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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말했어/섬세한 시선, 따뜻한 감성

김수현

입력 : 2006.03.21 15:59

BRBR 고양이가 말했어.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인형극 제목입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감성 인형극’을 표방하고 있더군요. 제목을 보자마자 끌렸습니다. 마치 공연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 했습니다.




고양이가 말했어.

대학로에서 공연되고 있는 인형극 제목입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볼 수 있는 ‘감성 인형극’을 표방하고 있더군요.

제목을 보자마자 끌렸습니다. 마치 공연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 했습니다.

‘와서 얘기 좀 들어보지 않을래? 고양이가 말했어.’ 하고요.

그래서 보러 갔습니다. 고양이가 무슨 말을 누구에게 했는지 궁금해서요.

‘고양이가 말했어’는 고양이를 키우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삶을 배워가는

11살 소녀 지영이의 성장기입니다.

지영이는 초등학교 4학년, 남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소녀지만,

항상 왠지 모를 허전함과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러다 길모퉁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조그만 고양이 한 마리를

집에 데려오게 되면서 지영이의 일상은 바뀌어 갑니다.

고양이는 지영이에게 '엄마!' 하고 말을 걸었지요.

고양이를 ‘야옹이’로 이름지은 지영이는 날마다 야옹이와 함께 자고,

야옹이와 함께 놉니다. 야옹이는 지영이의 좋은 친구가 된 것이죠.

하지만 야옹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변해 갑니다.

야옹이가 언제까지나 지영이 곁에 있을 수는 없는 걸까요?

‘고양이가 말했어’는 섬세한 시선과 따뜻한 감성이 돋보이는 인형극입니다.

보통 접하게 되는 인형극과는 달리 인형을 조종하는 배우가 뒤에 숨어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 인형이 함께 연기합니다.

연출자인 이래은 씨는 배우는 어른을, 인형은 어린이를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인형과 배우가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답니다.

인형들도 귀엽고 앙증맞지만, 연기하는 배우들도 참 예쁩니다.

‘눈망울이 반짝거린다’는, 어찌 보면 진부한표현이 이 배우들에게는 참 잘 어울립니다.

배우는 모두 세 명,

두 명은 지영이와 야옹이, 지영이의 친구들을 연기하고,

나머지 한 명은 음악을 연주합니다.

멜로디언과 실로폰, 하모니카와 피리 같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악기들로 연주되는 음악은 친근하고 따뜻한 느낌입니다.

저는 음악을 맡은 배우가 연극이 시작할 때

조그만 실로폰을 들고 나와서 ‘사물들에게 말 걸기’를 하는 것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간단한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듯 관객들이 착용하고 있는 물건들에게 말을 거는 겁니다.

장갑에게 말을 했지. 따뜻해?

목도리에게 말을 했지. 몇 살이야?

안경에게 말을 했지. 잘 보여?

(이 날 ‘목도리’는 제가 하고 있던 빨간 목도리,

‘안경’은 저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간 후배 조지현 기자가 쓰고 있던 안경이었습니다.)

이 배우는 목도리에게도, 안경에게도, 말을 걸면서

평소에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것들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저는 ‘준비 운동’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길모퉁이에서 마주친 고양이 한 마리가

갑자기 말을 해도 놀라지 않도록 말이지요.

이 인형극에는 곳곳에 섬세하게 포착한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숨어 있습니다.

햇볕이 드는 네모난 창가(‘햇볕상자’로 표현된)에,

지영이가 누워서 팔을 가슴에 얹고 있는 장면에서는,

인형이 어찌나 외로워보이던지, 제 가슴까지 저려왔습니다.

또 지영이가 잠들 때 괜히 무서워서

몸의 어느 한 부분도 바깥에 나오지 않도록 이불을 꼭꼭 뒤집어쓰는 장면을 보면서,

맞아 맞아, 나도 저랬어,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요.

(사실은 이 장면들은 보면서 제 딸 생각도 했습니다.

딸은 이제 8살밖에 안 됐는데, ‘외롭고 쓸쓸하다’는 말을 하기도 하고,

자기 방에서 혼자 자는 게 무섭다며 새벽녘에 안방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새벽에 잠이 깼는데, 발치에 웬 형체가 서 있어서 소스라치게 놀란 적도 있습니다.

딸이 혼자 자기 싫어 안방으로 왔는데, 정작 오고 보니

엄마 아빠에게 혼날까봐 깨우지는 못하고 그냥 컴컴한 데 서 있었다는 겁니다.)

여성이 아니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이 인형극을 만든 ‘달과 아이’ 극단은 구성원이 대부분 여성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섬세한 시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관객들은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여성들 쪽인 듯합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보기에 좋은 작품인데,

어린이 나이가 아주 어린 편보다는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

(인형극 속 지영이의 나이와 비슷한)는 돼야 잘 받아들일 것 같고요.

연출자 이야기를 다시 들어볼까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이든 어른이든, 고독하잖아요. 고통스럽고 힘겨운 순간이 있는데,

고통의 순간이 가져다주는 성장과 성숙의 순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도 어른도 모두 공연을 보고 자신의 삶 속에 그런 순간을 발견했으면 해요.

아이 대 어른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 만나고 이해하고,

그런 순간을 공연에서 발견했으면 해요.”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블로그 https://ublog.sbs.co.kr/shkim0423에 올릴 예정입니다.)

이래은 씨는 어릴 때 고양이를 키웠던 경험이 극 속에 그대로 녹아있다고도 했습니다.

저는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밖에 없지만,

인형극을 보고 나서 고양이라는 동물이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출몰하는 ‘도둑 고양이’ 때문에 놀랄 때도 많지만요.


이 인형극에 대해서 더 할 이야기도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직접 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거든요.

저는 제 딸이 이 작품을 보기엔 좀 어리다는 생각도 들지만,

딸을 데려가서 다시 보려고 합니다.

인형극을 보고 나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저는 평일 낮 2시 공연을 봤는데,

그날따라 비가 내리고 을씨년스러운 날씨라 그랬는지, 관객이 그리 많진 않았습니다.

공연은 4월 1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나무와 물에서 열립니다.

문의는 745-2124번으로 하시면 됩니다.


또 뵙겠습니다. 행복한 봄날 보내세요.

(아참, 공연 사진들은 나무와 물 예술극장 홈페이지에서 퍼왔습니다.

www.treeandwa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