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6.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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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고대의 삶과 사랑--
6.영국 1)영국 2,3,4,5,6,7,8,9)런던(London)--오늘 이야기 10)배스(Bath) 3.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British Museum) |
1. 서쪽 계단(West Stairs) 우측 벽면
◆카르타고(Carthage) 출토
할리카르나소스에서 출토한 모자이크를 천천히 보고, 계단을 오른쪽으로 돌면 중앙 창문을 지나 오른쪽 벽면에 북아프리카에서 출토한 로마 모자이크가 기다린다. 주로 튀니지 카르타고(Carthage)와 우티카(Utica, 튀니지가 프랑스어를 사용해 프랑스어 우티크, Utique를 썼는데, 앞으로 영어 '우티카'로 표현)에서 발굴해 들여온 모자이크다. 브리티시 뮤지엄 모자이크 가운데는 카르타고 출토 작품이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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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과 크라테르--사슴 두마리가 칼릭스 크라테르(Calyx Crater, 꽃받침형 포도주 단지) 처럼 생긴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을 마시고 있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카르타고는 B.C 8c 이후 서지중해를 누비며 활발한 해상활동으로 번영을 구가했지만, 3차에 걸친 로마와의 전쟁에서 패해 마침내 B.C 146년 완전히 멸망한 나라다. 이후 백 50년간 불모의 땅으로 버려졌다가 로마인의 손에 재건돼 제국내 3대 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오늘날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 북쪽 바닷가에 위치한 카르타고 유적지는 빼어나게 아름다운 경치 속에 비운의 역사를 웅변하듯 외로운 모습으로 바다를 응시할 뿐이다. 찬란하던 문화상을 증언할 유물과 모자이크는? 대부분 파괴됐지만 일부가 살아 남아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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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과 십자무늬를 교차한 무늬. Pattern of overlapping circles. 4-5c 작품.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카르타고에 대해 좀더 자세히 들어다 보자. 신화는 B.C 720년 오리엔트 페니키아(시돈이나 비블로스)에서 온 왕녀 디도(Dido)가 세운 나라로 전한다. 지중해를 무대로 장사하며 돈 많이 벌어들인 해상왕국 페니키아의 분국(分國)인 셈이다. 카르타고라는 이름은 로마인이 붙였고, 페니키아 말로는 콰르트 하다쉬트(신도시)이며, 그리스어로는 칼케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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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톤과 네레이드.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이 바다요정 네레이드를 태우고 바다를 달리는 장면.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본국(本國) 페니키아가 앗시리아에 멸망하면서 지중해 연안 페니키아 문명권의 맹주가 돼 지중해 특히 서(西)지중해의 패자로 세를 떨치기 시작했다. 로마가 아직 라티움 지방의 유약한 소국으로 머물러 있던 B.C 6c 카르타고는 곡창 시칠리아를 장악하고, 코르시카, 사르디니아 섬은 물론 이베리아 반도까지 손에 넣었다. 또 아프리카 북서부와 대서양 연안에도 식민도시를 건설하거나 무역거점을 만들었다. 특히, 청동기 제조에 필수적인 주석을 구하기 위해 영국땅까지 무역의 범위를 확대했고, 대서양 서아프리카로도 손을 뻗쳐 많은 황금과 상아를 가져왔다.
육상무역도 그렇지만, 특히 해상 무역은 과학 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양을 가로지를 수 있는 견고한 배를 만들 기술, 여기다 계절 따라 바뀌는 바람의 변화를 이용할 줄 아는 것은 물론 별자리나 지형 지물을 헤아려 동서남북의 위치를 정확히 측정해내는 측량, 항해술이 절대적인 조건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지중해 주변 문명권 사람들은 대양을 가로지르는 항해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유물은 말해준다. 15c 말 이후 포르투칼이나 스페인 항해자들이 대서양으로 나가기 시작한 것에 비하면 카르타고인들은 2천여년을 앞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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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톤과 네레이드. 트리톤은 반인반어다. 상반신은 사람이지만 하반신은 물고기나 각종 바다동물로 그려진다. 아버지 포세이돈이 행차할 때 호종하거나 연인 네레이드와 데이트 하는 장면이 많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카르타고의 지정학적 위치도 절묘하다. 동서 지중해의 중간 지점이자 남북으로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최단 거리에 위치한다. 오늘날 같은 정밀한 측량의 지도가 있었을 것도 아닌데 정확하게 어떻게 지중해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천혜의 항구적인 조건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또하나, 카르타고가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후와 토지조건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기후가 좋고 토질이 비옥해 주요 농산물의 생산기지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지중해 패자로 올라서면서 전쟁도 여러 차례 치렀다. 뒤늦게 시칠리아에 나타난 그리스인과 약 3세기에 걸쳐 운명을 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러나, 둘 다 결국 로마에 패해 시칠리아에 대한 지배권을 잃고 말지만... 이후, 카르타고는 시칠리아 뿐 아니라 지중해 각지의 식민 개척지를 모두 잃고 마침내 북아프리카 본국 마저 로마의 손에 철저히 유린 당한 뒤 역사에서 흔적도 없이 종적을 감췄다.
◆우티카 출토
튀니지의 고대 로마도시 우티카에서 출토한 작품이다. 고기잡이 장면으로 특히 북아프리카에서 많이 사용한 소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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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잡이--각종 생선이 가득한 바다에서 2명의 어부가 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는 장면이다. 3-4c.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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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 무늬. 3c 작품.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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