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6.영국
1. 서쪽 계단(West Stairs) 좌측 벽면 2-1 ◆카르타고 대저택 출토 작품 1 |
우측벽면에 전시된 작품을 보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계단 좌측 벽에 충분히 놀라도 될 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대작이 펼쳐진다. 역시 북아프리카 작품이다. B.C 2-5c 북아프리카는 절정의 번영을 누렸다. 로마제국의 유럽쪽 영토가 이민족의 침략이나 황제(皇帝)자리를 놓고 다투는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시달리던 그래서, 쇠퇴해 가던 것과 달리 북아프리카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정세 속에 무역과 농업등을 발전시켜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넉넉했다. "광에서 인심 나는 법" 먹고 살기 든든해야 남도 도와주고 문화도 생각하게 마련이다. 동서고금에 예외가 없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모자이크는 전형적인 예다.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제국 3대 도시로 번영한 카르타고는 모자이크 예술이 활짝 폈다. 북아프리카 기법은 이런 배경 속에 B.C 2-3c 생겨난 모자이크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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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계단 좌측 벽면 모자이크 전경. 375년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 건축한 대저택의 바닥을 장식하던 모자이크다. 작품이름은 [계절과 달의 여신(Figures of months & Seasons)]. 원래 8.4㎡ 넓이의 대작인데, 부분 부분 훼손된 곳을 제외하고 남은 부분을 모아놨다. 계단을 지나는 관광객과 비교해 모자이크의 크기를 짐작해 볼 수 있다.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계단 좌측 벽에 걸린 이 모자이크는 375년 그러니까 천 7백년 전 쯤 카르타고에 지은 부유층 대저택의 바닥을 장식하던 작품이다. 제목은 [계절과 달의 여신(Figures of months & Seasons)]. 각 계절과 1년 12달의 각 달을 여인 모습으로 그려냈다. 많은 부분이 훼손돼 전체를 다 볼 수는 없지만, 면적이 2평 반을 넘어 8.4㎡나 되는 꽤 큰 대작의 면모를 살펴보는데 부족함은 없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영향, 즉 이집트 전래의 여신 [이시스] 신앙을 들여다 볼수 있는 내용과 7월의 여신, 여름의 여신, 11월의 여신등을 접할 수 있다. 해양도시 답게 바다를 상징하는 돌고래와 지중해 주변에 널리 자생하는 아칸투스잎, 기하학 무늬도 담았다. 아칸투스 잎은? 그리스 로마 신전 양식 가운데 가장 화려한 코린트 양식의 기둥머리(Capital)를 만들 때 장식용으로 잎사귀로 원용(援用)된 것이어서 눈여겨 볼만 하다. 아칸투스의 무성한 잎은 풍요와 번영을 상징해 모자이크 뿐 아니라 기타 프레스코 장식에도 많이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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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과 여름이 여신. 무성한 아칸투스 잎 사이로 왼쪽 위에 7월의 여신, 오른쪽 아래 원속에 여름의 여신이 자리한다.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앞서 카르타고라는 나라에 대해 훑어봤으니 이제 카르타고를 멸망으로 이끈 포에니 전쟁(Punic war)에 대해 들여다 본다. 포에니 전쟁은 모두 3차례 발생했다. 실질적으로는 1,2차고 3차는 우열이 가려진 뒤 카르타고의 최종 멸망을 노린 전쟁이었기 때문에 카르타고와 로마의 자웅을 겨룬 전쟁은 1, 2차전 이었다고 보면 된다. 하마터면 전쟁 결과에 따라 로마제국이 아니라 카르타고 제국이 될 뻔했던 지중해 주변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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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여신. 보통 여름의 여신은 밀이삭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르다. 옥수수다. 노랗게 잘 익은 옥수수를 머리에 수북이 얹어 놓은 여신은 커다란 귀걸이와 목걸이로 장식한 빼어난 미인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헬레니즘권 미인의 분위기와 좀 다르다. 금발도 아니고, 눈썹도 짙고, 검은 눈동자에 코가 길쭉하게 높다. 오리엔트와 북아프리카 주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1차 포에니 전쟁은 시칠리아에서 시작됐다. 오늘날 시칠리아가 이탈리아 영토이므로 당연히 시칠리아가 고대부터 로마의 영토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시칠리아는 로마인과는 다른 선주민이 살았고, 8c 이후 카르타고인들이 뒤이어 그리스인들이 들어와 개척했다. 로마는 아직 요람에서 태어거나 걸음마 단계에 머문 라티움 지방의 소국이던 시절이다. B.C 264년. 그리스인이 개척한 시칠리아 최고의 문명국 시라쿠사는 카르타고와 손잡고, 시칠리아에 와있던 이탈리아인들을 공격한다. 구원 요청을 받은 라티움 지방의 로마는 카르타고, 시라쿠사 같은 강국들과 전쟁을 벌이는게 부담됐지만, 민회의 결의로 카르타고와 결전을 벌이게 된다. 이때 시라쿠사의 히에론 2세가 카르타고를 배반하고 로마편에 가세하면서 카르타고가 차지하고 있던 아그리젠토를 로마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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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여신.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망사형 옷을 걸친 7월의 여신은 손에 초여름 과일인 뽕나무 열매, 오디(Mulberry)를 들었다.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이어 B.C 241년까지 무려 23년간 로마와 카르타고는 시칠리아와 북아프리카를 무대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해전(海戰)이 승패를 갈랐는데... 지중해에서 B.C 5c 이후 그리스 해군은 페르시아와의 전쟁당시 배를 젓는 노를 3줄로 설치한 3단 노선(三段櫓船)을 만들어 기동력을 살리고 전투력을 강화했다. 이 무렵 서지중해의 강자로 떠오른 카르타고는 적의 배를 들이받아 파괴해 침몰시키는 충각(衝角)장치를 배 앞머리에 달고 강력해군을 일궜다. 뒤늦게 지중해 왕자 경쟁에 뛰어든 로마는 달랐다. 적의 함선 위에 기어올라 선상에서 육군식의 접전으로 적을 무찌르는 전법을 택했다. 이를 위해 적의 배에 쉽게 올라타기 위한 장치 '꼬르부스'(Corbus, 일명 '까마귀')라는 접교(接橋) 장치를 배의 돛에 달았다. 조교(弔橋, 적교라는 발음은 잘못 된 것)라고도 한다. 조교를 돛에 달아두었다가 전투시 적의 배에 연결한 뒤 전투원들이 적의 배로 올라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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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모(Lozenge)와 이중 가죽 방패(Double Pelta). 이런 모양의 펠타(가죽 방패는 그리스 북방 트라키아 지방에서 사용한 것으로 중부 유럽과 중앙 아시아 기마민족 스키타이족이 기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이런 신기술로 무장한 로마군이 카르타고 해군을 무찌르고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본토에 상륙했지만, 스파르타 출신의 카르타고 용병대장 크산티포스의 빼어난 지휘에 막혀 집정관 레굴루스가 사로잡히는등 쉽게 승부를 내지 못했다. B.C 247년에는 카르타고의 하밀카르 바르카스가 나서 로마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지만, 마침내 B.C 241년 로마에 패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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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여인. 이집트가 기원인 여신 이시스를 기리는 신전의 여신관 복장을 하고 있다. 생기새가 역시 북아프리카 적이다. 여신은 악기 시스트룸(Systrum)을 손에 들었다. 시스트룸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타악기다. 방울을 달아 흔들어서 발울 소리를 낸다. 신전에서 스는 악기인 만큼 주술(呪術)적인 성격이 강했을 것이다. 주술행사에는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에 방울이 많이 사용된다.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카르타고는 막대한 배상금을 물고, 밀을 생산하는 비옥한 곡창이자 지중해 한가운데의 전진기지 시칠리아를 로마에 넘겨 차츰 국력이 기울었다. 거꾸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해외에 처음으로 영토를 소유하면서 지중해 제국으로 뻗어나갈 발판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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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칸투스 잎. 화분에 담아 기른 아칸투스. 그리스 로마의 신전 건축 양식에서 가장 화려한 조각 기법을 보이는 코린트 양식은 바로 이 아칸투스 잎을 응용한 것이다.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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