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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통신] 런던 정전사태의 교훈

김문환

입력 : 2006.07.29 15:01|수정 : 2006.07.31 15:44


런던 중심가 정전

런던이라는 인구 6백80만의 대도시는 모두 34개의 행정단위로 나뉘어 있다. 내부 런던(Inner London)의 13개와 외부 런던(Outer London) 21개로 구성돼 있다. 내부 런던을 상징하는 곳은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 우리는 시티를 시(市)로 생각해 시티 오브 런던을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 메트로폴리스 런던시와 혼동하기 쉽다)과 시티 오브 웨스트 민스터(City of Westminster)등이 런던 시내 최 한복판이다. 쉽게 얘기해서 런던에 관광 오는 사람들이 들리는 대부분의 명소가 이 안에 들어 있다. 영국왕이 거주하는 버킹검 궁전이나 수상의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街), 국회의사당(Big Ben), 영국 국교회의 중심지 웨스트민스터 수도원, 성당과 트라팔가 광장, 대영박물관, 워털루 브리지, 차이나 타운이 자리한 소호….

빠리 사람들 보다 관광객이 더 많은 샹젤리제 거리처럼 런던 시민들보다 외국 관광객이 더 많다고 여겨지는 중심거리가 옥스포드 스트리트, 리젠트 스트리트, 토튼햄 코트 로드... 로마 식으로 따지면 옥스포드 스트리트는 동서(東西)로 뻗은 동서대로(데쿠마누스 막시무스), 리젠트 스트리트와 토튼햄 코트 로드는 남북(南北)으로 뻗은 남북도로(카르도)가 된다. 옥스포드 스트리트와 나머지 두 도로는 교차한다. 이 최고의 관광 중심가가 27일 하루종일 암흑의 세상으로 변했다. 대규모 정전(停電)사태. 이 사태는 28일에도 이어졌다. 서울로 치면 명동이 정전사태라는 상황을 맞은 것인데...

가정과 상점, 사무용 건물, 지하철  피해  

상점과 식당들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불을 밝히지 못했다. 마침 이상고온으로 찌는 더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에어콘은 커녕(에어콘은 고급 식당이고) 선풍기도 돌리지 못한 업소가 많다. 식당들은 음식을 조리하지 못해 손님을 받지 못했다. 업무용 빌딩에도 전기공급이 끊겼다. 자가 발전기를 갖추지 못한 건물은 상업적으로 큰 손해를 봤다. 주민 피해도 컸다. 수천가구의 아파트와 주택에도 전기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더운 여름날 전기도 없고 선풍기도 없다고 생각해 보자. 대략 3천 가구의 주택과 건물이 이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대중교통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는 대형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먼저, 해당지역의 거리 교통신호등 작동이 중단됐다. 경찰이 나와 수신호로 차량흐름을 조절했다.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는 곳은 지하철. 운행도중 터널에서 멈춰 서지는 않는다 해도 지하 수십미터 아래 역사나 계단, 플랫폼에서 승객들이 암흑 속에 이리저리 헤맬 수도 있다. 옥스포드 서커스(Oxford Circus)역은 실제 승객들을 대피시켰다. 큰 혼란이다. 아무리 20c 초반 같지는 않다고 해도 미국에 이어 아직 세계 정치나 경제에 두루 영향력을 갖는 지난날의 큰집 영국의 심장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우리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는다.

정부에 항의도 못해…외국 민간기업이 운영

그러나, 더 믿기지 않는 일이 다음에 벌어진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전기를 공급하는 한전의 전화통이 불난다. 그리고 시청에 복구를 호소하는 항의가 빗발친다. 언론은 대서특필 한다. 한전은 뭐하고 정부는 뭐하는 것이냐... 더구나 우리처럼 바로 복구되는 것도 아니고, 오전 일찍 시작된 정전사태가 저녁 늦게나 복구됐다. 일부는 다음날로도 이어졌다. 100명의 엔지니어가 달려들어 고쳤다고 하는 게 이 정도다. 이런 대형 정전사태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나 2001년 8월에도 런던에서 이같은 정전사태가 발생했었다. 그래도 시민들이 할말이 없다. 왜 그럴까.

런던정전사태를 보도하는 신문 기사.

전력 공급을 맡은 곳이 우리처럼 공기업이 아니다. 우리는 한전이 전기도 생산하고 공급도 한다. 공기업이다. 그러나 영국은 민간기업이다. 전기 생산은 공기업이 하되 민영기업이 공급을 맡는다. 전기 배송 선로를 갖고 공급을 맡은 업체는 이디에프 전력(EDF Energy). 프랑스 회사다. 이 회사 대변인은 "전기공급을 무한 보증할 수는 없으며 그것이 법적으로 책임질 일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놀랍다. "만약 선로에 문제가 있다면 최대한 빨리 고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18시간은 걸린다." 고 느긋하게 말하더니 "소비자들은 가구당 50파운드, 사무용은 100파운드 손해를 청구할 수 있다."고 사무적으로 잘라 말한다. "보수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덥더라도 에어콘 사용을 줄여 달라"고 요구하는 회사에 대해 시민들이 분노를 사는 진짜 이유는 이런 대규모 정전 사태가 나기 바로 사흘 전에 전기 요금 대폭 인상안이 발표된 것. 가스요금은 19%, 전기요금은 9% 인상.

한국의 전력 민영화 추진

여기서 얘기를 한국으로 돌려 보자. 남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등장한 국민의 정부는 공기업의 대대적인 민영화에 나섰다. 발전도 포함됐다. 이전에는 전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일을 공기업 한국 전력이 맡았다. 그러나, 전력생산과 공급을 분리했다. 그래서 공급부분을 민영화 한다고 밝힌 것이다. 이 계획은 생산과 공급을 분리하는 선에서만 실시되고, 공급업체 민영화는 일단 2003년 등장한 참여정부에서 중단시켰다. 아니 일단 보류했다.

자 생각해 보자. 민영화 할 때 외국계 기업도 인수대상에 포함된다. 그리고 그냥 돈 놓고 돈 먹는 장사인 알짜배기 전기장사에 외국 기업이 들어올 것임은 자명하다. 지금 외환은행을 불법으로 매각해 국민경제에 얼마나 많은 손실을 끼치고 있는 지는 드러난 대로이다. 불법을 저지른 외국 자본을 처벌하는 데 한국사회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는 지도 널리 알려졌다. 만약 우리도 당초 계획대로 은행 말고 전기가 넘어갔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 정전사태가 났다. 시민들이 말도 안통하는 외국 회사에 가서 항의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은행도 그렇지만, 전기는 국가 기간 산업이다. 산업이라기 보다 사회에 꼭 필요한 공기(公器)이자 공공 자본(資本)이다. 신 자유주의 사고방식대로 민영화 시킬 때의 잇점만 강조하는 재벌과, 일부 언론, 학자들 주장의 이면(異面)을 런던의 정전사태에서 되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