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짧아서 더욱 찬란한 봄이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지난주 피아니스트 부닌과 바이에른 챔버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에 다녀온 뒤 한동안 묘한 감상에 사로잡혀 지냈습니다.
저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럴 때면 '내가 나이를 먹기는 먹었나 보다' 생각하게 됩니다.
제 블로그(https://ublog.sbs.co.kr/shkim0423) 에도 올렸던, 약간은 쑥스러운 글입니다.

스타니슬라브 부닌
1985년 쇼팽 콩쿠르에서 사상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고 전 세계 피아노 음악도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천재 피아니스트. 그는 한 때 나에게도 우상이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접했던 부닌의 쇼팽 콩쿠르 연주 실황은 마치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내 영혼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나보다 불과 몇 살 더 많을 뿐이었지만, 내가 '지상에서' 그렇고 그런 수험생의 일과를 반복하고 있을 때, 부닌은 벌써 저만큼 내 위에 있었다. 그의 음반들을 끼고 살았다. 거침없고 자유로운 그의 연주를 들으며 나는 잠시나마 해방감을 만끽하곤 했다.
부닌은 1989년 2월,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그의 첫 내한공연이 열렸던 세종문화회관. 표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신문에서는 소녀 팬들의 열광을 대서특필했다. 그 중에 나도 있었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지만, 부닌의 연주를 눈앞에서 본다는 기쁨에 나는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그의 연주는 압도적이었다. 넘치는 젊음과 패기! 자유와 낭만! 나는 내내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도 나는 한동안 객석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느릿느릿 걸어 나와서,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함께 공연을 보러 갔던 동생과는,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아, 우리는 벅찬 감동이 깨질까 봐, 버스 유리창 밖으로 흘러가는 서울의 야경을 꿈꾸듯 멍하니 바라보며 그저 앉아 있었다. 부닌의 손가락에서 미끄러져 나오던 음표들이 머릿속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 재수 끝에 대학을 들어갔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남자를 만나고,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낳았다. 그러는 동안, 한 때 내 영혼을 사로잡았던 부닌이라는 이름도 아스라이 기억 속에 가라앉았다.
사는 게 바빠서였을까. 한 때 그렇게 많이 들었던 부닌의 음반들을, 이상하게도 10년 넘게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부닌은 1989년 이후에도 몇 차례 한국을 다녀갔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공연을 다시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가끔 학창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부닌이라는 이름은, 내 기억 밑바닥에서 생각의 수면 위로 다시 부상하곤 했다.
지난주 바이에른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부닌의 공연은, 그래서 나로서는 17년 만에 다시 부닌을 만나는 자리였다. 동행도 없이 혼자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로 달려갔다. 객석에 앉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부닌의 활동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문에 일말의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래도 부닌은 부닌이니까. 나는 오케스트라의 첫 곡 연주가 어서 끝나고 부닌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부닌이 처음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불안감이 현실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거침없이 자유롭고 당당해 보이던 젊은이는 어디로 갔나. 부닌은 나이보다도 늙어 보였다. 약간 구부정한 허리에, 빼빼 마르고, 까탈 많고 예민해 보이는 표정에서는 피로가 묻어났다. 17년은, 정말로 긴 세월이었구나.
연주곡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3번이었다. 부닌은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손을 바지자락에 문지르고, 페달을 밟을 때 필요 이상으로 발을 쿵쿵거리며 큰 소리를 냈다.악장 사이에는 반드시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는 힘들어 보였다. 지속되는 음을 치는데도 손가락에 여러 차례 힘을 주며 건반을 눌러대는 모습이 어색하고 생경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부닌의 모차르트에서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섬세하고 영롱한, 모차르트 음악 특유의 색깔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그는 마치 시험 보는 학생처럼 여유가 없었다. 듣기만 해도 눈물이 뚝 떨어질 것만 같은 2악장의 그 유명한 선율이 왜 이렇게 뭉툭하게 느껴지는지. 그의 음악에는 예전 같은 광채가 없었다.
관객들 중에는 나처럼 부닌의 명성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듯 했다. 평소에는 비어있는 합창석이 가득 찬 모습이, 이 공연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을 보여줬다. 부닌은 연주를 마치고 몇 차례 커튼콜 끝에 앙코르 곡으로 쇼팽의 마주르카 중 한 곡을 들려줬다. 확실히 모차르트를 연주할 때보다는 쇼팽을 할 때가 나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내 성에 차는 연주는 아니었다.
17년 동안,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부닌은 일본 여성과 결혼하고,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한 때 당뇨병인가로 건강이 안 좋았다던데,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는 걸까. 객석을 향해 공손하게 답례하는 부닌의 모습은 무척 왜소해 보였다. 박수가 계속되자 그는 피아노 뚜껑을 아예 닫고 퇴장했다. 나는 그 모습에 미소를 떠올리면서도 가슴이 아팠다.
젊은 시절의 그 당당하던 카리스마는 어디로 갔을까. 어릴 때 두각을 나타냈다가도 나이를 먹으면서 빛을 못 보는 불운한 음악가들이 많은데, 부닌도 결국 그들 중 한 명인 것일까. 젊은 나이에 올랐던 정상의 자리가 버거웠을까. 그는 긴 방황을 하고 있는 중일까.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는 중일까.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건, 단지 내 기대가 너무나 컸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내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희망과 절망, 기대와 불안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던 내 10대의 끝자락을 함께 했던 부닌. 그러나 이제 세월의 흔적이 뚜렷한 모습으로 돌아온 부닌. 나는 조용히 내 기억 속의 젊은 부닌을 떠나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17년 전의 어린 소녀, 과거의 나에게도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부닌'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흐름을 유보했던 17년의 세월이 거센 파도가 되어 나를 휩쓸고 있었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 같이 시들어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라는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 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중략)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피천득의 수필 '인연'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부닌이 또다시 한국에서 공연한다면, 나는 그를 다시 보게 될까. 삶과 음악의 무게와 씨름하느라 쳐져버렸을지 모르는 그의 왜소한 어깨를, 이제는 담담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빛나던 천재의 광채를 떠올리지 않고서도, 그의 음악을 지금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 즐길 수 있을까. 아아, '세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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