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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연기로 성인 신고식"

입력 : 2006.07.08 10:43

문근영, 영화 '사랑 따윈 필요없어'서 열연


비를 쭉 들이마신 산길은 옮기는 발걸음마다 힘을 잔뜩 주게 만들었다.

도로에서 촬영장이 제법 높이 자리한 까닭에 화장실을 한번 다녀오려해도 이 미끄러운 길을 왕복해야했다.

하지만 꽃다운 '국민 여동생' 문근영마저 뾰족한 수 없이 이 길을 오가는 모습에 불평은 쑥 집어넣어야 했다.

여전히 앳되고 귀여운 얼굴이긴 하지만 올해 대학에 입학하면서 전체적으로 부쩍 성숙해진 느낌이 나는 문근영은 며칠째 이 산길을 오가며 촬영하고 있었다. 

7일 오후 강원도 원주 치악산의 한 자락.

문근영(20), 김주혁(35) 주연의 영화 '사랑 따윈 필요없어'(감독 이철하, 제작 싸이더스FNH·판커뮤니케이션·우리영화)의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산길 위에 위치한 폐천로변에서 문근영은 김주혁을  앞에 두고 비교적 격한, 울부짖는 연기를 펼쳤다.

데뷔 후 처음으로 펼치는 연기인 까닭에 그는 평소보다 한층 긴장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사랑스러운  아우라는 여전히 빛을 발했다.   

문근영이 성인으로서 처음으로 찍는 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는 '사랑 따윈 필요없어'는 동명의 일본 인기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멜로영화.

각기 다른 이유  때문이지만 사랑을 믿지 않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문근영의 역할은 눈이 보이지 않는 대부호의 상속녀 류민.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어려서 엄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 역시 사망하면서 고아가 됐다.

또 죽은 줄 알았던 오빠가 15년 만에 찾아오지만 시력을 잃어 알아볼 길도 없다. 

상대 역 김주혁은 그런 류민의 유산을 가로채려는 냉정한 남자 줄리앙으로 등장한다.

고급 클럽의 잘 나가는 호스트였지만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은 그는 우연한 기회에 류민의 상속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가짜 오빠 행세를 하고 나선다.    

'시월애'의 조감독을 거쳐 CF와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온 이철하 감독의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

감독의 표현에 따르면 "비주얼의 폭포"를 선사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촬영을 진행해왔다.

8월 초까지 촬영을 마친 후 10월 개봉 예정이다.   

이날 촬영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는 문근영, 김주혁, 이철하 감독과 영화 속에서 악역을 맡은 배우 이기영이 참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원작이 있는 영화다.

제목도 그래도 썼는데 부담감은 없나.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됐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제목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사랑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서는 제목을 버릴 수 없었다.

전형적인 멜로영화는 안될 것 같다.

멜로의 전형을 좀 비튼, 매력적인 영화로 만들겠다.

원작이 훌륭하기 때문에 중요한 장면은 그대로 많이 따왔다.

극장에서 봐도 좋겠다는 시퀀스는 그대로 살렸다.(이철하 감독, 이하 이)    

--여러가지 설정이 너무 통속적이다.    

▲2시간 분량의 10부작 드라마를 영화로 만들어내는 데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물론 맹인, 호스트, 부잣집 등의 설정이 통속적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을 살리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영화로 만들었을 때 보고 이해할 수 있으면 될 것 같다.

영화로선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다.(이)    

--원작 드라마를 봤나.

▲원작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일부러 안 보려고도 했다.

부분적으로만 봤다.

어차피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은 아니지 않나.

봐도 고민, 안 봐도 고민인 것 같다.

안 봤을 경우에는 참고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큰 장점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김주혁, 이하 김)    

▲원작 드라마를 다 봤다.(문근영, 이하 문)    

--이제까지 보여준 캐릭터와 많이 다르다.

특히 시각장애인 연기가  어려울  것 같다.

▲처음에는 이렇게 차갑고 어두운 역할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겉으로 보여지는 게 발랄하고 밝아서 그렇지, 속으로는 그만큼 아픔도 있고 고민도 있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번 캐릭터가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고 조금 더 편하게 마음 먹고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중 캐릭터만큼 내가 예민하거나 날카롭지도 않고 또 실제로 큰 아픔을 갖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다.

캐릭터가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어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할까 고민했다.

또 실제로는 보이는데 안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려니 힘들기는 하다.

하지만  감독님과 선배님들이 도와주시고 나름대로 연습도 많이 하고 있다.(문)    

--연기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

▲모델 학원에 가서 자세 교정을 받았다.

또 호스트 일을 하는 분을 직접 만나 얘기도 들었다.

그런데 뭔가 대단한 얘기를 해줄 줄 알았는데 없더라.

한 가지 '매너'를 강조할 뿐이었다.

사실 외모가 그렇게 출중하지는 않은 사람이었는데도 그 분은 자기가 꼬셔서 안 넘어온 여자가 없다고 했다.(김)    

▲시각장애인 학교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수업하는 모습도 봤다.

그 친구들은 소리나 냄새에 무척 민감하다.

특히 어린 친구일수록 냄새에 민감했다. 

또  익숙한 공간에서는 지팡이 없이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에 놀랐다.

머리 속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모양이었다.

계단도 막 뛰어다니더라.(문)    

--영화 속에서 두 배우의 어떤 점을 끌어내려 하는가.

▲영화를 준비하면서 남녀 주인공은 문근영 씨와 김주혁 씨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근영 씨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백지와 같다.

이 배우가 보여주지 않은 부분은 백지다.

그게 영화 속에서 제대로 적중했다.

영화를 보시면 근영 씨의 새로운 모습에 아마 깜짝 놀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근영 씨가 사랑받아온 장점 역시 그대로 살렸다. 

주혁씨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착하고 귀공자 같은 이미지의 역할을 주로 맡았는데, 아직은 미지의 공간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이)    

--옆에서 지켜볼 때 두 배우는 어떤가.

▲두 사람 모두 굉장히 치밀하고 차분하며, 준비를 많이 하는  타입이다.  이런 분위기의 친구들이 나중에 좋은 배우가 되더라.

또 이런 친구들이 연기하면 항상 그 배역과 딱 맞아 보인다.(이기영)    

--같은 소속사(나무엑터스)에서 서로를 오랫동안 지켜봤을 텐데 이렇게  공연하게 되니 소감이 어떤가.

▲근영이가 중2 때 처음 봤는데 "아이고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같이  연기하게 됐다.

근영이를 보고 있으면 내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을 갖는다.

내가 지금 30대이긴 하지만 마음은 20대 초반 아니겠나.

그래서 함께 연기하는 것은 전혀 부담이 없다.

다만 근영이 팬들한테 미움을 받을까 걱정이다.

요즘 포털 사이트 무섭다.(김)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이고 선배이고 오빠다.

같이 연기한다고 해서 좋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그런데 막상 함께 하니 참 편하게 해줘서 무척 즐겁다.

같이 연기하게 된 게 내겐 행운인 것 같다.(문)    

--어른이 된 후 첫 작품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어른이 됐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한다.

그런 생각보다는 그저 오랜만에 관객을 만나게 되는 작품인 것 같아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다.(문)    

--'국민 여동생'이라는 칭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제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때가 되면 바꿔주시지 않겠나(웃음).

지금은 그렇게  불러주고  생각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문)    

--이 영화의 매력은 뭔가.

▲이 영화는 멜로영화다.

하지만 다른 멜로영화와 차이점을 두자면 조금은 긴장하면서 보지 않을까 싶다.

또 근영이가 성인이 된 후 첫 작품 아닌가(웃음).(김)    

▲눈으로 볼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리고 있다.

눈  감고  마음으로 봐야 하는 것들을 그린다.

그런 진실된 것을 찾으러 관객이 보러 오시길 바란다.

감춰져 있는 뭔가를 찾을 수 있는 영화다.(문)

(원주=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