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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칼럼]'염치없는 사회'

입력 : 2006.03.17 19:42|수정 : 2006.03.1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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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뉴스>

어렸을 때, 깨끗한 옷을 입고 학교에 가는 날이면 아주 불편했습니다.

뛰어 놀다보면 금방 옷이 더러워지는데 집에 가서 꾸중 들을 일이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 옷이 적당히 더러워지면 한결 편했습니다.

더러워져도 표가 나지 않으니까요.

부끄러움도 다르지 않습니다.

늘 바르고 의연하게 살려 애쓴 사람들은 어쩌다 작은 잘못을 범해도 부끄러워 어쩔 줄 모릅니다.

자기 삶이 때 묻고 얼룩지는 것을 자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한 번도 맑고 깨끗하게 자기를 가꾼 적이 없어, 무엇이 실수인지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사회에서 '염치'란 말이 사라진지 오래인 듯합니다.

염(廉)이란 깨끗함을, 치(恥)란 부끄러움을 뜻합니다.

그래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우리는 "염치(廉恥) 없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하고 사죄를 했습니다.

제 삶이 깨끗하지 못해 부끄러움조차 몰랐으니 용서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누구도 이러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국민들 모두 얼굴을 들 수 없는 '염치없는 일'을 하고도 떳떳한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저 자신이 "염치없습니다"하는 말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실종된 언어를 어서 되찾고 싶습니다.

(정진홍 한림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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