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뉴스

뉴스 > 생활·문화

[성한표 뉴스비평] 미디어가 만든 월드컵 열풍

입력 : 2006.06.17 14:00|수정 : 2006.07.15 11:12

동영상

SBS 뉴스에는 '진실의 창'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붙어 있습니다. 현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담은 표현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현실은 실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현실인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텔레비전 뉴스를 휩쓸고 있는 월드컵 열풍이 그렇습니다. 이 바람은 실제 현실의 재현이라기보다는 신문과 텔레비전이 만들어 낸 화면 속의 태풍입니다.

월드컵 보도에 대한 방송사들의 과열 경쟁은 “해도 너무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SBS 저녁 8시뉴스는 지난 13일 저녁 10시에 시작된 한국과 토고와의 경기와 관련된 보도에 경기 시작 직전인 13일과 경기 하루가 지난 14일 이틀에 걸쳐 대부분의 뉴스시간을 바쳤습니다. 14일 8시뉴스는 “보고 또 봐도 극적인 역전승이었죠.”라는 말로 시작되었습니다. 토고와의 경기에서 우리가 이긴 뒤부터 다음날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켜면 역전승 하는 장면이 나오니 보고 또 볼 수밖에 없었던 시청자들에게 이날 뉴스는 이미 ‘뉴스’가 아니었습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서부 아프리카에 있는 토고는 인구가 560만, 1인당 GDP는 350달러인 매우 가난하고 작은 나라입니다. 피파 랭킹을 비교해도 올 5월 기준으로 우리는 29위이며, 토고는 61위입니다. 우리 선수들의 평가전 성적이 좋지 않아 토고 전도 가슴을 졸이며 응원했던 우리에게 승리가 달콤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토고 전 승리에 대한 뉴스의 의미부여는 지나쳤습니다. 뉴스가 내세운 토고 전 승리의 의미는 외국에서 싸운 월드컵 본선경기로서는 첫 승리라는 것이었습니다. 4년 전 우리가 4강까지 올랐던 한일 월드컵이 없었다면 흥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토고 전 승리 정도는 이미 우리에게 큰 사건이 아니라야 합니다.

SBS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한 시청자의 글은 “어떻게 한 시간 내내 축구 뉴스만 봅니까? 우리나라 하루 종일 축구만 한 게 아니잖아요?”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6월에는 한국이 16강, 8강, 4강으로 올라가고, 길거리 응원 군중들이 서울 도심에 가득 차면서 월드컵 뉴스의 비중도 점차 커졌습니다. 실제 현실의 흐름과 조화를 이룬 뉴스였던 것입니다.

월드컵 뉴스시간을 늘이다보니 같은 화면, 비슷한 기사들이 되풀이되기도 하고, 견강부회, 자화자찬으로 흐른, 뉴스 아닌 뉴스들이 많았습니다. 현장성을 과시하려는, 화면과 텍스트가 일치하지 않는 편집도 눈에 띄었습니다. 아드보카트호의 비장의 무기라는 세트플레이는 경기 전 12일과 13일, 이틀에 걸쳐 SBS 8시뉴스에 나왔습니다. 승리자의 너그러움 속에 모든 것이 미화되기도 했습니다. 14일 뉴스는 프리킥을 성공시킨 이천수의 동점골이 세트플레이 덕이라는 오버까지 했습니다.

뉴스는 또 우리 선수들에 대한 조언이 꼭 들어맞았다면서 히딩크를 치켜세웠지만, 그가 조언했다는 후반전까지의 체력유지와 압박축구는 그만의 특별한 조언이라고 할만한 것이 아닙니다. 13일 뉴스는 황선홍 해설위원이 가장 강조한 것이 선수들의 마음가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것은 선배로서의 당부의 말은 될 수 있어도 해설자의 해설이라기에는 너무 일반적입니다.

12일 SBS 뉴스는 한국 대표팀이 쾰른 베이스캠프를 떠나 경기가 열릴 프랑크푸르트의 쉐라톤 그랜드 호텔에 도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화면은 영국을 떠나 쾰른의 슐로스 벤스베르크 호텔에 도착한 것을 보도한 지난 7일 뉴스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화면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기위해 좀 더 고민했어야 합니다. 

방송의 월드컵 올인에 대한 사회적 비난에는 세계에 유례를 찾기가 어려운 지상파 방송사들의 공동 중계에다 되풀이되는 재방송에 지친 시청자들이 뉴스에서만은 일상의 냉엄한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주었으면 하는 요구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15일 뉴스는 월드컵과 일반뉴스 사이에 모처럼 균형이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주요 주제들을 한 꼭지씩의 기사로 건드리고 넘어갔을 뿐 파고드는 기사가 없었습니다.

한미 FTA 협상이 물밑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우리가 이미 줄 건 다 줬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으며, 주한미군 이전 예정지역인 평택 대추리 문제를 새롭게 제기하는 문정현 신부의 청와대 앞 단식농성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KTX 승무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시각장애인들의 처절한 싸움도 뉴스가 외면하고 있습니다. 5.31 지방선거 참패이후 정부 여당이 갈등을 보이고 있는 부동산 정책의 행방도, 증시 폭락으로 드러나는 경기 침체의 심각성도 뉴스가 끈질기게 추적해야 할 주제들입니다. 16강 진출에 온 국민이 목을 매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미디어가 만들어 낸 현실은 이와 같이 실제와는 동떨어져 있습니다.

기업으로서 생존하고 성장해야 하는 방송사가 광고수입과 시청률에 매달리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극단적으로 흐르면, 단기적인 소득을 얻는 대신 신뢰를 상실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더 큰 것을 잃게 됩니다. 적어도 메인뉴스만은 정치 경제 사회의 주요 흐름에 초점을 맞추기를 권고합니다. 16강 진출이 우리의 삶에 진정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뉴스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