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장씨 장철(張哲) 공신책봉문서
조선 태조 때 이방원이 주도한 제1차 왕자의 난(1398)에 관여한 공신을 책봉한 공훈문서인 '정사공신녹권' 완본이 발견됐다.
정사공신이란 '사직을 안정케 하는 데 공고를 세운 신하'라는 뜻으로 1차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 편에 섰던 사람들에게 내려진 공신칭호다.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허철회 교수는 인천이씨 중시조이자 조선초기 도승지를 지낸 이문화(李文和.1358-1414)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가 임금의 명령을 받아 정사 공신 중 한 명인 장철에게 발급한 '장철정사공신녹권'을 찾아내 15일 공개했다.
충남 천안에 사는 장철 후손에게서 발견했다고 허 교수가 밝힌 이 공신녹권은 길이 4m, 폭 40㎝에 이르는 두루마리 형태로 왕자의 난 3개월 뒤인 1398년 11월에 당시 도승지인 이문화가 임금의 명령을 받아 발급했다.
장철은 안동장씨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참여했으며, 조선 건국 뒤에는 중추 원부사를 역임하며 1차 왕자의 난에 이방원이 이복동생인 방석 일파를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해서 정사공신 29명 중 한 명에 포함됐다.
이번에 발굴된 정사공신녹권에는 이들 공신 29명의 이름과 이들에게 각각 내린 특전 등을 자세하게 기록했으며 문서를 이은 곳에는 옥새를 찍었다.
이에 의하면 당 시 정사공신 중 일등에게는 전(田) 200결·노비 25구씩이 하사됐으며, 장철이 속한 이등공신의 상등급에는 전 150결·노비 15구, 하등급에는 전 100결·노비 10구씩이 각각 내려졌다.
나아가 녹권은 "(공신들의) 공로가 중대하여 영원토록 잊을 수가 없으므로" "공신 모두에게 녹권을 작성해 주고 각을 세워 화상을 그리고, 비를 세워 기록하도록" 했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공신 자손들에 대한 특권도 규정했다.
즉, 죄를 범해도 용서토록 했다.
반면, 방석을 지키려다가 이방원 일파에 의해 주살된 정도전 등은 '간신'으로 표현함으로써 당시 조선 조정 안팎을 둘러싼 정치권력 탐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사진으로 문서를 본 고문서 연구가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은 "실물을 검토하지 못해 뭐라 단언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부사를 역임하며 1차 왕자의 난면서 "후대의 모사본(카피본)이 아니라 원본으로 판단되며, 훼손이 좀 심한 점이 흠이긴 하지만, 자료의 희귀성 등의 측면에서 볼 때 보물급 정도에 해당하는 고문서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초 공신녹권은 정도전을 비롯해 개국을 도운 신하들에게 발급한 개국공신녹권이 제1호가 되며, 1차 왕자의 난과 관련한 정사공신 책봉이 두번째가 된다.
하지 만 이들 조선초 공신녹권으로 현존하는 것은 1392년 이화(李和)에게 내린 '의안백이 화개국공신녹권'(국보 232호), 1397년 심지백에게 내린 '개국원종공신녹권'(국보 69 호) 등 5건에 지나지 않으며, 정사공신녹권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된 '정사공신 조온사여왕지'(보물 1135호) 1점뿐이다.
안승준 위원은 "조선초기 공신문서가 절대적으로 적은 까닭은 연대가 오래된 이 유도 있지만, 실은 공신 대다수가 나중에 숙청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장철 공신녹권에는 여타 녹권이 그렇듯이 역시 본문에 많은 이두를 섞은 것으로 밝혀짐으로써 국어사적인 가치 또한 클 것으로 기대된다.
장철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더불어 후삼국 쟁패를 다투던 와중인 서기 930년, 고창(지금의 경북 안동)에서 벌어진 유명한 전투에서 안동김씨 김선평, 안동권씨 권행과 함께 왕건을 도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공로를 세운 이른바 삼태사의 한 명인 장정필을 시조로 하는 안동권씨 후손이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