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 기자 간담회
[박근혜 대표, 중앙지+인터넷언론 오찬 간담회]
기자와 당직자 등 약 60~70명 모임.
-피습 당시 상황 어땠나?
= 토요일이라 카메라 드신 분이 많이 없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사진 찍으시는 기자분들이 많이 계셔서 플래시도 좀 터지고 그랬으면 사고를 낼 엄두가 안 났을 텐데 하는 얘기를 하더라. 그날따라 오전 중으로 다 철수를 하셨던 것 같다.
-오늘 월드컵 경기는 어디서 보나.
= 바깥은 아직 조심스러워서, 집에서 볼 생각이다. 소리를 지를 수도 없으니. 어제 보니 히딩크 감독은 정말 잘 하는 듯 하다. 중간에 바꿨던 선수들이 다 골을 넣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담스러울 것도 같다. 2002년 때는 정말 온 국민이 감격을 이기지 못했었는데. 16강만 가도 좋겠다고 하다가 4강 간 것 아니냐.
대표팀이 잘 하기도 했지만 광화문 응원도 길이 남을 일 같다. 그렇게 많은 인원들이 서로서로 연결돼 함께 응원을 한 적이 없었다. 젊은 세대냐 아니냐가 2002년 월드컵때 함께 열광했는지 아닌지로 나눠진다고도 하더라.
당시 응원을 보면서 외국에서 한국사람을 다이나믹하다고 하는가 생각했다. 어찌보면 과도하다 싶을 만큼 다이나믹한 모습을 보여줬다.
- 회복은.
= 처음에는 미음도 빨대로 먹었는데 이제는 딱딱한 것 빼곤 모두 잘 먹는다. 테이프는 어느 정도 붙이고 다녀야할 것 같다. 보기에도 그렇고, 보호할 필요도 있고 해서 의료진들과 상담하겠지만 상당 기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 퇴임 후 일정은.
=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도 몸을 추스려야 할 형편이었다.
- 외국을 다닌다거나 하는 일정은.
= 어디 다닐 수 있겠냐. 아직 환자인데. 삼성동에서 쉬면서, 곧 국회가 열리니깐 국회의원 활동을 해야 한다.
- 지방선거에서 전북에서 7% 지지 얻은 것도 성과라면 성과인데?
= 호남을 방문했을 때 다들 따듯하게 맞아주셨다. 전북에서 지지를 받은 것뿐 아니라 서울에 계시는 호남 분들도 호응을 많이 해 주셨다.
- 6.15 때 광주 방문 계획?
= 가려면 여러 가지로 무리를 해야 해서 불가능할 것 같다.
- 박 대표가 DJ와 화해해야 집권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 김 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찾아뵈려고 했다. 호남은 내가 대표가 되고 가장 많이 간 곳 중 하나다. 정책 투어 때도 빠지지 않고 갔다. 이런 식으로 진실된 마음으로 꾸준히 찾아가고 그 분들의 숙원 사업이나 어려운 일들을 도와드리려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그 분들의 마음도 열릴 것으로 본다. 그러나 갑자기 누구를 마나고 어쩌구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퇴임 후에도 기회가 되면 호남을 찾겠다.
- 김근태 의장이 취임 일성으로 성장 우선을 주장했다.
= 한나라당이 그간 많이 주장해 왔던 바다.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 처음으로 노는데 계획은.
= 아유, 놀기는요. 재충전이지요. 그간 쉴 새 없이 다녀서 우선 건강을 좀 챙겨야 겠다.
-언제쯤 재충전이 끝날까.
= 여러분들이 보고 싶다고 그러시면 나올게요.
-재보궐 때 유세할 계획.
= 아직 앞으로의 일이니깐요...
-국회의원 박근혜로 돌아가면, 상임위 신청은.
= 행자위로 했다. 국방도 해 보고 과기정도 해 봤으니 행자도 한 번 해 보고 싶었다. 2,3지망은 안 썼다. 행자위가 그렇게 인기 상임위가 아니니.
-사립학교법 재개정은?
= 승계할 대표가 꼭 마무리를 지어서 해 내야 한다. 국민 앞에 한 약속인데.
- 퇴원 직후 대전으로 가서 기자들이 좀 당황했다.
= 내 책임이 막중하지 않냐. 선거 초반에 사고를 당해 퇴원할 때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 다른 당원들에게 편지를 써서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는데 나라고 집으로 갈 수는 없었다.
-피습사건 이후 지지율이 많이 올랐다.
= 선거란 것이 끝까지 뚜껑을 열어봐야 한다. 열어보기까지 지지율이란 것 모르지 않나.
-퇴임 후에 임기를 끝낸 지자체장들을 만날 계획 있는지.
= 16일로 다 마감하는 것으로 하겠다.
-임기 중 가장 힘들었던 기억,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
= 4.15 총선 때가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점점 지지가 높아져 갈 때 보람을 느겼다.
- 박 대표 체제가 들어서고 한나라당이 정책 정당을 지향했던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 우리는 매니페스토를 진작부터 실천해 왔다. 야당이다 보니 표가 모자라고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과 손을 잡고 사학법도 통과시키는데 우리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국회가 파행되는 것이 한계였다. 집권도 못한 데다가 소수당이다 보니 우리가 한 정책 약속을 40%밖에 못 지켰다. 나머지 60%는 여당이 통과시켜 주지 않으니 못한 것이었다. 우리가 이러이러한 것을 하겠다고 해도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 야당에서 해 봤자 통과되지 않을 것이고 행정력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국민연금같은 것도 기초연금제는 한나라당이 제안한 것인데 유시민 장관이 이러저러 하겠다고 하니 이제야 한나라당이 그런것도 하는 구나 하는 식이다.
한나라당 정책은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막 해보라고 해서 했더니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우리도 정책하라고 해서 했더니 언론이 써 주질 않는다. 집권당이 내 놓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행정력이 있으니. 다만, 한나라당은 평가 받을 위치에 있지 못하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지충호씨에 대한...
= 수사를 지켜보는 입장이다. 수사가 확실히 잘 돼야 앞으로도 재발을 방지할 수 있지 않냐.
- 병상에서 '대전은요' 걱정부터 한 것, 사실인가.
= 있는 그대로다. 피습 당하고 병실에 실려가서 누워있는데 선거 초반에 병실에 눕게 됐으니 수습을 어떻게 할까, 어떻게 선거를 잘 치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았다. 흔들림 없이 선거를 치러달라는 부탁이었다.
- 퇴임 이후 잠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
= 나는 국회의원이고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할 생각이니 잠수나 잠행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2004년 탄핵 직후 총선을 치르고 이번에 전국 선거를 하면서 그 과정에서 한 번도 쉬지를 못하고 무리를 했다. 몸을 추스르고 재충전할 필요가 있다. 다음 일은 추후에 생각해 보겠다. 새 계획 있다면 여러분들에게도 알려드려야지 내가 혼자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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