밸포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을 했다. 1917년 11월 영국 외무장관 밸포어가 시오니즘 운동의 재정적인 후원자인 금융왕자 로스차일드에게 편지를 보내며 이런 내용을 처음 밝혔고, 1920년 산레모 회의에서 영국의 정식 정책으로 채택됐다. 이에 앞서 영국은 1915년 독일과 연합하고 있던 오스만 투르크(터키)를 견제하기 위해 아랍인에게도 협력을 요청하면서 전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붕괴되면 아랍인들의 독립국가를 세워 주겠다는 맥마흔 선언(McMahon Declaration)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아랍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맥마흔 선언, 나중에는 유대인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밸포어 선언... 강대국 편의주의 외교가 이후 엄청난 불행을 가져올 씨앗이 될 줄은 당시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강대국이 될줄도 몰랐고... 역사가 다 그렇지만... 문제는 바로 생겼다. 승전국 영국은 1922년 국제연맹을 움직여 팔레스타인을 영국의 위임통치령으로 만들었다. 1차세계 대전의 주요 전승국이면서 국제연맹을 주도했던 미국은 의회의 반대로 국제연맹에 가입하지 못했다. 불과 80년전 미국의 모습이다. 팔레스타인을 자신의 위임 통치하에 둔 영국이 이후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도우면서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아랍인과 마찰이 생기게 됐다. 중동문제의 시작이다.

2) 1차 중동전쟁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은 팔레스타인에서 발생한 유대인과 아랍인의 문제를 새로 만든 국제기구 국제연합(UN)에 일임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도 치열하게 논의되던 1947년 제2차 UN 총회는 팔레스타인을 아랍과 유대의 쌍방에 분할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1948년 5월 14일 영국군이 철수하자 유대인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선언했다. 미국의 절대적인 지원아래 이뤄진 일이다. 그러자 5월 16일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측 약 2만의 병력이 팔레스타인에 침입했다. 1949년 2월 UN 중재 아래 휴전이 성립됐는데, 이때 100만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고향을 등지고 난민이 됐다.

3) 2차 중동전쟁

1952년 7월 이집트에서 정변이 발생했다. 쿠데타가 일어나 왕정제를 붕괴시키고, 공화국이 들어섰다. 쿠데타의 주역에서 대통령이 된 나세르는 1956년 7월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고 봉쇄했다. 큰 타격을 입게 된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은 10월 29일 시나이반도를 침공한 뒤 점령해 버렸다. 그러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과 소련의 압력으로 UN군이 파견되고 이스라엘도 1957년 3월 점령지에서 철수하면서 마무리됐다.

폐허로 변한 레바논 현지 르뽀. BBC 1. 

4) 3차 중동전쟁

1960년대 들어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난 아랍인들은 게릴라 활동을 하며 이스라엘에 맞섰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1967년 4월 게릴라 활동의 주무대인 시리아를 공격했다. 이에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아랍의 결속강화를 꾀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을 이겨보겠다는 계산 아래 6월 5일 전쟁을 일으켰고, 전선은 시리아와 요르단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4일 만에 승리를 거뒀다. 예루살렘도 요르단 영토에서 이스라엘 영토로 만들었다.

5) 4차 중동전쟁

아랍측의 게릴라활동이 격화되는 가운데, 나세르가 죽고 대통령이 된 사다트는 1973년 10월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그러나, 누구도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다시 UN 중재하에 휴전 협정이 맺어졌다. 이때 중동의 산유국이 석유 가격을 일으키면서 세계 경제는 오일파동으로 휘청하게 된다.

6) 캠프 데이비드 협상

지리하게 끌던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전쟁은 마침내 1977년 1월 미국에 평화와 인권을 강조한 민주당 출신 카터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기를 맞는다. 1977년 11월 이집트 대통령 사다트는 아랍의 배반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이스라엘의 베긴 총리도 이집트를 방문했다. 카터 대통령은 1978년 9월 두 사람을 미국으로 불렀다. 장소는 평화의 요람.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 별장. 워싱턴 서쪽 매릴랜드 주에 있는 미국 대통령 전용 별장이다. 1942년 루스벨트 대통령 때 만들어 처칠과 처음 세계 평화에 대해 논의한 곳이다.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나오는 티베트의 낙원을 본따 '샹그릴라(Sangri-La)'라고 부르다가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다시 지으면서 그의 손자 이름 데이비드라는 이름을 얻었다. 참... 우리가 만약 전두환 대통령이나 노태우 대통령의 손자 이름을 따 이름을 짓는다면... 샹그릴라가 좋은데... 아이젠하워는 1959년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불러 양국간 평화를 논의했다.

7) 초강대국 미국의 진정한 대통령 카터

평화의 성전에서 카터의 중재 아래 사다트와 베긴은 회담을 벌였고, 이후  밀고 당기는 협상을 거쳐 1979년 3월 26일 워싱턴에서 카터의 입회 아래 이집트-이스라엘 평화조약이 체결됐다. 4차례의 전쟁을 마치고 새 역사를 연 협정으로 사다트와 베긴은 노벨 평화상을 탔다. 그러나, 이상은 카터가 받아야 했다. 카터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터는 지구상 최강의 대통령답게 이집트와 특히 이스라엘에 압력을 넣고, 또 경제지원이라는 당근도 주면서 양국 정상과 양국 정부의 동의를 얻어냈다. 이후 미국은 지금까지 이집트에 매년 10억 달러 상당, 이스라엘에 30억 달러 상당의 경제지원을 해오고 있다. 평화는 이렇게 얻어지는 것이다. 강대국의 책임과 역할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8) 카터가 보는 레바논 전쟁

이런 카터가 이번 레바논 전쟁을 어떻게 바라봤는 지는 자명하다. 이스라엘의 침공에 법적,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고 못박았다.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과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카터 대통령은 "이스라엘은 1만여 명의 포로를 잡고 있으면서 1~2명의 이스라엘 병사가 잡혀 갔다고 레바논과 가자지구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은 정당화 할 수 없다"고 큰 가르침을 줬다. 카터는 "부시 행정부가 전직 대통령들이 가졌던 기본 정책들로부터 급진적으로 이탈했다"면서 "전쟁에 앞서 평화를 위한 헌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라크전과 관련해서도 부시가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고 따끔한 충고의 말을 잊지 않았다. 최강대국의 대통령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통령학 강의로 모자람이 없다. 미국이 이런 카터의 정신으로 되돌아가길 수많은 지구촌 양심들이 기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