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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 채취 여성 기자회견

권란

입력 : 2006.04.21 14:50

피해 손해배상 소송 내


# 20대 후반 피해여성 참석

이 자리에 오니 겪은 일이 실감난다.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 할지 꿈에도 생각 못했다.

현재 가장 큰 감정은 '두려움'이다. 몸과 마음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많은 사람의 지지가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다.

불임에 대한 공포도 크다. 불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지금은 없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불임은 큰 흠결이 될 수도 있고, 새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두려움도 있다.

가장 많이 잃은 건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도 얘기할 수 있는 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회적 소통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주변 많은 사람들이 힘을 줬고 같이 아파해줬다.

조금이나마 '희망'이란 단어를 쓸 수 있다.

장밋빛 환상이 더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소송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얻기보다 많은 여성을 대표해 할 수 있는 얘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분들이 떳떳이 드러낼 수 있게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것이다.

남녀노소 차별없이 건강권을 누릴 수 있길 바란다.

이건 예외적 케이스가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공감과 관심을 가져달라.

-2005년 1월 10일 황우석 교수와 처음 면담을 했다. 황교수의 책을 읽고 난자채취에 대한 개괄적인 내용은 알았다.

하지만 황교수에게서 상세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황교수는 기증동기를 물었고, 걱정을 해줬다.

쉬운 일 아닌데 괜찮냐고 물었다. 하지만 프로세스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황교수 면담에서는 위험성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동의서를 쓸 때 설명을 들었지만 겪은 것에 비하면 미미한 설명이었다.

-안규리 교수와의 면담에서도 기증 동기를 물었다.

부작용 얘기는 했는데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다.

동의서에 부작용이 써 있어 물어봤더니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얘기해줬다.

-동의서의 사본은 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2005년 1월 10일 황교수와 면담을 하고 1월 20일쯤 안규리와 노성일을 만났다.

그 후 검사를 하고 호르몬제 처방을 받아 10일 정도 주사했다.

2월 5일에 미즈메디 병원에서 난자채취 시술을 했다.

-수술 이후 과배란 후유증이 심했다. 복수가 차고, 숨쉬기 힘들었다.

그래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입원 이후 한약도 먹고 염증 치료는 병원에서 자비부담으로 했다.

몸 상태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이런 일이 터져 정신적 충격이 가장 컸다.

(정신병원에서 치료. 병명은 우울증과 지속성 동통 신체 장애)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어려웠다.

마음 힘든게 몸에 나타났다.

여기저기 아프고, 수면장애, 식용감퇴를 지속적으로 겪었다.

-황교수 만나고 얘기하면서 개인적으로 신뢰했다. 비판적 지지자였다. 그를 믿고 싶었다.

처음 이 사건이 벌어지고 난자 문제 터질 때까지 오해라고 생각했다.

지난 해 말쯤 황,노 기자회견 때 '아니구나'라는 걸 알았다.

-시술 이후 병원이나 단체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소송얘기 나오기 직전(2월 6일) 안규리 교수에게 2차례정도 연락이 왔다.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면 사과를 했다. 너도 나도 피해자이지 않냐며 같이 풀어보자고 했다.

-황교수는 면담 이후 한두번 정도 더 봤다. 시술을 하고 병원에 있을 때 찾아왔다.

-직장도 그만 둔 상태다. 11월 말에서 12월 초쯤이다.

(일을 못해 생긴 손해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인과관계를 따져보고 이후 청구할 생각이다.)

-당시 적극적인 문제제기는 못했다. 아프고 힘들다고 안교수에게 전화해 하소연했더니 입원조치를 해줬다.

하지만 하루만에 퇴원했다. 눈치가 보여 못 있겠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