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민주주의의 창--
1. 머 리 말
서양 민주주의의 역사를 논할 때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1215년 영국의 존 왕이 대헌장(마그나 카르타, MAGNA CARTA) 서명이다. 왕권을 제한해 민주주의의 초석을 다졌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 뒤에는 수백년 간 독재에 대한 거센 저항과 급진적인 혁명, 그러면서도 전통을 지키며 점진적으로 제도를 바꿔온 개혁이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적절히 맞물리면서 세계 민주주의의 모범을 이룩했다는 게 공통된 인식이다. 일찌감치 왕권을 제한해 명목상의 입헌군주제, 실질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만든 뒤 이를 바탕으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비록 지금은 제몸에서 갈라져 나간 미국에게 20c 전반기까지 누려온 세계 헌병으로서의 지위를 넘겨줬지만, 부자 망해도 3대 간다고 각 분야에서 영국의 저력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그 저력의 밑바탕을 이루는 힘은 무엇일까? 바로 언론에 있다고 조심스럽게 단언하고 싶다. 필자는 자존심 높고 미국주도하의 세계 질서에 때로는 드러내놓고 불쾌감을 표시하는 프랑스의 언론을 비록 주마간산(走馬看山)이나마 곁에서 들여다 볼 기회를 가졌다. 자본이나 정치권, 종교, 기타 이익집단이 행사하는 부당한 권력, 나아가 스스로의 이윤추구, 일그러진 편견이나 아집에서 나오는 언론사 내부 이기주의로부터도 독립해 인간의 자유의지를 최우선으로 실천하는 언론의 모범을 읽기에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를 글로 정리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 영국에 와서 언론의 새로운 지평을 발견하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프랑스언론과 비교해 우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타블로이드성 대중지가 판치는 영국과 달리 점잖게 진실의 정론을 추구하는 프랑스 언론의 장점은 누가 뭐래도 훼손되지 않는다. 단 영국언론에서는 프랑스에서 보기 어렵던 새로운 점이 발견된다. 바로 세계로 향해 열린 창이다. 프랑스에서도 르몽드(Le Monde) 신문처럼 세계로 가슴에 품는 언론의 품격은 존재한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이런 분위기가 특정 신문에 머무는 게 아니다. 한발 더 나가 신문뿐 아니라 방송이 이런 언론관을 주도한다는 점이다. BBC뿐 아니라 민영 ITV도 늘 관심의 창을 세계를 향해 열어 놓고 지구촌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네 목소리 다시 말해 영국 정부의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입장이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미국정부의 목소리만 틀어댄다는 말이 아니다. 정 반대다. 전 세계 약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귀울여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오로지 진실을 향해 뜨겁게 펜을 굴리고 마이크를 들이댄다는 점이다. 진실을 밝히기 보다 자국 이기주의에 함몰되는 보도태도가 마치 진정한 애국이요, 양적이고 기계적인 중립이 마치 언론의 사명인양 포장되는 현실에서 영국언론의 폭넓은 시야와 진실 추구 자세는 타산지석을 넘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다가온다.
현재 세계인들의 관심사는 중동문제다. 고질적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에 이어, 이번에 다시 불거진 레바논-이스라엘 전쟁은 대표적이다. 이 지역이 어디인가! 오리엔트(Orient), 다시 말해 지중해 동안(東岸)이다. 필자가 추구하는 지중해 문명기의 한 축을 이룬다. 그동안 오리엔트를 포함한 지중해 문명의 고대사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물론 지속적으로 고대 역사를 조명하겠지만, 이제 탐구의 영역을 현대사로도 옮겨 볼 작정이다. 사실, 지난 2003년 [미국, 이라크, 한반도]라는 책을 냈다. 그 뒤 중단해 있었는데, 이제 세계를 향해 눈과 귀를 열고 있는 영국의 언론을 통해 좀더 넓은 시야와 다양한 관점에서 중동사태를 비롯한 지중해 주변의 정세와 세계정치를 들여다 보려고 한다.
그러니까 [지중해 문명기]라는 이름 아래 기존의 역사 연재를 지속하고(모자이크는 독일 편으로 1부를 마무리 짓고, 뒷날 지중해 나머지 지역 모자이크로 연재를 이어간다. 8월부터 영국에서 할수 있는 다른 역사 주제로 들어감), 역시 [지중해 문명기]라는 타이틀 아래 [세계 민주주의의 창]이라는 제목 아래 영국언론에 비친 국제 사태, 영국내의 민주주의 실천, 사회정의 실현 등을 검토하며 우리가 참고로 삼을 부분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칼럼이라는 취지에 좀더 걸맞는 작업이다. 물론 이들이 정답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어느 사회에 정답이 있겠는가. 단점도 있다. 단, 진실을 바르게 이해해 진보와 발전에 필요한 자양분을 얻는 끝없는 여정의 일부로 긍정적인 측면을 들여다 보고자 할 뿐이다. 이들의 언론 보도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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