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은 감독의 데뷔작 [도마뱀]은 현실의 두 연인 조승우, 강혜정이 출연한다고 해서 제작 전부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만 출연해도 배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이른바 관객파워가 막강한 두 배우가 나란히 출연하기 때문이고, 두 배우가 또 실제
이 영화는 영화사 아침의 창립작이기도 한데, [왕의 남자]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제작사 [시네월드]의 이사였던 정승혜 씨가 차린 영화사입니다. 정 대표는 충무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다재다능한 영화 카피라이터이자 마케팅 전문가입니다. 처음에 감독 이름만 보고 ‘제작사 대표도 여성이고 감독도 여성이네…….아주 쎈(?) 여성영화가 나오겠구먼…….’하고 생각했다가 감독이 남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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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청한 봄날 아버지 자전거 짐받이에 몸을 싣고 소양강 처녀를 따라 부르며 등교하던 조강 앞에 노란 우비를 입은 깜찍한 소녀 아리가 스쳐지나갑니다. 공교롭게 같은 반 짝이 되어 조강과 아리는 서로 친구가 되는데 부모도 없고 산속 암자에서 스님과 단 둘이 사는 아리는 예쁜 도마뱀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자기는 외계인인데 지구인들이 자기 몸에 손을 대면 다치기 때문에 보호용으로 우비를 입고 다닌다고 엉뚱한 말을 늘어놓습니다. 순진한 조강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습니다. 갑자기 소나기를 만난 날 조강은 심한 홍역을 앓고 아리는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이후 조강은 서울로 이사를 가고 10여 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됐는데 뜬금없이 아리에게서 연락이 오고 조강은 설레는 마음으로 아리가 있는 시골 암자로 내려가 방학 동안 같이 공부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쌓아 나갑니다. 하지만 아리는 여전히 미국 귀신과 노닐며 영어를 배웠다는 등, 은행원과 결혼해서 그 은행을 털어 우주선을 사겠다는 등 엉뚱한 구석이 많습니다. 헤어지기 전날 아리가 갑자기 초밥이 먹고 싶다고 하자 조강은 밤새 서울로 올라가 초밥을 구해오고 이별을 하는데 그 뒤 아리는 다시 신비 속으로 사라집니다.
다시 8년의 시간이 흘러 은행원이 된 조강은 여전히 아리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조강 앞에 다시 홀연히 나타난 아리, 8년 만에 다시 나타난 그녀는 고작 8시간을 함께 한 뒤 미국으로 떠난다며 공항에서 이별을 합니다. 조강은 그런 아리가 야속하기만 하지만 차마 그녀를 붙잡지는 못합니다. 아리도 조강을 가슴깊이 사랑하는 것 같지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기에 그의 곁에 머물 수 없는 것일까요?
조금은 이색적인 이야기 전개가 돋보이는 멜로 영화로 강혜정, 조승우의 이름값에 걸맞은 연기가 빛을 발합니다. 특히 올드보이, 웰컴 투 동막골에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카리스마까지 느끼게 했던 강혜정의 연기는 본격 멜로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아리라는 인물에 더없는 적역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호연을 보여줍니다. 두 배우의 연기호흡은 고등학생 시절과 8년 뒤의 모습에서 마치 실제 그 나이의 배우들을 기용한 것처럼 폭넓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수채화같이 상큼하고 싱그러운 배경과 신파조의 문어체 대사가 아니라 톡톡 튀는 구어체 대사가 그 진부함을 감춰주고 또 통속적인 결말을 피하기 위해 판타지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깔끔한 뒷마무리를 보여줍니다. 전반부와 후반부 조강의 독백으로 나오는 내레이션은 남녀의 흔치않은 독특한 사랑과 이별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얻을 수 있을 지에 대한 중심을 잡아줍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독특하고 이색적인 멜로영화를 표방했지만 결국 큰 줄거리와 틀은 기존의 멜로영화의 관습을 벗어나지 못했고 내레이션과 결말 부분의 처리방식에서 이를 탈피하려는 시도를 보였지만 큰 틀과 줄거리를 분장으로 살짝 가리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점입니다. 마지막 부분에서 슬픈 감정의 흐름은 ‘두 배우가 연기 참 잘하는구나’하고 느낄 수는 있지만 관객의 감정이입으로까지 이끄는데 미흡한 점이 바로 이 부분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배우가 흐느끼거나 격하게 울지 않더라고 관객이 슬픈 내용과 복선 때문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이 더 강한 감동을 주는 것인데 그러지 못한 점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때 죽도록 사랑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그랬을까’ 라거나 상대방에 대해 불쾌한 감정만 남아있는 경우도 많은게 인간사이고 남녀관계인데(아닌가?) 죽도록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정이 어디 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순정을 빛바래지 않게 간직하는 것은 본인의 마음과 삶의 태도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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