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nsp; 5.프랑스 &n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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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고대의 삶과 사랑--
5.프랑스
1)프랑스(France) 2,3,4,5,6,7,8,9)빠리(Paris) 루브르(Louvre) 10,11,12,13,14,15) 셍제르망 앙 레(Saint Germain en Laye) 16)리용(Lyon) 17,18,19,20)비엔느(Vienne)--오늘 이야기 21)오랑쥬(Orange) 22)베종라 로멘느(Vaison La Romaine) 23,24)님므(Nimes) |
19. 비엔느(Vienne) 3
◆ 운동경기와 사계절모자이크 2
앞서
본 올림픽 운동경기 장면들과 같은 작품에 설치된 모자이크를 더 살펴본다. 연극의
한 토막과 계절의 여신인데, 먼저 연극 장면. 원시적 생명력이 솟아나는 강렬한 구리빛
피부에 울퉁불퉁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남자의 나신(裸身). 엎드려서 무엇인가 행동하는
모습인데... 얼핏 레슬링이나 고대 올림픽 경기의 하나이던 판크라티온(Pankration,
상하체 공격과 붙잡는 공격이 가능한 종목, 요즘 이종 격투기와 닮았다) 선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얼굴을 자세히 보면 해석이 달라진다. 탈을 쓰고 있다. 레슬링이나
판크라티온 경기를 펼칠 때 머리채를 휘어잡히지 않기 위해 쓰던 모자는 아니다.
연극용 탈이다. 따라서, 이 모자이크는 올림픽 운동경기를 다룬 연극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대회기간 중에 연극 공연도 펼쳐졌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요즘 스포츠 일변도로 치닫는 올림픽이 염두에 두고 깊게 새겨야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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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하는 사람--얼핏 레슬링 선수 같지만, 얼굴에 탈을 쓴 것으로 봐 연극 장면으로 보인다. 비엔느. ⓒ김문환 |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 남부 강(Gent, 겐트)출신으로 IOC를 이끌고 있는 쟈끄 로게 위원장. IOC 안에서 자행됐던 각종 비리나 불미스런 부정사건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며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만큼 고대 올림픽에서 문화예술을 소중히 했던 정신을 오늘날 되살리는데 적격으로 꼽아도 무리는 아닐 텐데... 고대 올림픽은 신에게 경배의 마음을 전하며 인간의 평화와 단합을 꾀한 문화 예술, 스포츠 제전으로 출발했다. 상업주의에 찌든 현실을 보완하며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높이는 차원에서 고대인들의 순수한 자세로 돌아가는 노력이 나쁘지 많은 않을 것이다.
헤라클레스(Heracles).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신 제우스가 인간 여인과 관계해 낳은 아들. 제우스는 원래 여신이든 인간이든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대상이 있으면 욕정을 채웠다. 여신이야 그렇다 쳐도 인간의 경우 유부녀는 좀 숙고해야 할 텐데, 욕망을 접지 않았다. 최고신이라는 무한의 권력을 제 욕심 채우는데 악용(?)한 경우인데... 헤라클레스도 그렇게 태어났다. 과정을 들여다 보자. 테베의 왕 암피트리온은 빼어난 미모의 아내와 살았다. 너무 아름다웠던 왕비 이름은 알크메네. 암피트리온은 최고신 제우스의 사랑이 자신의 아내에게 스며드는 현실에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중세 영주들의 초야권(初夜權) 비슷한데, 미인과 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인가? 그리스인들이 만든 도자기를 보면 사후에 화가 난 암피트리온이 알크메네를 태워 죽이려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알크메네의 비명을 들은 제우스가 비를 내려 불을 끄고, 사랑했던 여인과 아들을 구해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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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몽둥이와 사자가죽 겉옷, 화살통으로 볼때 틀림없는 헤라클레스다. 그러나, 뒤로 돌아선 모습에서 다리가 너무 빈약해 신화속 헤라클레스로 보기 어렵다. 헤라클레스를 주인공으로 한 연극의 배우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비엔느. ⓒ김문환 |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투기가 심한 여신이었다. 조선의 구중심처(九重深處)나 오스만 투르크 제국 토카피 궁전의 하렘(Harem)이라면야 왕이나 술탄이 후궁들과 만나는 사실을 너그럽게 봐줘야 하는 게 중전이나 제 1비(妃)의 으뜸가는 덕목이었지만, 헤라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다. 성종의 초비(初妃)였던 폐비(廢妃) 윤씨의 경우에서 보듯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조선의 임금도 때로는 중전의 투기에 시달려야 했으니, 꼭 헤라를 나무랄 일은 못된다. 헤라는 남편 제우스가 다른 여자와 낳은 아들을 못살게 굴기로 유명했다. 헤라클레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러나, 제우스는 헤라클레스를 특별히 사랑해 잘 자랄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줬다.
아버지 덕에 천하장사가 된 헤라클레스의 상징은 사자가죽 외투와 올리브 나무 몽둥이, 활과 화살통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작품 속 인물 가운데 몽둥이를 들거나 활을 멘 경우는 많지만, 사자가죽을 걸쳤다면 예외없이 헤라클레스로 보면 된다. 사연은 이렇다. 헤라클레스가 18살로 막 성인이 될 무렵, 어머니의 남편인 암피트리온의 농장에 사자가 자주 출몰했다. 사자는 암피트리온이 애지중지하던 소를 잡아먹어 애를 태웠는데.. 키타이론산(山)에 살던 이 사자를 처치하는 일이 테베의 시급한 과제였다. 암피트리온의 근심을 덜고 조국 테베를 구하기 위해 달려간 헤라클레스, 맨손으로 사자를 잡은 뒤 가죽을 벗겨 외투로 만들어 입었다. 이 외투는 흉포한 사자의 얼굴 가죽이 그대로 달려 있었다. 보는 사람 누구라도 헤라클레스의 무용에 겁을 집어먹게 됐고, 헤라클레스는 최고의 전사로 신에 버금가는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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