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습니다. 태풍 하나 보낸지 얼마 안됐는데 말입니다. 비는 흔히 눈물로 비유됩니다. 최근 울어본 적 있으세요? 저는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졌습니다. 다음 글은 공연 때문에 울보가 돼 버린 제 이야기입니다. '클럽 발코니' 이번호에 실린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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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조금 이상해졌다. 울보가 됐다. 다른 때는 울지 않는데 공연을 보면서 운다. 물론 예전에도 아주 감동적이거나 슬픈 공연을 만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아주 드문 경우였다. 그런데 요즘은 주책없는 내 눈물이 때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것이다.
시작은 지난달 웨스트엔드 뮤지컬을 취재하기 위해 다녀온 영국 출장길에서였다. 영국에서 제일 처음 본 작품은 ‘미스 사이공’이었다. ‘미스 사이공’은 비극적인 내용 때문에 우는 사람이 많은 작품이긴 하다. 주인공 킴의 비극적인 죽음에 내 눈시울이 뜨거워졌을 즈음, 옆에 앉았던 뮤지컬 평론가 ㅇ씨가 아까부터 눈물을 펑펑 쏟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몸까지 들썩이며 훌쩍거려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미스 사이공’을 여섯 번째 본다면서 아직도 그렇게 슬프세요?”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이가 생겨서 그런가, 킴의 아들만 등장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이때만 해도 옆 사람을 놀려댈 ‘여유(?)’가 있었으니 좀 나았다. 다음에 본 공연은 요즘 웨스트엔드에서 상종가라는 뮤지컬 ‘메리 포핀스’였다. 아주 유쾌하고 즐거운 작품이니 울 구석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도 나는 눈물이 났다. 가족들과 대화하는 데 서투르고, 일이 전부인 줄만 알았던 중년의 아버지가, 직장에서 해고당할 위험에 처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장면에서였다. 처진 어깨의 이 아버지가 참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가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었다. 당황해서 얼른 눈물을 훔쳤다. 마침 혼자 본 게 다행이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휘슬 다운 더 윈드(Whistle down the wind)’에서도 어김없었다. 그 유명한 노래 ‘No Matter What'이 나오는 뮤지컬이다. 탈옥한 죄수를 예수님이라고 오인한 동네 아이들이,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No matter what they tell us), 우리는 당신을 믿어요‘라고 노래한다. 집에서 소중히 안고 온 보물들--가짜 꽃과 소라 껍데기 같은 것들--을 ’자신들의 예수님‘에게 선물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 그런데 왜 나는 여기서 눈물이 나는 거지? 이 공연에 동행한 O씨가 이번에는 나를 놀려댔다.
절정은 뮤지컬 ‘빌리 엘리엇’이었다. 내 눈물샘은 말 그대로 ‘터져버렸다.’ 워낙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었다. 극 초반, 빌리가 오래 전 세상에 떠난 엄마의 편지를 발레 선생님에게 보여주는 장면에서부터 굵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내 ‘눈물 퍼레이드’는 이어졌다. 유쾌한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장면들도 많았건만, 중간 중간 하도 많은 눈물을 흘려서 공연 내내 마르지 않았다. 혼자라서 마음 놓고 울었다.
‘빌리 엘리엇’을 보고 극장을 나서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며칠간 날마다 공연을 보며 울었던 것이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그런데 런던에 와서 본 공연들을 돌이켜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공교롭게도 아이들이 등장했다. 아이들이 등장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이야기가 나올 때, 내 감정의 진폭이 커졌던 것이다. 아이를 집에 두고 혼자 출장 왔으니, 아이 얘기가 더욱 사무쳤나 보다 생각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은 공연을 보며 우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런던에서의 일을 ‘예외적인 우연’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울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던 공연에서, 다시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바로 피아니스트 부닌과 바이에른 챔버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에서였다.
내 젊은 시절의 우상이었던 부닌의 공연을 보기는 1989년 그의 첫 내한공연 이후 처음이었다. 17년 만의 만남이었다. 설렘 속에 부닌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나는 정작 부닌을 마주 대하고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올해 마흔 살인 부닌은 많이 늙었다. 무척 마르고 등이 약간 구부정한 것이, 왜소하고 지쳐 보였다. 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하더니, 외모에서도, 연주에서도, 예전 같은 광채는 느껴지지 않았다.
연주를 끝낸 부닌이, 공손하게 고개 숙여 객석의 갈채에 답례하고, 총총걸음으로 퇴장할 때에야, 내가 아까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황스러웠다. 아이들이 나오는 공연도 아니었고, 슬픈 곡이 연주되지도 않았는데, 왜 또 나는 울고 있는 거지?
나는 이날 내 기억 속의 젊은 부닌을 떠나보냈다. 17년 전의 어린 소녀, 과거의 나에게도 작별을 고했다. 부닌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흐름을 유보했던 17년의 세월이, 거센 파도처럼 나를 휩쓸었다. 부닌이 나이를 먹은 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는 새삼스런 깨달음이 가슴을 쳤다. 아. 세월이여. 그러고 보니 ‘미스 사이공’을 보면서 나보다 훨씬 많이 울던 ㅇ씨가 했던 말이 딱 ‘정답’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아이가 생겨서 그런가.’
며칠 전 인기 뮤지컬 ‘아이 러브 유’를 봤다. ‘슬픈 영화‘라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한 남자가 여자와 최루성 멜로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시시껄렁한 이런 영화는 딱 질색이지만, 그래도 데이트니까 참아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느새 이 남자, 자기도 모르게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질질 흘리고 있다. 당황해서 눈물을 참으려고 온갖 노력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그러다가 ‘자기야, 나는 울 줄 아는 남자가 좋더라.’ 하는 여자 친구의 말에, 안심하고 ‘행복한 표정으로’ 통곡을 한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성인 ‘남자’의 입장을 더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어른이 우는 것은 어린이가 우는 것과는 달리, ‘일상적’이지 않은 일로 받아들여진다. 때로는 나약함과 비정상적인 감정과잉의 표시로 여겨지기도 한다. 나 자신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울어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했었고, 정말 한동안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아이를 키우면서, 예전에 안 하던 경험을 하게 되니, 공감할 일이 많아졌나 보다. 공연을 보고 눈물 흘릴 일도 많아졌나 보다.
공연 보며 눈물 흘리는 것이 쑥스럽고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억지로 참는다고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아이 러브 유’의 남자도 ‘울면 안 된다’는 제약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통곡하면서 행복해 하지 않았나. 평소 생활에서는 거의 울지 않는 나도, 어쩌면 마음껏 눈물 흘릴 수 있는, 일상에서 벗어난 공간을 원해 왔는지도 모른다. 공연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이런 것 아닐까.
이렇게 눈물샘이 터져 버렸으니, 앞으로도 나는 가슴에 깊이 다가오는 공연을 만나면 또 눈물을 쏟을지 모른다. 혹시 나를 아는 분들은, 공연장에서 내가 우는 모습을 발견하더라도, 너무 놀리지 말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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