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7. 독일
1)독일
2,3,4,5,6,7,8,9,10,11,12,13,14) 쾰른(Cologne) --오늘 이야기
15,16,17,18)베를린(Berlin)
12)쾰른 철학자 모자이크 5-- 소포 클레스
철학자 모자이크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문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문학을 사랑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뜨거운 존경과 사랑을 받던 이는 소포클레스(Sophocles, B.C 496년~B.C 406년)다. 그는 스승인 아이스킬로스(Aeschylus, B.C 525~B.C 456년), 후배 유리피데스(Euripides, B.C 480년~B.C 406년)와 함께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이자 그 중에서도 최고의 작가로 꼽힌다. 그의 문학세계와 인생, 그리고 정치인이자 도덕을 강조한 철학자로 그가 남긴 명언들, 당시 그리스의 문학에 대해 들여다 본다.
소포클레스는 아테네 북서쪽 1마일 지점인 아티카 지방 콜로누스 히피우스의 한 데메(deme, 그리스 시대 시골 마을 단위)에서 태어났다. 오늘날은 철도역이 자리하는 곳이다. 그가 태어난 해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테네가 그리스 민족 전체의 운명을 걸고 당시까지 최대강국 페르시아와 일전을 치르던 마라톤 전투(B.C 490년)보다 6,7년 앞서는 것으로 평가된다. 소포클레스의 아버지 소필루스는 목수이자 대장장이, 무기 제조업자같은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수공업 계통에 종사했음을 알 수 있다. 시골출신이라든지 아버지의 직업으로 볼 때 명문은 아니지만 부유한 집안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는 잘생겼고, 건강했다. 그리스인들이 좋아하던 스포츠 레슬링이나 권투 가운데 그는 특히 레슬링에 소질을 보였으며 음악에도 탁월한 재능을 나타냈다. 요즘이야 한가지 분야만 잘하기 때문에 씨름 선수 최홍만이 바이올린도 연주를 잘한다고 하면 어색하게 들리지만, 전인(全人)적인 인간형을 추구하고 또 그렇게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인재가 많았던 당시에는 낯선 얘기가 아니다. 마라톤 패전의 원한을 되갚아주기 위해 페르시아가 대군을 이끌고 다시 침략했을 때 아테네는 다시 살리미스 해전(B.C 480년)에서 대승을 거둔다. 승전 행사에서 그는 멋진 몸매와 얼굴을 뽐내며 나>문학에 재능을 보인 그는 당시까지 그리스 최고의 비극작가이던 아이스킬로스에게 정식으로 작가 수업을 받았다. 제대로 스승을 만나 문학적 재능을 마작품을 내 처음으로 비극 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리스인들은 1년에 한번 디오??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란 비극적인 신탁을 받고 태어난 오이디푸스. 신이 정해 놓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의 고뇌와 결국 운명 앞에 무력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그린 명작 [오이디푸스왕]을 비롯해 그의 작품은 [안티고네(오이디푸스가 어머니인줄 모르고 결혼해 그 사이에서 낳은 딸)]등 7편이 전한다. 중세를 거치면서 수기(手記)로 다시 옮겨 적은 덕분이다. 근대 까지만 해도 그의 작품은 알려진게 7편이 전부였으나 19c 파피루스에 적힌 많은 고대 문헌들이 발견되면서 3부극과 사티로스극 등의 작품도 더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 소포클레스. 뛰어난 용모에 문학적 재능, 정치력을 가졌던 인물로 그려진다. |
그는 정치인으로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소포클레스가 산 시대는 아테네가 최대의 번영을 누리던 B.C 5c다. 조국 아테네는 이 무렵 세계 제국 페르시아를 물리치고, 수백개 그리스 도시국가 가운데 맹주로 그 위세를 만방에 떨쳤다. 당시까지는 물론 그 이후 고대 세계를 통 털어 그리고 요즘 개념으로 접근해도 흠잡을 데 없는 거의(노예와 여성을 제외한 자유민 남성 사이에서) 완벽에 가까운 직접 민주주의를 구가했다. 민주주의가 꽃피고, 경제적으로 번영하며 문화가 발달하던 그야말로 요순(堯舜)도 필요없던 태평성대기요, 유토피아가 따로 없던 시절이 이어졌다.
이 무렵 아테네를 이끈 지도자는 페리클레스였다. 소포클레스는 위대한 정치가 페리클레스의 동료로서 B.C 443년부터 2년간 델로스 동맹의 금고를 관장하는 장관으로 일했다. B.C 441년에는 페리클레스와 함께 당시 그리스 정치를 이끌어가는 10인 장군의 한명에 선출됐고, 이 때 사모스 섬의 반란 진압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그 개인이라기 보다 조국의 운명이 그랬다. 스파르타와 벌인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아테네의 국력은 물론 그리스 도시국가 전체적으로 힘이 소진됐으며, 아테네 입장에서는 B.C 413년 당시 그리스 민족이 지중해 연안에 세운 도시국가 가운데 가장 강력하던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와 한판 대결에서 패한게 결정적인 쇠락의 원인이 됐다. 이 때, 소포클레스는 패전 뒷처리를 담당하는 직책을 수행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에 앞서 B.C 406년 정치인이요, 뛰어난 문인으로 살던 소포크레스가 죽었다. 그리스인들이 현자로 존경하던 인물은 현실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답을 내려했던 정치인이자, 학자, 문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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