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까지만 해도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 외투를 챙겨다니다가 이번 주부터 한낮에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로 부쩍 더워진 날씨에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 비수기인 4월이지만 개봉영화는 그 어느때보다 많습니다. 3월 마지막주부터 4월
(엊그제까지만 해도 아침 저녁으로 쌀쌀해 외투를 챙겨다니다가 이번 주부터 한낮에 에어컨을 틀어야 할 정도로 부쩍 더워진 날씨에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영화 비수기인 4월이지만 개봉영화는 그 어느때보다 많습니다. 3월 마지막주부터 4월 한달동안 매주 7,8편에서 많게는 10편씩 개봉됩니다. 한달에 무려 40여편 가까이 되는데 문제는 눈에 띄는 흥행작이나 볼만한 작품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영화계에서는 5월 3일 전세계 동시개봉되는 탐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3]으로 시작해 줄줄이 개봉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대공세와 6월 월드컵을 피하다보니 4월에 개봉작이 몰리는 현상이 빚어졌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기자 시사회도 이에 맞춰 벚꽃이 꽃망울 터뜨리듯 여기저기서 열리는데 발품 팔아가며 극장을 찾아가 보자니 그렇고 또 안보자니 찜찜한 그런 상태로 다니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은 전형적인 뉴요커로서 미국사회 심장부인 뉴욕에서 살아가는 심약하고 신경질적인 소심증을 가진 지식인으로 냉소적인 유머를 드러내는 다양한 형식과 주제의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들어왔습니다. 1977년 애니홀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할리우드 주류에서 벗어난 독특한 작품들을 많습니다.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해오던 중 1990년대 초 자신의 부인이었던 미아 패로가 입양한 딸인 한국계 순이와 스캔들이 나더니 결국 결혼까지 해버려 해외 토픽 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하기도 했죠.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작심하고 뉴욕이 아닌 영국 런던을 무대로 지극히 통속적인 상업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영화 제목 '매치 포인트'는 테니스나 탁구 등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마지막 공 하나를 말합니다. 공이 네트에 걸렸다가 상대편 코트에 떨어지면 나의 승리이고 네트를 넘어가지 못하면 승리는 일단 한번은 물거품이 됩니다. 그건 실력이 아니라 운이 많이 작용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은 1점차로 아슬아슬하게 이기든,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이기든 승자만을 기억하고 축복합니다. 그만큼 매치포인트는 그 경기의 운명을 결정짓는 아슬아슬한 순간입니다.
프로테니스 선수였다가 테니스 클럽 강사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조나단 라이 메이어스)는 가난한 집 출신이지만 오페라를 즐겨듣고 미술관도 찾아다니고, 어려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해설서와 함께 공부하듯이 읽어나가는 나름대로 성실하고 번듯한 청년입니다. 부유한 집안의 잘나가는 사업가 톰과 친해지며 톰의 가족들과도 친분을 쌓아나가는데 톰의 여동생 클로에가 그만 크리스에게 필이 꽂히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결혼을 하게 되고 크리스는 장인 회사의 중역으로 발탁돼 출세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그냥 여기서 클로에랑 아들딸 낳고 잘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가 아니라 영화가 아니겠지요.
톰의 약혼녀인 미국 출신 여배우 지망생 노라(스칼렛 요한슨)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고 시골 별장에서 어느 비오는 날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동서지간이 될지도 모르는데...) 톰은 결국 부모님의 반대로 노라와 헤어지게 됩니다. 노라의 매력을 잊지 못하던 크리스는 여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옷가게에 취직해 근근이 살아가던 그녀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집요하게 구애를 해서 아슬아슬한 불륜행각을 이어나갑니다. 아내인 클로에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아 불임클리닉까지 다니며 고생하는데 그만 노라는 크리스의 아기를 덜컥 임신해버리고, 노라는 임신을 계기로 클로에를 차버리고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크리스를 닦달하기 시작합니다. 부와 욕망을 함께 거머쥐려던 크리스는 부와 욕망 사이에서 선택이라는 시험의 덫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그 어느 것도 놓치기 싫기 때문입니다. 아~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줄거리와 내용은 물론 촬영 기법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안방 드라마와 흡사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디 앨런이 정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니...’하면서 한편으로는 상류층 사회를 묘사하는 화려한 볼거리, 선남선녀 주인공들의 모습과 통속적인 줄거리를 편안한 마음으로 ?게 됩니다. 앞부분의 프롤로그와 마지막 부분 크리스의 꿈 장면에서 연극적 장치를 차용하는 등 우디 앨런적인 특성이 잠시 드러나기도 합니다.
영국 상류사회의 생활과 상류층의 전형적인 인물들을 있는 그대로 사실감 있게 묘사합니다. 딱딱한 듯 들리는 정통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여유로운 그들에게 오페라 관람이나 미술관 순례, 주말의 파티나 사냥은 호사스러운 취미가 아니라 그냥 생활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고, 톰이나 클로에, 그의 부모 즉 크리스의 장인 장모들도 모두 밉지 않은 인물들입니다. 열려있는 넓은 마음과 가진 돈을 과시하려하지는 않지만 돈의 위력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크리스라는 인물도 출세에 눈이 먼 탐욕스러운 성격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부잣집에 장가갔으면서도 자존심을 유지하려 하고 처갓집 식구들도 그를 가족의 일원으로 기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크리스가 부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할 때 속을 털어놓는 친구의 대답에서 ‘누굴 더 사랑하느냐가 아니라 사랑의 색깔이 다른 거다.’하는 대사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남의 속도 모르고 번듯하게 해석하는 인생 평론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에서 별로 예쁘지도 않고 목소리도 별로이고 하지만 묘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스칼렛 요한슨이 이 영화에서는 참으로 섹시하게 나옵니다. 미국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장 섹시한 여배우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니 참으로 상전벽해, 괄목상대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18세 이상 관람가라고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는 마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음란서생과 비슷한 시추에이션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시사회가 끝나고 나오는데 영화 홍보사 측에서 ‘당신이 크리스라면 클로에와
노라 가운데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며 스티커를 붙이는 즉석 설문조사를 하더군요.
당연히 부와 명예의 전당으로 들어가는 클로에를 선택한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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