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급적 스포일러 포함되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그렇게 받아들일 우려가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되니 이 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손님은 왕이다]를 연출한 오기현 감독은 원래 광고계 일을 하다가 1997년 명계남씨의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를 보
[손님은 왕이다]를 연출한 오기현 감독은 원래 광고계 일을 하다가 1997년 명계남씨의 모노드라마 [콘트라베이스]를 보고 감명받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 영화 공부를 하고 돌아와 첫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의 명 이발관의 이발사 안창진(성지루)는 3대째 가업을 이으며 이발은 예술이라는 신조 아래 자부심과 직업정신으로 무장하고 성실하게 살아갑니다. 분에 넘치는 예쁜 아내 전연옥(성현아)은 보험설계사로 바쁘게 일하는 척 합니다. 아내가 ‘클라이언트’와 중요한 상담 때문에 점심을 못 차려줘 컵라면으로 때우면서도 별로 불만이 없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이발소에 자신의 추악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협박 엽서가 날아오고 이윽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김양길(명계남)이라는 사람이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나타납니다.
김양길의 모호하면서 음산한 협박에 창진은 몇 개월 전 실패로 끝난 원조교제 시도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약점이 잡힙니다. 이발과 면도까지 받은 양길은 이발비를 내기는커녕 15만원을 뜯어가면서 올 때마다 정확히 두 배의 돈을 준비해 놓으라고 합니다. 소심한 창진은 어쩔 수 없이 양길의 협박에 사채까지 끌어다 돈을 바치지만 양길의 이발소 방문은 멈추지 않고 창진은 고심 끝에 양길의 약점을 알아내기 위해 해결사를 고용해 뒷조사를 맡깁니다. 뒷조사 결과는 뜻밖이어서 사건의 흐름은 얘기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영화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인생은 연극이고 인간은 무대 위의 배우’라는 글로 시작합니다. 이 부분은 반전과 결말의 중요한 힌트를 알려주는 문구입니다. 영화는 신인감독의 작품답지 않은 탄탄한 세련됨과 참신함을 함께 갖추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협박자가 평범한 소시민의 일상에 뛰어들어 벌어지는 위기와 공포라는 관습적인 플롯을 채택하면서 양식이나 기법에서는 적절한 화면분할이나 무성영화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는 참신함도 보여줍니다. 특히 변두리 이발소답지 않게 체스판같은 바닥에 흰색 위주의 깔끔한 이발소 내부 디자인은 현대적이면서 영화의 차가움과 공포를 더해주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영화로서는 첫 주연을 맡은 성지루와 성현아, 명계남, 또 해결사로 나오는 이선균 뿐 아니라 비중 있는 단역으로 나오는 이춘연, 오기민 두 영화 제작사 대표들의 연기까지 모두 자연스럽습니다.
초반부의 긴장과 궁금증, 공포 유발이 탄탄하게 전개되면서 관객의 궁금증은 더해갑니다. 하지만 갈등과 공포가 해소되는 위기와 결말 부분의 온정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와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하면서 다소 찜찜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명계남씨 본인이 밝혔듯이 자신의 정치적 행동 등에 대한 비 호감성이 영화에 그늘로 작용하면 어쩌나 하는 부분도 이런 혼란을 보태주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영화 속에서는 배우로서의 경력 일부와 그가 출연한 영화 장면 등 실제배우 명계남의 과거와 현재를 그대로 차용합니다. 영화에서는 필요한 부분만 들여올 수 있지만 관객들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선입견이나 호감 또는 비호감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감독과 배우 등 제작진도 많이 고심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관객들이 배우로서의 명계남만 기억하고 있다면 울먹한 감동을 받을 수 있는 깔끔한 영화가 되었겠지만 그의 정치적 행동에 대한 관객 개개인의정치적 입장에 따른 비호감이나 호감, 일부 언론의 악의적인 왜곡이나 부풀리기 보도에 의한 선입견이 관객의 기억에 남아있는 한에서는 걸림돌로 작용하게 됩니다. 감독 자신이 연극 [콘트라베이스]와 배우 명계남으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고 또 명계남 뿐 아니라 이 땅위에 많은 조연 배우들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측면은 시대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에 제 가슴도 다소 먹먹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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